수도자의 기다림 P66 백승미 글 명중 중에서
* The overview effect; 우주 비행사들이 우주에서 지구를 보고 난 후 느끼는 ‘오버뷰 효과(the overview effect)’. 높은 곳에서 큰 그림을 보고 나면 사소한 것은 사소한 것으로 볼 줄 알고, 본질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관점이 생긴다. – 서울대 최인철 교수
15년 전 즈음 남편과 함께 하정완 목사님의 영화설교에 감동을 받은 기억이 난다. 모태신앙임에도 사별 후 하나님을 욕하고 귀신들을 찾아다니며 방황할 때, 예전의 그 기억을 더듬어 영화설교를 하셨던 하정완 목사님의 설교를 듣게 되었고 더플랜 훈련을 알게되었다. 더플랜 훈련은 거의 3년 가까운 과정이었지만 나는 얼른 마쳐 수료를 하고 치워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적이 없었다. 오히려 단계를 거듭할수록 내가 하나님께 했던 오해들을 하나씩 풀 수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것이 정말 기독교일까? 톰 라이트의 ‘이것이 복음이다’에 나오는 변질된 기독교의 모습을 남편 죽음 이후에 경험할 수 있었다.
정화수 떠놓고 치성을 드리면 천지신명께서 복을 준다고 생각하듯 주일예배와 헌금을 잘하면 경제적으로 넉넉해지고 자녀들이 잘 되는 축복이 사실이라면 그 반대의 경우는 어떠한가? 예배 안 드리고 헌금 안 하면 벌주고 인생에 어려움이 생길지도 몰라서 그런 두려움으로 드리는 예배에 기쁨이 있을까? 그리고 축복을 아무리 기다려도 형편이 나아지지 않는 것은 헌금이 부족하거나 예배를 빼먹어서 그런 것일까? 권정생 선생님의 소설 ‘우리들의 하느님’에 한국의 하나님을 자판기로 묘사한 것과 너무 유사하다.
어떤 이들은 전도하면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친다. 예수를 믿지 않으면 가게 되는 그 지옥은 사탄의 소굴일까? 육신의 몸을 묘에 두고 간 영혼들에게 뜨거움이란 어떤 종류의 뜨거움일까? 저주받은 영혼들이 가는 뜨거운 불구덩이는 하나님이 손길이 결코 닿을 수 없는 곳일까? 그곳은 하나님도 어쩔 수 없는 영원한 저주의 공간인가?
그리고 천국을 생각해 보았다. ‘저 아름다운 구름 위의 천국은 어떤 곳일까? 남편은 하루 종일 비스듬히 누워 하프 소리와 찬양이 끊이지 않는 곳에서 찬양하고 있을 테지. 하루, 이틀, 사흘, 평
생, 영원히! 그런데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먼지라도 있으면 청소하는 재미라도 있어야 할 텐데, 먼지도 아픔도 없는 그곳이 왠지 지루할 것 같다. 남편은 사륜구동 차를 타고 험한 산에 오르는 오프로드를 좋아하는데 천국에서는 오프로드를 할 수 있을까? 집사 안수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천국에서 상급이 별로 없어 원룸에 살고 있을까?’ 이렇게 나는 천국과 지옥에 대하여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생각을 하였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니까 내가 예수 믿는 확실한 방법을 알려줄 테니 충고를 새겨들어! 멍청하게 고집 피우며 충고를 안 들으면 영원한 불속에 던져질거니! 좋은 말 할 때 충고 들어!’라고 하는 것이 정말 ‘Good News’ 일 수 있을까? 물론 누군가 내게 천국과 지옥이 어떤 곳인지 아냐고 묻는다면 지금도 당연히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적어도 끝없는 우주를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보면 천국이 염려스러울 정도로 지루하거나 지옥이 하나님도 어쩔 수 없는 그런 곳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매일 나의 사고를 확장시켜 가시고 내 삶을 이끄시는 그분을 느끼면서 놀라워하고 있다. 그래서 천국 가서 남편을 만날 날을 그렇게 고대하지 않게 되었다. 천국에 가면 이 땅에서의 기억이 연결될까?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을 만나 내가 이 땅에서 살면서 궁금하고 흐릿했던 모든 것을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로 가르쳐주시고 펼쳐주실 것이 기대된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던 남편도 이전에 내가 알던 그 모습이 아닐 수 있을 것이다. 남편과 만난다면 긴 우주 역사 속 한 토막을 살았던 남편의 삶을 이야기하며 그 삶의 의미를 함께 나누고, 당신이 떠나고 남겨진 나의 삶에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나눌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맡겨진 자녀들에게 어떤 것을 남기고 왔는지 그들은 또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기도하며 이야기 나눌 것이다. 천국에서 남편은 단순히 나와 자녀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어쩌면 온 지구를 위해 천국에서 하나님과 기도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한 명 한 명 천국에 오면 ‘오셨네요. 당신을 위해 기도했어요. 기다렸어요.’라며 반길 것이다. 그리고 내가 슬픔 속에 빠져 헤맸던 그 시간에 남편은 천국에서 이런 환대를 받았을 것이다. 남편은 나도 얼른 하나님의 놀라운 세계를 경험하기를 기도했겠지. 그런 생각에 이르니 죽음과 삶이그렇게 큰 거리가 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톰 라이트가 말한 것을 마지막으로 언급해 보면 근사한 오르간 소리와 엄숙한 예배 분위기, 성가대의 멋진 합창과 감정을 울컥하게 하는 찬양 인도로 순간 은혜게 느껴지는 것을 경험하기도 하
였다. 나는 예배를 그런 것으로만 국한 시키는 것도 기독교의 본질일까 생각해 보았다. 코로나19로 현장 예배에 꼭 가고 싶은 것만큼 삶으로 드리는 일상의 예배도 그렇게 간절히 찾기를 기대해 본다.
코로나 시작부터 나는 계속 집에서 예배를 드렸다. 나의 행보로 괜히 기독교가 도마에 올라 ‘개독’이라는 오명이 기독교에 대해 부정적인 벽을 쌓는 일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근사한 오르간 소리도 엄숙한 예배 분위기가 아니어도 나는 여전히 예배가 은혜롭다. 주일 온전한 한 시간의 예배도 중요하지만 매일 삶에서 드리는 예배에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신앙의 루틴을 더플랜 훈련을 하면서 가질 수 있었다. 아침 새벽 묵상, 쪽지 묵상, 점심 걷기 묵상, 제구시기도, 밤 묵상으로 신앙의 라이프 스타일을 잡을 수 있었다.
교통사고로 전신 화상을 입은 이지선 씨(한동대 교수)가 이전의 삶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아도 지금 충분히 감사하고 행복하다 한 것처럼 나도 남편이 있었던 시절로 다시 돌아가지 않아도 지금 충분히 감사하고 행복하다. 내 삶의 전부 같던 남편을 내게서 데려가시고 나를 이 땅에 남겨두신 그 섬세한 이유를 하나씩 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끝을 알 수 없는 우주를 만드시고 셀 수 없는 행성들의 질서를 잡으시며 작은 행성인 지구 속에 먼지 만한 나를 지목하시고 내 삶을 보시며 미소 지으시는 그 주님을 느낄 수 있다. 부족한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하시고 타인을 이해하려 힘쓰게 하시며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 매일 기대하게 하신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따라 나의 아픔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상처 입은 치유자로 잘 돕고 싶다.
이제 그분은 내게서 남편을 뺏어간 분이 아닌 내가 내 삶을 제대로 살 수 있게 인도하신 분이시다. 나는 이 땅에서 그분과 교제하며 그분을 더 알아가는 것이 신비롭고 기쁘다.
신앙이 롤러코스터를 탈 때 더플랜 훈련으로 나를 성숙시키신 하나님께 나의 삶을 드리며 감사를 올려드린다. 온라인으로 더플랜 훈련을 진행할 때 끊임없이 격려해 주시고 힘주신 하나님의 귀한 도구인 하정완 목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