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을 건네는 일에 대하여(1)

by 한이루

나 스스로에게 부정의 상황에서 억지 긍정으로 희망을 강요하며 버텨냈던 시절이 있었다. 누군가에게 난 긍정적인 사람이라 비춰질 수 있고, 때로 부정적인 상황에 놓인 누군가가 보기엔 이질감이 강하게 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글을 쓰기 전, 한가지 분명하게 하고 싶은 것은 부정을 통과하지 못한 긍정은 폭력이 될 수도, 사람을 쉽게 망가뜨릴 수도 있지만, 스스로 부정의 상황에서 긍정으로 건너온 사람의 긍정은 어쩌면 그 폭력을 쓰냐, 쓰지 않느냐의 선택에서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쓰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하고 싶다.


한때 스스로에게 강요했던 긍정이 있었다. 매우 힘든데도 잘 할 수 있다. 이겨낼 수 있다. 잘 될 거다. 되도 않는 사주팔자를 들먹거리며 난 잘 살거다라며 무대포 적인 긍정. 그러나 그것은 낭만도, 낙관도 아니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한 생존 전략에 가까웠다. 부정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 속에 있는 나를 있는 그대로 보면, 그 비참함에 삶이 붕괴될 수 있다는 걸 짐작했기에, 감정을 정리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다음 발을 내딛기 위해 선택한 임시 방편이었을 뿐이었다.


만일 전쟁통에 발 한쪽이 잘려나갔다고 그 자리에 앉아 휴식을 취하며 그 큰 상처가 아물기를 바라고 있는다면, 곧 적군에게 발각되어 온 몸이 벌집투성이가 되어 회복의 맛을 보지도 못한 채 삶은 끝날수밖에 없다. 아파도 걸어야 했고, 힘들지언정 한 발이라도 있음에 감사하며, 총총 뛰면서 이동해야 했을 만큼의 ‘할 수 있다’와 ‘포기하지 않으면 잘 될거야’라는 긍정이 필요했을 만큼 내 삶은 정신적으로 많이 피폐해져 있었고, 안정되있지 못했었다.


이 과정을 거쳐오면서 나는 누군가에겐 ‘긍정적인 사람’이라 읽힐수도 있겠구나 싶었는데, 문득 그것이 이질감으로 다가가진 않을까? 싶은 생각을 했었다. 때문에 누군가가 억지 긍정을 쏟아내고 있는 것을 볼때엔, 쉽게 말을 얹지도 못하겠을 뿐더러 함부로 판단조차 못할때가 종종 있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기에.


부정을 통과하지 않은 긍정은 타인에게 폭력이 될 수 있지만, 부정을 통과해본 사람만이 그 폭력을 사용할 수도,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는 그 선택지 앞에 설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나 자신을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 긍정을 사용해본 사람은, 타인을 망가뜨리는 방식으로 그 언어를 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의 목적으로 긍정을 사용하게 된다. 내가 나를 살린 언어를 누군가에게 쓴다는 것은 살리고 싶은 마음이 무의식적으로 깔려있지만, 여기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되는 것은 내가 나에게 쓰는 말과, 타인에게 던지는 말의 책임 무게의 차이는 크다. 내가 나에게 한 말은 언제든 다시 정정할 수 있고, 바로잡을 수 있다. 그러나 타인에게 던진 말은 한번 쏟아버리면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물과도 같기에 신중해져야 할 필요가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걸 간과하고 그저 자신의 입장에서 좋은것을 주겠다며 누군가에게 서슴없이 상처가 될 만한 말과 언어를 그대로 남용하고 있고, 나 또한 그랬었던 적이 있었음을 누군가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나 스스로는 긍정을 매우 지향하지만, 누군가에게 함부로 긍정을 강요하고 싶은 마음은 이제 추호도 없다. 내가 그랬듯, 그 누군가도 자신의 방향과 삶을 걸어가는 속도가 있을테니 말이다. 또한 자신에게 스스로 던지는 긍정은 자신을 위한 것이지만, 누군가 힘든상황에 쳐해있는 때에 긍정을 강요하는 것은 더욱 그 상황을 힘들게 느끼게 할 뿐이더라.


긍정뿐이 아니다. 쓴소리를 하겠다며 조롱하는 듯한 쓴 맛을 보여주기 식으로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저렇게 말한다고 한 사람이 자신의 자존심을 누그러뜨리며 그 말에 수긍하게 될까? 차라리 그럴 시간에 당신의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편이 낫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은 더 이상 영향력을 갖지 않는다. 한 사람을 존중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나의 삶을 더 낫게 만들어줄까 싶은 생각이 무의식에 깔리기 때문이다.


이 글은 시리즈로 연재 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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