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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나 Sep 27. 2023

결국 남편이 나를 포기했다.

남편의 감정 변화 과정





남편과의 운전연습에서 나는 안전이 제일이라고 주장했다. 강해져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나, 나는 천천히 강해질 예정이었으므로. 물론 그런 주장을 남편은 잘 이해하지 못했다. 남편은 나에게 사고를 두려워하면 안 된다고 했다. 다 그런 사고를 통해 배우는 거라고. 그리고 시내에서 사고가 날 경우엔 큰 사고가 날 확률이 적어 어지간하면 죽지 않으니 너무 걱정 말라는 말을 덧붙이며 나를 달랬다.



그동안 나의 건강과 안전에 대해 때로는 과민할 정도로 걱정하던 남편이 운전에 있어서는 어쩜 이렇게도 대범해진 것일까? 혹시 나 몰래 내 앞으로 무슨 보험이라도 들어 놓은 거 아냐?



남편에게 운전을 배우면 배울수록 내가 차 뒷자리에서 바라보던 남편과 차 앞자리에서 바라보는 남편은 사뭇 다른 사람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운전도 모르겠는데, 남편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혼란 그 자체였다. 아마 남편도 그랬을 것이다. 물론 그 사람도 나를 이해해 보려고 했을 것이다. 그게 쉽지 않았을 뿐.


 

나에게 운전을 가르치던 남편을 관찰해 본 결과, 남편 또한 감정적 요동을 겪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당시 관찰한 남편의 감정변화 그러데이션을 정리해 보면 이러했다.



여기서 나오는 감정 변화 6단계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죽음의 5단계 이론’ (1. 부인, 2. 분노, 3. 거래, 4. 우울 5. 수용)과 흡사하게 대응되는 측면이 있다.



  1. 격려 (시작은 그러했다) - 2. 거래 (운전에 능숙해지면 경차를 좋은 차로 바꿔주겠다고 딜을 제시함) - 3. 의문 (어쩜 이렇게 운전에 대한 기본 지식을 모르지?, 어떻게 이렇게까지 운전을 못할 수가 있지?) - 4. 분노 (와이프가 운전하는 차를 탔다가 생명의 위협을 느낀 순간 차 세우라고 버럭 해버림. 나는 강사고 너는 학생인데 학생이 말을 안 들음. 최선을 다해 가르쳐주는데 와이프가 화를 내서 나도 화가 남) - 5. 부인 (우리 와이프가 이렇게까지 운전을 못할 리가 없어. 우리 와이프가 운전을 못하는 게 아니고 노력을 하지 않아서 그런 게 틀림없어) - 6. 체념과 수용 (그냥 우리 와이프 운전 포기하고 버스나 택시 타고 다니는 게 좋을 듯)



오래전에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이 화제였던 적이 있었다. 차이를 강조하는 그 책의 제목처럼 남편과 나는 마치 다른 행성에 사는 사람같이 서로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의 간극은 이렇게도 넓고 깊어서 자칫하다가는 빠져 죽을 것만 같았다. 다행히도 한 사람이 죽기 전에 운전 연습은 중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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