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나 Sep 15. 2023

두 번째 운전 연수 이야기

운전 연수는 몇 번 받아야 하는지 누가 정해놨나요?




 

그렇게 시간이 묵묵히 흘러갔다.



첫 운전 연수를 받고 한 이 년쯤 뒤, 남편이 이직을 하고 나 또한 새로운 직장으로 취업하여 살던 곳을 떠나게 되었다.

아이를 낳아 기르며 6년 동안 집에 있다가 다시 사회에 나가게 된 것이다. 그랬기에 모든 것이 정신없었다.

이사 역시 급하게 해야 했다. 일단 친정 근처로 어찌어찌 집은 구해놓았다. 그러고 나서 보니 집에서 남편의 회사는 상대적으로 가까운 거리였으나, 나의 직장과는 거리가 제법 되었다.



신도시의 특성 때문인지, 교통 환경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래서 직장과의 이동에 소모되는 시간이 상당했다. 자차로는 40분~1시간 정도가 걸렸다. 대중교통으로는 1시간은 기본이고, 막히는 시간에는 1시간 30분에서 2시간까지 걸리기도 했다. 더욱이 직장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 배차간격은 40분~ 60분 사이였다.

매일매일 예측하기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출퇴근을 하자 너무 고되었다.

몸과 마음이 지친 나는 운전을 다시 배워 출퇴근이 좀 더 편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차로 운전해서 출퇴근을 한다면 이동시간이 확 줄어든다는 사실에 나는 다시 용기 있게 운전에 도전하기로 했다.

새로운 지역이니 다른 운전 강사님께 운전 연수를 받아 새 출발을 하기로 한 것이다. 이사를 와서 낯선 지역에서 운전하기는 힘들 것 같다며 남편도 다시 운전 연수를 받는 것에 대해 납득했다.



놀랍게도 운전 연수 전에 내 차부터 생겼다. 

이제 스스로 운전을 해서 출퇴근을 하겠다고 남편에게 당당히 선언했는데, 내 차가 없는 상황이었다.

남편의 직장이 내 직장보다 상대적으로 가깝다고는 해도 30분 정도는 걸리는 거리인 데다가, 아이가 아직 어려 남편이 등원이나 하원을 담당하기로 했으므로 하나뿐인 차를 내가 사용할 수는 없었다.

솔직히 차를 사기까지 시간이 좀 걸릴 예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주 패기 있게 다시 운전을 시작할 생각을 함과 동시에 차를 사기까지는 약간의 여유는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귀찮은 숙제를 조금 미뤄두는 것처럼 나는 마음 한구석에 음흉한 생각을 남겨두었던 것이다.



그런데 남편이 신중히 알아보고 고민한 뒤 (그러나 내입장에서는 너무 빨리) 덜컥 작은 경차를 구입해 온 것이다. 그렇게 갑자기 차가 생겼고, 차가 생겼으니 더 이상 머뭇거릴 수는 없었다.

뭐든지 시작 전에 장비를 구입하면 신이 나는 법. 남편은 새 차 같은 중고차라며 짠! 하고 차를 보여주면서 뿌듯해했다. 나 역시 상태가 좋은 차의 모습에 제법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새 물건에 현혹된 나는 소비를 연료 삼아 내 안의 열정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즉시 나는 바로 운전연수 강사님께 연락해 수업 날짜를 잡았다.



그렇게, 두 번째 운전연수가 시작되었다. 

새로운 운전 연수 강사님은 이전 강사님처럼 유능하고 좋으신 분이었다. 초보자의 입장에서 하나하나 상세히 알려주시고, 정석대로 규칙을 지키며 운전하도록 지도해 주시는 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우등생이 되지는 못했다.



이번 운전면허를 마치며 강사님이 하셨던 말들을 간단히 요약 정리해 보자면 이러하다. “○○씨는 사람은 참 착하고 좋은데...” 아마도 말줄임표에 생략되어 있는 말이 핵심일 것 같다. 그리고 그 말은 너무도 짐작이 가서 굳이 말하지는 않겠다.



물론 강사님은 나에게 항상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으며 용기도 북돋아주셨다. 마지막 수업에서도 연수가 끝나더라도 운전을 포기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그리고 열심히 연습해서 차를 끌고 다니는데 능숙해지면 그때 다시 연락을 달라고도 하셨다.

그 얘기를 들으면 기쁠 것 같다고 하시며. 그 말에 나는 꼭! 연락을 드리겠다며 굳게 다짐했다.



그리고 그 뒤로 1년 반이 지났다. 나는 아직도 강사님께 연락을 드리지 못하고 있다. 

아마 그때의 다짐이 아직 덜 굳은 모양이다. 혹시 강사님이 연락을 기다리고 계신 건 아니겠지? 몇 년 더 지나서 연락드려도 되나요? 아마 강사님은 나를 벌써 잊으셨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냥 하신 말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나만 여전히 그 약속을 붙들고 살고 있다. 그 약속을 지켜야 되는데... 하면서.



운전면허를 따고 14년의 세월이 흘렀고, 운전 연수도 두 번이나 받았는데 나는 여전히 초보운전자이다. 그것도 '극'초보운전자.



그냥 좀 더 자신감이 생길 때까지 계속 운전연수를 받으면 안 될까? 한 번 더 운전 연습을 받겠다고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말하자, 때마침 다시 나에게 운전을 가르쳐주며 스트레스를 받던 남편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까지 그럴 거냐면서. 이제 정말 혼자 서야 할 시간이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아직 홀로 설 준비가 되지 않았다. 다리가 너무 후들거린다.



남편 몰래 비상금으로 운전 연수라도 한 번 더 받아야 하나? 



나는 남편 몰래 운전 연수를 받는 일을 상상해 보았다. 와이프가 차를 가지고 일정 시간에 어디론가 사라지는데! 심지어, 통장에는 모르는 사람 이름으로 돈이 빠져나간 내역도 있다면! 의심에 가득 찬 남편은 내비게이션을 확인해 본다. 역시, 어딘가로 이동한 흔적이 남아 있다. 블랙박스도 체크해 본 남편은 와이프 옆에 누군가가 앉아 있었음을 확인할 것이다. 블랙박스 음성을 조심스레 들어본다. 그런데, 고작해야 "여기서 신호 잘 보시고 천천히 좌회전하세요~" 이런 소리와 와이프의 한숨 소리만 들려온다. 남편은 와이프가 나 몰래 뭘 하고 있었는지 단박에 깨달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너무 시시하고 황당해서 어처구니없다.

남들이 남편 몰래 무언가를 한다면 아마 이런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상을 할 정도로 운전 연수를 더 받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한 번만 더 하면 더 잘할 수도 있을 것만 같다.



혹시 운전연수만 여러 번 받으신 분 어디 안 계신가요? 몇 번이나 받으셨나요? 혹시 운전 연수는 몇 번까지 받아야 하는지 누가 정해놨나요?




이전 05화 자동차 운전 대신, 자전거 운전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