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15일, 오늘은 날이 비교적 따듯한 하루였습니다. 하늘은 왠 겨울의 추위를 빼앗아 간 것이 분통하다는 듯이 아무리 자주 올려다보아도 그 맑은 하늘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듯 뿌옇기만 했지요. 추우면 추울수록 겨울 하늘이 맑게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일까 싶어 찾아보았습니다. 마냥 기분탓은 아니었나 봅니다. 여름과 달리 겨울은, 기온이 낮아 공기가 가라앉고, 수증기가 적으며 미세 입자가 쉽게 땅으로 내려앉기 때문에 빛을 산란시키는 물질 자체가 적어진답니다. 그래서 하늘이 더 깊고, 더 멀리 보이는 것이랍니다. 하늘을 올려다보길 좋아하는 탓에 왜인지 겨울이 마냥 좋습니다. 제가 태어난 계절이 겨울이라 그런것만은 아닙니다. 감상 중의 생각이 잘 흘러가는 덕도 있습니다.
저의 일평생 중 꽤 긴 시간동안은 작은 목소리, 타인을 위한 침묵과도 같았습니다. 물론 가족에게 만큼은 밖에서 내지 못했던 목소리도 내보았지만, 오랫동안의 침묵에 성대는 메말라 있었고, 결국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아듣기 어려운 정도의 목소리였지요. 누군가의 곧은 생각에 상처내기 싫었던 굳은 다짐도 섞여 있었습니다. 어쩌면, 곧았던 내 생각에 대한 고집이 상당한 사람이었기도 합니다. 내가 싫은 행동을 남에게 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살던 때였고 그 기간이 꽤 깁니다. 지금은 다른 관점을 수용하려 노력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싫다고, 타인이 마냥 싫은것이 아니며 내가 좋다고, 타인이 마냥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으니까요. 배려는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에서부터 시작입니다. 내가 싫은 것을 하지 않는 것은, 배려라기보단 나 자신에게 흠을 내지 않고자 하는 마음이 우선이지요. 진정 배려는,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하였습니다. 무지 신나더군요. 이 전의 경청과는 달랐습니다. 상대가 무슨말을 하려는지, 내 입장을 내려 놓고, 시간속에 담겼던 이야기들을 총집합 시켜봅니다. 하나의 스토리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렇게 상대의 세계를 관찰합니다. 공통된 세계가 보입니다. 그 전까진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었습니다. 경청은 그저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흥미, 관심, 그리고 다른 관점에 대한 호기심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여유가 없었던 경청은 그저 나를 챙기기에 급급했을지도요.
그렇게 관심은 곧 애정으로 변해가는 듯, 나의 세계를 오픈하기 시작합니다. 당당히. '당신의 관점과 나의 관점이 비슷한 것이 있으며, 다르다'라는 것을 서스럼 없이 이야기합니다. 상대도 나를 파악해가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우리에겐 서로가 서로에게 지켜야 할 선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나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상대에게 선을 알려주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전엔, 그것을 왜 마냥 상처를 주지 않을까? 라고만 생각 하였을까요. 정확히는,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나를 거절당하기 두려운 마음은 제겐 조금은 당연하듯 자리잡힌 두려움 중 하나였습니다. 그렇기에, 꽤 오랜시간은 포용이라는 것에 기대를 내려놓고 살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두려움은 이제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한 사람으로부터 따듯함을 얻고야 말았고, 한 삶에 작은 낭만을 찾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