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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나 Oct 04. 2023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데

그 적이 나였다.  





남편은 나와의 운전 연습을 중단하고 나자 마치 고난의 세계를 떠나 깨달음을 찾은 사람처럼 평온을 되찾았다. 포기하면 편하다더니. 그 모습에 나도 하마터면 운전에 대해 깨끗하게 포기할 뻔했다. 차라리 깨끗하게 포기하는 게 행복할 거라며 나 자신을 거의 설득할 뻔 하기까지 한 것이다.


하지만 어쩐지 모를 찜찜함이 나를 붙잡았다. 문제의 구체적인 원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문제의 원인을 알게 된다면, 문제를 깨끗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여기서의 문제는 당연히 운전을 잘하지 못하는 나였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데, 결국 운전에서 가장 큰 문제인 적은 나 자신이었다. 그리고 그 적인 나에 대해서 잘 알아야 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정말 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걸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계절이 바뀌어 옷정리를 할 때, 이전에 입었던 먼지 묻은 옷들을 다시 꺼내 보면 가끔 옷 주머니에서 넣어놓고 잊었던 돈을 발견할 때가 있다. 때로 나 자신의 조각들은, 옷 안에 넣어두고 오랫동안 잊었던 그 꾸깃꾸깃한 지폐와 같이 느껴졌다. 찾았을 때에야, "이게 여기 있었네?" 싶은 그런 것. 어쩌다 발견하지 않았으면 오래오래 찾지 못했을 무언가. 그래서 나는 옷 주머니를 뒤져보기로 했다. 거기 그 안에 내가 몰랐던 나의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즉, 내가 운전을 잘하지 못하는 원인을 찾기 위해 내 내면의 세계를 탐구해 보기로 했다는 것이다. 무언가 발견하기를 희망하면서. 기왕이면 큰 거?


뭔가 명확한 게 나오기를 바라며, 혼자서 한동안 주머니를 뒤져보았지만 딱 이거다 싶은 건 발견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한 원인 파악을 위해 여러 사람들에게 의견 및 조언을 구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는 그저 막연하기만 할 따름이었다.

 

그즈음 나는 새로 산 차를 예쁘게 꾸며 놓은 뒤 (차 꾸미는 건 즐거웠다), 차를 주차장에 새근새근 재워놓고 (이런 게 주객전도인가 보다), 새벽에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대중교통으로 출근을 하곤 했다.

배차간격이 어마어마한 버스를 놓칠 것 같으면 종종 택시를 타기도 했다. 그러다 택시를 탔을 때, 가끔은 택시 기사 아저씨들과 내 문제에 대해 나름 심도 싶은 토론(?)을 나누게 되는 일도 생겼다. 그러려고 굳이 의도 한 건 아니었는데, 때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얘기가 그렇게 흘러가고는 했다. 여기서 그중 일부를 대화체로 소개해보려고 한다.     



<택시기사 아저씨와의 대화 1>     


택시기사 아저씨 1: (운전을 잘 못하겠다는 초보 운전자의 하소연을 들으신 후) 아니, 그렇게 운전이 자신이 없고 무섭다면.. 혹시 뭔가 트라우마 그런 게 있었던 게 아닌가요? 그런 사람들이 가끔 있어요. 큰 사고라던지 그런 거 때문에.

나: 트라우마요?... 사고요?... 음... 어! 저 중학생 때 생일날 교통사고가 난 적이 있어요. 혹시?     


나는 중학생 때  교통사고가 난 적이 있었다. 사고가 나던 날은, 내 생일이었다.

그날 나는 집에 가서 생일파티를 할 생각에 마냥 기분이 좋기만 했다. 학교 수업이 일찍 끝난 날이었으므로 아직은 환한 낮에 친구와 중학교에서 나와 인근 초등학교 앞 횡단보도를 건널 때 일이었다.

당시 횡단보도를 건널 때 보행자 신호는 파란불이었는데도 옆에 있던 친구와 같이 차에 치이고야  말았다.

가해자는 학교 앞에 주차했던 차를 빼기 위해 후진하던 상황이었다. 후진하면서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 두 명 다 전혀 보지 못했다고 했다.


차에 치였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에 난다. 뇌가 순간적으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건지, 고요한 세상 속에서 눈앞에는 하얗고 작은 동그란 입자들이 가득한 광경이 보였는데, 동시에 누군가가 뒤에서 나를 아주 천천히 그리고 지긋이 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장면이 부욱- 하고 찢기듯 갑자기 정신을 차렸을 때는 온갖 소음이 귀를 찌르듯이 쏟아졌다. 옆에서 걷고 있던 친구는 차 밑에서 누워있는 상태로 얼굴만 간신히 내놓은 상태였다. 그 상태로 운전자를 향해 차를 멈추라는 듯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친구의 목소리에 정신이 약간 돌아오자, 내가 차에 치여 횡단보도에서  옆쪽으로 넘어져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걸 인식한 순간 다리가 욱신욱신 아파왔다.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운전자는 사고를 보고 달려온 경찰에게 사고가 난 적이 없다고 주장했으며, 일종의 공황상태에 빠져 있는 나에게 보호자가 오기 전 사고 현장에 횡단보도가 없었다고 나에게 여러 번 주장했고 나는 얼떨결에 그런 것 같다고 대답하기까지 했다.


당시 친구의 청바지가 사고로 인해 너덜너덜 찢겼는데, 가해자는 의사에게 요즘아이들은 원래 청바지를 찢어서 입곤 하지 않냐며 처음부터 이랬던 것 같다는 황당무계한 말을 하여 의사 선생님에게 면박을 당하기도 했다. 


그 당시 나는 강렬하게, 운전을 저렇게 하는 사람은 도로에 나오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마 그때의 기억이 ‘운전을 저렇게 못하는(못할지도 모르는) 사람’ = ‘나’는 사람을 칠지도 모르니 운전을 해선 안된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택시 기사 아저씨에게 이 사건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며 그때의 두려움과 공포감이 어쩌면 운전을 힘들게 하는 것 같다고 말을 했다.

다행히도 그 당시 이상하리만큼 크게 다친 곳은 없었지만 자칫하다가 생일날이 제삿날로 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은 그때의 기억을 조금 어둑하게 만들었다고도 덧붙였다.      


나: 역시... 사고의 트라우마 때문인 걸까요?

택시 기사아저씨: 그건가 본데!

나: 어쩐지 제가 운전을 너무 못한다 했어요. 세상에.. 트라우마 때문에... 이제껏 몰랐다니...     

 

그렇게 택시기사 아저씨와의 대화는 사고의 트라우마 때문에 운전을 두려워하여 초보운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납득가능한 이유이다. 어린 시절의 강렬한 경험이 무의식 속에서 어떤 식으로 작용할지는 정확히는 모르나,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트라우마로 설명이 된다는 건 너무 그럴듯한 핑계처럼 여겨져서 조금은 우습기도, 조금은 무섭기도 했다. 아마 이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택시기사 아저씨와의 대화 2>


택시기사 아저씨 2: (초보운전자의 얘기에 대해 들으신 후) 하하. 누구나 초보시절은 있지. 근데 운전하며 달리다 보면 좀 즐거울 때도 있지 않아요?

나: 아니요. 달리는 거 무서운데요...

택시기사 아저씨 2: 그럼 어렸을 때 자전거 배울 때 어땠어요? 자전거 타면서 쌩쌩 달리다 보면 신나고 즐겁고 막 그랬을 텐데.

나: 아니요. 자전거 배울 때도 빠르게 달리는 게 무서웠어요...

택시기사 아저씨:.. 자전거 탈 때도 그랬어요?.. 어.. 음... 그러면 원래 그런 거 안 좋아하는 사람인가 보네. 성격이라 이건 어쩔 수 없네... 운전이 재밌고 신나야 금방 늘어요.

나: 제가 원래 겁이 많은 성격이긴 해요... 하긴 뭐든지 즐기면서 해야 금방 실력이 늘긴 하죠.     

 

성향은 어쩔 수 없다는 결론이었다. 운전을 겁내는 성격이면 결국 운전 배우는 게 더딜 수밖에 없다. 아저씨의 안타깝다는 말에 나 역시 내 성격이 안타까울 수밖에.   


어쨌든 택시 기사님들과의 대화를 통해 운전을 못하는 문제에 대해 기존에 알았던 것 외의 원인이 몇 가지 더 추가되거나 강조되어 정리될 수 있었다. 교통사고의 부정적 경험, 겁 많은 성격, 완벽주의자 기질 등등.


그 외에도 다른 택시기사 분들과의 대화로부터 여러 얘기들을 들었다.

개인적인 조언이라면서 초보자에게는 오히려 경차가 운전하기 힘들 수도 있으니 차라리 SUV가 나을 거라는 (차가 높아서 더 잘 볼 수 있다며) 얘기도 들었고,  

의기소침한 나에게 도로 위에 오히려 더 무서운 건 초보 운전자들보다는 인성파탄자들이니까 자신을 가지라고 격려해 주신 분도 계셨다.

또 원래 남편들은 운전에 대해 적절하게 조언하지 못한다는 말을 해주신 분도 계셨다. 본인도 와이프한테 운전을 가르쳐주다가 많이 싸웠다고 하셨는데, 화가 난 부인이 더 이상 자기 잔소리를 듣지 못하겠다며 그 길로 혼자 운전연습을 했다고 하셨다. 결국 그 뒤로 부인은 몇십 년 동안 사고 없이 차를 잘 끌고 다닌다는 행복한(?) 이야기였다.

어떤 분은 본인이 자기 딸에게 운전을 가르쳤는데, 속도를 내라고 하도 강조해서 딸이 도로 주행시험에서 과속으로 시험에 떨어졌다던 얘기를 해주시기도 하셨다.


우연히, 두서없이, 내 목적지에 도착하면 때로 토막 나듯 끊기기도 했던 그 이야기들이 나와 이 세계에 대해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만나본 그분들은 오히려 초보 운전자에 대해 그럴 수도 있다며 관대한 모습을 보여주셨다. 오히려 운전을 업으로 하시는 그분들의 넓은 세계에서는 나처럼 길을 잃은 어린양과도 같은 초보 운전자들도 가끔씩 목격되었던 게 아닐까. 더 넓게 보면 더 많이 보일 테니까.

우등생은 열등생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으나, 때로는 아니기도 한 것 같다.


어쩌면 그 택시 안에서의 대화들이 아직까지 내가 운전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준 게 아닐까 싶다. 이를테면, 이 전쟁터에서 나름 든든한 선임들도 있다는 믿음으로 남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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