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웨스트에서 만났습니다.
늦게 잠들었는데, 일출 볼 운명였는지
해 돋기 3분 전에 눈이 저절로
뜨였다.
일출 바라보며
요가하는 이, 그 둘을 바라보며 같이 건강해지는 기분
빈속에 모닝 수영하러 간 식구들
돌아오면 바로 밥 대령하기 위해
준비해 간 밥통 취사 버튼 꾹.
계속 1박씩 머무르며 여행을 진행 중이라,
혹여 분실물을 아차 하며 깨닫더라도
대체 어디서 잃은 건지 감 잡을 수 없는 일 안 만들려, 푼 짐 어디 멀리 안 가게 두고 싸고 챙겼다.
어젯밤 현지인에게 인기 만점 분위기 진하게 풍기던 샌드위치 집 앞을 아침에 다시 지나간다. 이 시간에도 북적이는 걸 보니 맛집은 맛집인가 보다.
주차비가 비싸고 주차시설이 열악해
자전거 투어족이 많다.
헤밍웨이 생가에 도착했다.
사전에 키웨스트에 대해 공부하며, 현금만 받는 곳이 있다는 걸 캐치해놓고선 지갑 준비는 간과했다.
바로 이곳이 온니 캐시로만 입장 가능한 명소였다.
내 지갑+남편 지갑을 매표소 앞에서 탈탈 털었더니, 여차저차 딱 입장료만큼 현금이 맞춰졌다.
작가 헤밍웨이는 고양이를 무척 아끼고 사랑했다. 그가 키웠던 고양이의 후손들이 여전히 이곳을 제집처럼 누리며 살고 있는데, 특징이 발가락이 6개라는 점.
멀리서 보아도 발이 뭉툭하다 싶었는데, 그럼 다들 세어보게 되지.
피카소와의 관계가 궁금해 찾아보았더니,
파리에서 서로의 지적 우정을 쌓았던 시기가 있었다고 한다.
노년의 얼굴을 더 기억하는 우리에게,
그의 젊은 시절의 사진은
낯설면서도 미남이십니다.
한 장에 끝내겠다는 그의 귀여운 사투.
자필 편지인데 알아보기 용이하게 타이핑 한 본도 나란히 걸어놓았다.
욕실 타일이 모험적이고 감각적이라 느꼈는데, 기념품샵에 타일은 장당 판매하고 있었다. 나도 무난하게만 집을 채우지 말고, 한 곳 정도는 내 취향 물씬 뿜어지게 꾸미고 살고 싶다.
여행을 즐겼던 어니스트. 그의 카메라와 사진들
그가 고양이와 함께한 사진을 찾아보았다.
타자기도 부인도 많았던 그. 이 집은 그의 두 번째 결혼생활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2층 베란다에서 정원을 내려다본 뷰가 정말 근사했다.
남국의 정취가, 낭만이,
뾰족한 정원수들의 잎으로부터 진하게 뿜어져 나왔다. 마음대로 난 듯 기준도 잡힌 것 같이 보였다.
French Colonial 양식의 하우스라 한다.
1851년에 지어졌는데, 헤밍웨이가 거주한 기간은 1931~1939년까지.
헤밍웨이와 그의 두 번째 부인 폴린이 키웨스트로 이주해 온겨 1928년인데, 첫 3년은 근방의 집을 렌트해 살았다. 그러다 이 부동산이 매물이 나왔고, 이 집의 가치를 알아본 부인의 재력가 삼촌이 결혼 선물이라며 계약을 해준 것.
정원을 사이에 두고 세워진 별채에는
그의 집필실이 근사하게 단독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집 내부의 가구는 모두 폴린의 취향이 반영된 셀렉트라는데, 다른 정보에 의하면 그녀의 손을 탄 가구는 전부 처분되었다고 한다.
기념품샵 문을 열려하는 손님 앞으로 어디선가 나타나 열리는 찰나 쏙 하고 들어가던 검은 고양이. 실내가 시원한 걸 아는 녀석이다.
헤밍웨이가 스페인에 머무르던 1937년, 부인 폴린이 이곳에 수영장을 지었는데 , 키웨스트 최초의 레지 덴탈 풀이라 한다.
권투를 즐겨, 집에 링도 갖추고 있던 헤밍웨이의 부재 기간을 틈타, 부인이 링을 없애고 그곳에 수영장을 팠다. 오롯이 그녀의 자금으로 말이다. 다 짓는데 당시 돈으로 2만 달러가 들었다고, 스페인에서 돌아온 헤밍웨이에게 일러주자, 나의 마지막 돈까지 다 가지라고 1 페니를 던졌는데 이후 집을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재미나게 일화를 전해주다 결국 그 동전을 심기까지 했다는 내용.
이곳에서 8년간 산 어니스트는 1939년에 쿠바로 홀연 떠났고, 이듬해인 1940년에 둘은 이혼한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혼자 이 집에서 생활했고, 그녀의 사망 해인 1951년부터 헤밍웨이가 자살한 1961년까지 그의 소유로 두었다 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의 세 아들은 이곳을 경매에 내놓는다.
새 오너는 이 집을 자신의 프라이빗한 공간으로 쓰려했으나, 끊임없는 방문자들로 인해 1964년 공식 뮤지엄으로 탈바꿈시킨다. 기부한 건지 판 건지 아님 임대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잠깐 둘러볼 예정이었으나
생각보다 공간의 힘은 대단했다.
헤밍웨이의 취향을 탐색하는 게 좋았고,
언제 또 이런 대문호의 생가를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그의 손길을 거친 곳에 시선 한번 더 두는 시간이 아늑하게 느껴졌다. 이제는 키웨스트를 떠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