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청할 만한 당신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은 어렵다. 아니 어려워야 한다. 그것이 쉽다면 사실 얻은 것이 아니다. 마음은 갈팡질팡 어지러운 것이며, 겉으로 보이는 것이 곧 그 사람의 내면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어두운 내면을 가리기 위해 오히려 밝게 위장하는 경우에 대해 늘 스스로 조심하고 타인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학생부종합전형은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 전형이다. 이것은 학생이 한 ‘학교생활’을 교사가 보고, 듣고 ‘생활기록부’에 기록한 것을 근거로 한다. 이전에 ‘귀족’ 전형이라 한 것은 학교 외부 기록이 부모의 능력과 배경에 따라 가능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철저히 학교 ‘안’에서의 기록만이 유의미하며, 그마저도 가정환경 및 학교 배경 등을 나타낼 수 있는 모든 어휘는 금기시된다. 학생과 학교의 배경 즉 껍데기가 아니라, 철저히 그 안에서의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학생 본인의 순전한 열심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을 교사에게 전달해야 한다. 그 지점에서 당신의 ‘지혜’가 필요하다. 무엇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무엇을 바로 알게 하는 것은 아니다.
비단 학생뿐 아니라 교사 역시 그렇다. 수업을 그저 한다고, 학생이 수업 내용에 대해 온전히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교사는 단순한 지식 전달자가 아니다. 성실을 통해 학문에 대한 지혜를 연마한 이가 교사라 할 수 있다. 그러기에 감히 AI의 한계를 채울 수 있는 당당함을 내재하고 있어야 한다. 실력은 ‘성실’을 기반으로 한다. 성실은 맡은 바 일을 꾸준히, 진심을 다해 수행하는 것이다. 교사는 앞서 언급한 ‘삼독자’ 이상의 성실한 노력을 앞세워, 가르치는 것에 대한 진정한 ‘상속자’가 되어야 한다. 만약 실력이 부족하다면, 이것을 스스로 애타게 생각하며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지식 이상의 ‘지혜’가 생길 수 있다. 교탁의 본인을 바라보고 있는 학생들을 생각하면, 그들이 왜 아침 일찍부터 등교해서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 깨달아야 한다. 그들은 집에서도 지식은 전달받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당신에게 원하는 것은 다시금 말하지만, 단순한 지식이 아니다. 그것은 AI 이전에도 인터넷 강의를 통해 충분히 충족할 수 있었다.
지혜는 지식의 수준을 뛰어넘을 때 발현될 수 있다. 이 지식이 현 상황에서 왜 필요한가. 나아가 나의 삶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에 대해 짚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의 폭넓은 경험적 예시가 활용되어야 한다. 예상하듯이 보기에 산뜻한 교사가 쉽게 달성할 수 없는 영역이다. 물론 그들에게는 에너지와 열정이 있다. 하지만 교사는 학생에게 일종의 ‘약장수’ 수준을 뛰어넘는 ‘스승’이 되어야 한다. 지식에 깊이를 더할 수 있는 무게감을 지니려면 어쩔 수 없이 ‘내공의 시간’이 필요하다. 과일이 그저 익어가는 것이 아니다. 터질 것 같은 햇빛의 강렬함을 묵묵히 인내하며 받아들여야 익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교사가 경청하게 할 만한 학생의 지혜가 또한 필요하다. 학생 이상의 학력 수준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성실을 기반으로 한 순수한 열정을 보여주면 된다. 진정한 교사라면, ‘성실’한 학생들을 눈여겨본다. 어떻게 보면, 한 인간에게 ‘성실’이라는 타이틀을 주는 첫 번째 대상은, 바로 그의 곁에 있는 ‘담임교사’일 것이다. 긴 시간 동안 그 학생을 객관적으로 지켜보며, 그에 대해 평가해야 하는 사람이다. 나 역시 ‘성실’하다는 평가를 초등학생 시절 담임 선생님께 들었다. 방과 후 청소 당번으로 교실 창틀을 닦고 있을 때였다. 다른 애들은 주목하지 않는 창틀의 이음새를 정성스럽게 걸레질하고 있을 때, 무심코 지나가던 담임 선생님께서 나의 ‘성실’을 발견하셨다. 학창 시절 받았던 그 어떤 상장보다 생생하게 기억하는 최초의 ‘상’이었다.
예전 1학년 담임교사를 하고 있던 때 만났던 그 학생도 그랬다. 학교에서 공부 습관을 형성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나눠주던 두꺼운 플래너가 있었는데, 나는 우리반 학생들의 ‘성실’을 확인하기 위해 매주 한 번씩 학생들의 플래너를 확인하며, 메시지나 확인 스티커를 붙여주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천편일률적인 남색 커버의 학교 플래너 중 예쁜 헝겊을 씌워 개성적으로 꾸민 플래너가 하나 보였다. 그리고 학생들이 제출하는 플래너들중에 알록달록 학생들의 개성을 담은 헝겊 표지가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그 학생이 자신의 플래너처럼 원하는 학우들을 위해, 플래너 표지를 개성적으로 제작해 주기 시작한 것이었다. 물론 수작업으로 최대한 정성스럽게 만들다 보니, 신속하게 하지는 못했지만, 친구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해 각자의 기호에 맞는 표지를 만들려는 장인 정신을 발휘하는 것이 보였다. 그 후에도 나의 칭찬에 용기를 얻었는지 그 학생은 자신의 재능을 발휘해 교탁 위 부착한 좌석표도 학생들의 캐릭터를 만들어 제작하곤 했다. 담임교사는 학생의 그런 모습을 두루 반영하여, 한 해 동안의 생활을 생생히 기록하였고, 나의 예감대로 그 학생은 ‘학종’으로 학생이 원하는 대학의 의류 관련 학과에 합격했다.
무작정 찾아와 과목에 대한 심화 탐구를 했다며, 보고서를 제출하고 생활기록부에 기록해달라는 학생들이 있다. 물론 보고서는 화려하다. 하지만 나는 그 이전까지 학생의 반짝거림을 보지 못했다. 그 학생이 그간 성실했다면, 교사가 몰랐을 리가 없다. 관계는, 신뢰는 순간적으로 쌓아지지 않는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학생은 교사의 마음을 쉽게 얻을 수 있다. 교사는 학생의 성실에, 순수한 열정에, 그것을 지혜롭게 드러내는 데 쉽게 마음을 뺏긴다. 교사와 학생으로 만난 우리 모두 넋을 잃을 정도로, 당신의 매력에 빠지고 싶다. 우리의 마음에 뿌리내릴, ‘경청할 만한’ 당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