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우리는 사람이 아닌 시스템을 바라봐야 한다.
대통령의 탄핵은 명백해 보인다. 그러나 극단적 성향의 뉴미디어에 편승한 여당의 행태로 한국의 법치주의가 무너질까 노심초사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이번 사태로 한국 사회가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있지만, 21세기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에 의거한 법과 질서를 갖춘 완연한 민주국가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탄핵 찬반 논쟁은 이념의 대립이며, 탄핵은 오로지 ‘법치주의’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더 이상 사회적 자원을 소모적 정쟁에 낭비해서는 안 된다. 탄핵은 헌법재판소의 시간에 맡기고, 소가 뛰쳐나간 외양간을 고쳐야 할 시간이다.
고쳐야 할 외양간은 정치 시스템, 언론 시스템, 헌법 시스템 등 크게 세 가지다. 지난 대선을 떠올려보자. 언론은 지난 대선을 최악이 아닌 ‘차악’을 뽑는 선거로 규정했다. 유권자들은 선택을 강요받았다. 형식적 민주주의에 그치는 선거였다. 차악을 뽑도록 강제된 선거는 민의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정치권의 직무유기다.
직무유기는 거대 양당 체제에서 비롯된다. 지난 대선 당시 국민의힘은 국가의 리더가 아닌 상대당 후보를 이기기에 적합한 후보를 내세웠다. 더불어민주당은 팬덤정치에 휩쓸려 당내 경선이 무의미했다. 거대 양당이 권력을 주고받는 핑퐁게임은 이분법적 사고가 사회에 뿌리내리도록 한다. 축구, 복싱 등 두 사람 혹은 팀이 경쟁하는 스포츠에서는 상대를 패배시키는 것이 내 승리다. 자연스레 경쟁 구도가 만들어진다. 수영, 육상 등 세 사람 이상이 경쟁하는 스포츠에서는 상대가 아닌 앞을 바라본다. 경쟁이 아닌 ‘견제’에 그친다.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대안이 있는 정치 체제가 필요하다.
집권여당을 평가하는 성격이 강한 지난 총선에서 야당이 크게 이긴 것은 정치공학적으로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결과였다. 그럼에도 일부 극우 뉴미디어를 중심으로 부정 선거 의혹이 꾸준히 제기됐다. 이 불씨에 소위 엘리트 집단인 대통령과 여당이 가담하는 순간 불이 붙었다. 그 결과가 12.3 비상계엄 사태와 이어진 서울서부지법 폭동 사태다.
이는 언론 시스템의 문제로 이어진다. 대통령은 자신의 직책과 권한을 이용해 레거시 미디어를 공격하고 있다. 공영방송을 정부의 확성기로 만들고, 언론의 권력 비판 기능을 편파 보도로 치부한다. 여기에 커지는 뉴미디어의 영향력이 힘을 보탰다. 뉴미디어의 무기인 자극성은 기존 언론의 무기인 신뢰도를 손쉽게 이긴다.
언론 시스템은 뉴미디어의 화려한 등장으로 과도기를 겪고 있다. 뉴미디어에 대한 제재는 표현의 자유를 해칠 위험이 있다. 뉴미디어와 레거시 미디어의 경계가 무너져야 한다. 언론 시스템이 지켜온 건강한 저널리즘이 뉴미디어에 성공적으로 안착해야 한다. 레거시 미디어가 될 수도 있고, 뉴미디어 생태계에 맞게 새롭게 탄생하는 언론이 될 수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이 인용되면 한국 사회는 너무 짧은 시간 동안 두 차례 대통령 탄핵을 맞게 된다. 이 현상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부적합한 개인이 권력을 휘두르게 한 시스템의 오류를 수정해야 한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개헌특위 구성을 재차 추진하고 있다. 개헌은 국민투표를 거치는 만큼 민의가 직접적으로 반영된다. 따라서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만 가능하다. 불과 한 달여 전, 대통령의 무능과 폭거가 융합한 결과를 국민이 두 눈으로 목격했다. 국회의사당에서 벌어진 군인과 시민의 몸싸움을 기억하는 지금 개헌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개헌보다 '정권 잡기'를 우선시하고 있는 모습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는 언제든 부적합한 사람이 권력을 얻을 수 있고, 한 권력자의 오판이 국가를 흔들 수 있는 시스템을 여실히 보여줬다. 고도화된 사회에 맞는 새로운 헌법 시스템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