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 쓰기
전에는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다만 모든 가치 위에 있는 최고의 가치라고 막연하게 느꼈을 뿐이다.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 이유 중 하나라고 알고 있었을 뿐이다. 거리에서 들려오는 노래는 결국 사랑에 관한 문제이며, 책을 읽는 가운데 눈물이 나는 것은 그것과 관련된다고 그저 수학 공식처럼 외우고 있을 뿐이었다.
사랑한다는 것이 그냥 몇 줄의 글과 몇 마디의 말로 끝나버리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사랑해요. 이 한마디로 기쁨을 나누고, 사랑한다는 짤막한 글로 서로 간의 잘못을 지우고, 오해를 끝낼 수 있으면 얼마나 간편할까. 주문처럼 사랑을 말한다. 사랑한다고, 사랑할 거라고, 사랑해요, 라고. 처음엔 이 말이 주는 어마어마한 관념에 눌려 영문도 모르고 즐거웠다. 마치 놀이동산에서 360도 회전하는 급가속의 열차를 탄 기분이다. 그것 하나로 모든 게 종결되었다. 사랑한다. 더 이상의 것이 있을까. 정말 깔끔한 후식이라고 생각했다. 단백질이 파도치는 스테이크를 자근자근 먹어 치운 후 선택하는 녹차 셔벗처럼.
그러나 사랑은 녹차 셔벗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사랑은 그렇게 깔끔하게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아무리 세 번을 연거푸 말해도, 백 번을 중얼거려도 내 사랑을 모른다. 그리고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은연중에 너무나 편리하게 자신을 한정된 이 말 한마디에 가두고 있다. 사랑은 오히려 이 말이 나오기 전까지의 모든 구체적인 마음이다. 싸우고 돌아온 아이를 혼내면서 눈물 콧물 다 흘리는 마음, 우는 아이를 달래면서 그 심정을 교감하려 하는 가장 따뜻한 이해가 사랑이다. (후략)
- '이해한다, 믿는다, 함께 가자' 중
위의 글은, ‘이해한다, 믿는다, 함께 가자’의 제목으로 내가 교사 초년 시절에 작성한 글이다. 1학년 담임 교사를 하며 급훈을 ‘사랑하자’라고 정한 적이 있었다. 그땐 왜 그렇게 ‘사랑’이라는 말을 좋아했는지 모르겠다. 교사도 젊고, 아이들도 고등학교에 갓 들어왔고, 암튼 그래서 종례 때마다 학생들에게 “여러분! 사랑해요!”라고 끝맺곤 했다. 그러다가 학생들한테도 시키고, 영어, 중국어, 불어까지 시키며 온갖 사랑의 언어를 외쳤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보니까 이게 단순한 구호가 되었다. “사랑해!”라고 기계적으로 반복적으로 말하는 로봇처럼 말이다. 참 그 시절엔 그런 교사도 맑은 눈망울로 쳐다보는 아이들이 있었다. 온갖 말에 도취해 떠드는 담임 교사를 봤다가, 복도 창문에 대롱대롱 고개를 내밀고 있는 타 반 친구들도 힐끔힐끔 봤다가 하며 이렇게 생각하지나 않았을까. “샘! 우릴 그렇게 사랑한다면 종례나 빨리 끝내주세요, 제발.” 그땐 정말 몰랐다. ‘사랑’이라는 말이 마치 ‘행복’처럼 상당히 관념적이라는 걸 말이다. 드라마에 보면, 여자를 울게 만들어 놓고, 꼭 이렇게 말하는 인간이 있다. “내가 너 사랑하는 거 알잖아.” 개뿔.
세계를 알기 위해서는 역시 세월이, 고난이 필요하다. 담임 교사로서 한 해 동안 학생들과 희로애락을 겪으며, 학생들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크고 있었다. 지금도 생각난다. 종례 때 빨리 안 들어오는 나를 모시러 온 반장과 부반장(지금의 자치회장, 자치 부회장)에 이끌려, 교실 앞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더니, 과자를 하트 모양으로 연결해 주던 반 학생들이 말이다. 내가 윗글에 썼던 원래 제목인 ‘사랑한다’를 후에 ‘이해한다, 믿는다, 함께 가자.’로 바꾸게 된 것은 세계의 모습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표현한 것이다. 담임 교사를 하면서, 그 관념적인 말에 들어간 의미를 하나, 하나 발견하게 되었다. 학생들의 시시콜콜한 사연과 사건을 매일 접하면서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래서 그들에 대해 믿지 못한다면 도저히 함께 갈 수 없을 것이다. 사랑하여 결혼한, 부부 사이에서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 일어난다. 휴. 얘는 왜 이렇게 맨날 사연이 많을까. 얘네들은 왜 그렇게 싸울까. 우리는 다른 반과 달리 왜 이렇게 단합하지 못하고, 학교 행사 때마다 어설플까. 그렇게 공부 열심히 하라고 당부했는데(종례도 제일 오래 했건만), 반 평균이 이 모양일까. 한 마디로 오매불망 학생들을 위해 애썼는데, 왜 내 사랑하는 애들이 맨날 내 속을 썩일까. 사랑의 관념 속에 허우적거리며 빠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허우적거리게 했다고 생각한 그 당사자들이 나를 물속에서 꺼내 준다. 내 손을 놓지 않는다. 고난의 폭풍우 속에서 나를 의지하며, 같은 배에 타고 있음을 알려 준다. 내가 실망하여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면, 교무실까지 내려온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우리 이 폭풍우를 같이 헤쳐 나가요. 선생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선생님을 믿어요. 그러니 우리 함께 가요. 한 명의 대단한 교사보다 이십여 명의 학생들이 크고 놀랍다. 그들은 사랑을 알고 있다. 앞서서 '나는 누구인가'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나를 생각하는 시를 지어보라고 하니, 의외의 학생이 나와서 발표하기도 하고, 의외의 부끄러운 고백이 나오기도 한다.’
라고 쓴 부분의 ‘의외의 학생’ 역시 그렇다. 새 학년이 시작하기 전 학생 명단을 미리 받아 보았는데, 생활기록부를 미리 훑어보니 유독 결석이 많은 학생이 보였다. 불러서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오래전 일이라 자세히 생각나진 않지만, 학생의 이런저런 고민을 들을 수 있었다. 사실 학생도 갑자기 새 담임 교사가 불러서 아주 낯설었겠지만 자기 이야기를 차분하게 했다. 즉 몸이 아파서 결석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아파서 결석한 것이라고.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역시 모르겠지만 울었던 건 확실히 기억난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내 말과 모습에 학생이 당황해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게 생각난다.
희한하게도 그 상담 이후 시작한 2학년 한 해 동안 그 학생은 결석을 거의 하지 않았다. 다행히 마음이 맞는, 차분하고도 조용한 친구를 반에서 만나서 더욱 힘이 됐다. 그 후 학생과 만나서 울 만한 사연과 사건은 한 번도 없었다. 정말 여느 학생들처럼 성실한 생활을 이어갔다. 그래도 공부 시간에 스스로 발표하는 적극성을 가진 건 아니었다. 그런데 나의 연구 수업 때 이 학생이 손을 번쩍 들고 자신이 창작한 시를 발표한 것이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던, 정말 유일무이한 사건이었다. 사실 뒤에 선생님들이 수업 보느라 쭉 앉아 있는 상태에서, 자기 성찰적 시를 발표하는 게 쉽지 않다. 그럼에도 난 미리 학생들을 지정하지 않았다. 담임한 학급 학생들이 내 마음을 이해할 거라 믿고 함께 수업하는 배에 올라탄 것이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도 반장과 부반장은 눈치가 있고, 수업 내용도 충분히 이해하니, 손을 들겠지. 서너 명이 손을 번쩍 들었는데 그중 한 명이 너무 의외여서, 수업 끝나고 불러 물어보았다. 아까 손 들어줘서 고맙다고. 어떻게 용기를 냈냐고. 그랬더니 너무나도 담담하게 말했다. “제가 오늘 날짜 번호여서요.” 원래 수업할 때 질문을 많이 하는 편인데, 학생들이 발표에 부담을 안 느끼도록 미리 발표 예정자를 만들곤 했다. 수업이 든 날의 날짜로. 오늘이 3일이면 3번, 13번, 23번, 33번 이런 식이다. 그러면서 나한테 한 마디 덧붙였다. “아까 손 든 애들이 오늘 날짜 번호예요.” 희한하게도 그 학생의 날짜 번호 수업이 연구 수업한 그날 하루였다!
한 해, 한 해 세계에 뛰어들면서, 깨달은 ‘세계’의 의미를 나만의 방식으로 날카롭게 파고 들어가는 글이 수필이다. 흔히 ‘붓 가는 대로 쓴 글’이라고 해서 정말 낙서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건 오해이다. 수필은 세상이라는 폭풍우를 견딘 그 사람만의 나이테, ‘연륜’이 드러나는 글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세상을 산(견딘) 후, 쓸 수 있는 글이라고 한다. 초등학생이 잘 쓸 수 있는 문학 장르가 아니다. 내가 초등학생 시절 문예반에서 쓰던 것은 문학으로의 수필보다는 그저 산문에 가까웠다. 주변에서 있었던 사소한 일을 잘 관찰하여, 그것에 대한 느낌을 상세히 풀어내는 것이다. 사적인 일기를 마치 공개하기 위해, 좀 더 수려하게 쓰는 수준이었다.
일기 얘기가 나온 김에, 앞서 군데군데 인용했던 나의 소설, ‘어둠을 간직한 낮’에서 김휴가 방학 일기를 책처럼 두툼하게 쓴 부분이 나오는데, 짐작하시겠지만 내가 그렇게 일기를 썼다.
그때 이후, 나는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 그건 단순히 혼자 있다는 것을 넘어서, 나도 언젠가 없어질 수 있다는 것을 예고 받은 듯한 공포영화였다. 아무리 큰 아버지네 식구들이랑 같이 산다 해도, 그건 해결될 수 없는 문제였다. 오로지 공포를 없애기 위해 밥을 먹듯 책을 읽어댔다. 폭식증 환자처럼. 책을 옆에 쌓아두고 읽었다. 책장에서 빼는 시간도 아까웠다. 그 잠깐의 시간 동안 다시 내 목을 조여 오는 듯한 차가운 손길.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특별히 무엇을 써야 한다는 것을 넘어서 책을 읽는 느낌으로 써댔다. 일기도 세, 네 장씩 썼다. 친구들은 주로 무엇을 했다, 했다는 방식으로 쓰는 데 나는 솔직히 책을 읽고, 억지로 잠을 자고 그런 것밖에는 행동의 일과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바를 썼다. 오늘은 ‘아침’에 대하여, 내일은 ‘밥을 세 끼 먹는 것’에 대하여, 다음 날은 ‘즐거움’에 대하여, 라는 식이었다. 어차피 나의 삶은 내가 살면서 생각한 것이 아닌가. 본질적으로 일기는 ‘나’라는 존재에 대해 규명하는 것인데, 그것이 행동 중심적이 아니라, 사고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것뿐이다. - '어둠을 간직한 낮' 중
그렇다고 김휴처럼 멋지게 썼던 건 아니다. 너그러이 이해하시다시피 나의 어린 시절을 허구적으로, 그럴듯하게 가공한 것이다. 나의 일기 사랑은 고등학교 시절까지 계속된다. 그러다 보니 대학 가서 보고서 쓰는 게 정말 재밌었다. 하. 이런 숙제라면 얼마든지 하겠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을 산문적으로 쓰는 걸 계속 해 온 사람이다 보니 거의 ‘물 만난 고기’가 된 것이다. 하루를 상세히 관찰하면, 그리고 매일 읽는 책을 깊게 다이빙해 들어가면 나도 모르게 ‘홀린 듯이’ 글을 쓰게 된다. 마치 바닷속 물고기처럼. 이 세상은 여러분의 깨달음을 기다리고 있는, 거대한 바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