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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나 Sep 25. 2023

가족이랑 그러는 거 아니야.

남편과의 운전 연습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다





남편이라는 가족과는 운전연습을 같이하면 안 된다. 아마 하늘도 알고 땅도 알 것이다.



많은 사람들 역시 통념적으로 남편에게 운전을 배우면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터이다. 다시 운전을 배운다고 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절대 남편한테는 운전을 배우면 안 된다고 했다. 싸움 난다는 거다.  나도 그런 얘기들에 대해 귀가 따갑게 들어왔고, 지난번에 맛보기로 살짝 겪어본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난번에는 남편과 ‘슬슬’ 운전연습을 했기에 부부싸움도 ‘슬슬’ 했던 정도여서 남편과의 운전 연습도 나름 할 만하다고 착각해 버렸다. 당연히 이번 운전 연습은 좀 더 ‘본격적’이었기에 이제는 남편과 좀 더 ‘본격적’으로 대판 부부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운전을 즐기고 잘했다. 운전을 즐기기 때문에 잘하는 걸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래서 남편 차를 그저 ‘타고’ 다닐 때는 편하고 좋았다. 특히 아이와 함께 뒷자리에 탈 때는 말이다.

 


그러나 내가 운전을 본격적으로 연습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남편이 운전할 때 조수석에 앉기 시작했다. (※ 이전에 썼던 '운전면허를 딴 사람이 초보 운전자는 아니다'라는 글에서 강사님이 하신 말을 참고해 주세요.) 그리고 내가 운전할 때는 당연히 남편이 조수석에 앉았다. 아무튼 둘 중 한 사람이 조수석에 앉으면 안 되는 일이었는데 말이다. 조수는 조수노릇만 해야 하는데 참견을 하는 게 문제다.


 

내가 운전 열등생이 되면서 느낀 바 중 하나는 뭐든지 잘하는 사람은 못하는 사람이 왜 그런지 절대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등생은 열등생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열등생의 기분을 너무 잘 알게 되었다.  

 

남편의 설명은, 자신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상세하나, 내 입장에서는 군데군데 조각이 빠져있는 퍼즐과도 같았다. 남편은 효율적이라고 주장하는 운전법을 알려주었으나, 초보운전자에게는 당연히 효율적인 운전이라는 것 자체가 성립될 수 없는 일이었다.

기본을 모르면 응용을 못하는 법. 속도를 내며 달리지 못하고, 끼어들 때 끼어들지 못하고, 신호를 착각하고, 네비를 읽지 못해 길을 돌아가는 것은 내 입장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그럴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라고 본인은 주장하고 있다) 끼어들기에 실패한 나에게 내 운전대를 잡고 밀어붙이며 말했다. “아! 거기서 들어갔어야지!”라고.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들이 다 만난다는 노래 가사도 있는데, 길도 다 이어져 있으니까 자꾸자꾸 가다 보면은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겠나. 꼭 끼어들어야만 했을까?



“여기서 못 들어가면 저기서 유턴해야 해!” 남편은 다시 나를 푸시했다.

“아니 내가 유턴을 해보고 싶었을 수도 있잖아?”



이렇게 내가 뭔가 타이밍을 놓치면, 남편은 축구경기를 관람하다가 우리 편이 실수로 득점에 실패했을 때 내는 것 같은 안타까운 탄성을 터트리곤 했다. 그리고 남편의 목소리도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다.

결국 서운한 내가 “지금 나한테 화내는 거야?”라고 물으면,

남편은 “아니 화내는 거 아니거든”라고 답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화내는 것 같은 말투인데?”라고 다시 따지면,

“지금 사고 날 뻔해서 급하게 말해서 그래. 화 안 냈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화내는 게 분명한데 남편은 이를 악물고 화내는 게 아니라고 했다.



나는 서러워졌다. 정말 진심으로 나는 도로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남편은 나의 최선을 최선이 아니라고 보고 있었다. 결국 갈등은 점점 심화되었다.



도로 주행속도에 맞춰서 달리고 있노라면, 남편은 “네가 이렇게 운전하면 도로 흐름에 방해되는 거야.”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주위를 한 번 보면 다 제한속도보다 빨리 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거북이도 자기 속도대로 달리다가 토끼를 이기지 않았나. 어쩌면 지금 쌩쌩 달려가는 차들도 저기 앞에 정지 신호에서 함께 만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다른 차들이 쌩 하고 나를 추월해 가면, "급한 분들 먼저 가세요~." 라면서 순순히 그들을 보내 줄 수 있었다. 순순히 그들을 보내줄 수 없는 건 남편일 뿐.



결국 나는 남편 같은 사람들 때문에 초보운전자가 설 자리가 없는 거라며 분개하고 말았다. 서운해서 눈물이 훌쩍훌쩍 나기도 했다. 남편과의 운전 연습이 계속될수록 나는 지적만 당하고 있다고 느꼈다. 나는 운전이 점점 싫어졌고, 무서워졌고, 어려워졌다. 남편과 운전 연습을 다시 시작할 때 남편에게 칭찬을 아끼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는데, 남편은 칭찬에도 인색했다. 아마도 칭찬할 게 너무 없어서, 칭찬할 걸 억지로 찾으려다 보니 정녕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뭐, 그랬을 수도 있지만.



이렇듯 운전 연습을 하며 부부사이의 불협화음이 끊이질 않았다. 때로는 운전을 시작하기 전에, 오늘은 서로 다투지 않기로 다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예상된 파국으로 끝나고야 말았다.



때로는 남들이 다 'NO' (남편과의 운전 연습은 'NO')라고 말했을 때, 'NO'라고 동의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즉, 남들이 하지 말라는 건 다 이유가 있으니 하지 말라는 건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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