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chaela Oct 16. 2016

그래, 걸었어.  그리고 절망에 대해 생각했어.

< Morning after a Stormy Night >을 보고...

네가 걷고 있던 그 시간에 나도 역시 걷고 있었어. 스카프를 두르고 외투를 챙겨 입었는데도 팔짱낀 품으로 차가운 공기가 파고들더라. 그 차가움 때문이었을까? 부쩍 빠르게 찾아온 어둠의 무게 때문이었을까? 걷는 내내 머릿속에서 그림 하나가 맴돌았어. 한 달 전, 독일의 피나코테크에서 본 그림이.


'피나코테크'는 독일어로 미술관을 뜻해. 그저 미술관이라고 하면 될 것을... 내가 본 책에서 독일의 미술관들은 굳이 '피나코테크'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었어. 쉽사리 친숙해지지 않는 이름이, 우직하달까? 고집스럽달까? 무뚝뚝하달까? 관광객에게도 친절한 제스처 따위는 선보이지 않는 독일 사람들을 닮았다는 생각을 하며 찾아다녔단다.


특히, 뮌헨에서는 하루 종일 피나코테크에만 있었어. 뮌헨의 쿤스트 지구에는 고전 미술관인 '알테 피나코테크', 근대 미술관인 '노이에 피나코테크', 현대 미술관인 '모던 피나코테크'가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일요일에는 세 곳 모두 입장료를 1유로씩만 받거든.

 

세 곳 중에서 노이에 피나코테크는 에메랄드빛 바탕의 <해바라기> 그림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



나 역시 떠나기 전부터 다른 곳은 몰라도 이곳은 꼭 가리라 결심했어. '불행'이나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짝꿍처럼 달고 다니는 고흐의 붓터치는 언제나 힘을 주거든.


화병을 봐. 꾹꾹 힘주어 붓을 눌렀을 것 같지 않니? 좀처럼 어울리기 힘들던 세상에 발붙이려는 고흐의 안간힘이 녹아 있는 것 같더라.

해바라기 가운데 빽빽한 대롱꽃을 봐. 거칠고 두껍고 뻑뻑하게 느껴지는 질감에서 무거운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아.

해바라기 가장자리 혀꽃을 봐. 사방팔방으로 손짓하는 꽃잎들이 그래도 뭔가를 열망하며 고군분투하는 모습처럼 느껴지지 않니?

고단한 삶을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낸 고흐가 남긴 캔버스 앞에서, 나는 이번에도 힘을 얻었다.


그런데, 오늘 걷는 내내 머리에서 맴돌던 그림은 고흐의 그림이 아니라, 노이에 피나코테크에서 본 다른 그림이었어.



미술관에서 그림을 봤을 때, 처음 한동안은 그림의 오른쪽 아랫부분에만 집중했어. 전체적으로 어두운 그림이었는데 흰색 바지를 입은 인물이 눈에 띄었거든. 거친 파도 앞에서 고개를 파묻고 있는 인물을 보니 반사적으로 '절망'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더라.


무지하게 주관적인 나는 순간적으로 그림 속 인물의 절망이 아닌 나의 절망에 몰입했었다. 좋아하는 감정을 상대방에게 용기 있게 표현하지 못해서, 임용고사 시험에서 매번 떨어져서, 동기의 갑작스러운 죽음 때문에 절망했던 20대의 순간들을 떠올렸지.


그러고 나서 전체 그림을 봤더니 그제야 난파된 배가 눈에 들어오고 그림 속 인물의 절망이 전해지더라.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는 독일어 탓을 하며 제목을 확인하지도 않았었는데, 오늘 집에 와서 검색해보니 제목이 <Morning after a Stormy Night>야. 지난밤 폭풍에 소중한 사람을 잃었나 봐. 그야말로 '절망적'인 순간이 아니니?


그러고 보니 내가 절망적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일들 중에서, 정말로 '절망적'이었던 일은 동기의 죽음 밖에는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

10년이 지난 지금, 임용고사에 합격하지 못했으니 내 인생에는 희망이 없다는 생각을 더는 하지 않아. 표현도 못 하면서 누군가를 좋아하느라 콩닥거리던 내 심장은 더 이상 그 사람 때문에 두근거리는 일이 없지.

그런데 뉴스의 사망자 명단에서 동기의 이름을 확인했던 그 순간을 떠올리면 여전히 아득해지고 말아.


그림을 통해 '절망'이라는 단어는 그리 쉽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배웠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일에 조심스럽게 붙여야 할 것 같아. '죽음' 외에는 우리의 삶에서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그 무엇보다 우선으로 생각되어야 하는 게 '사람', '생명'이 아니겠니...


30대의 나는 20대의 나와 크게 다르지는 않아. 속된 말로 철밥통 하나 꿰차지 못한 내 삶은 여전히 불안하고, 누군가를 향해 1년 이상 애틋하게 품었던 소중한 마음은 점점 시들해지고 있어. 그러나 결코 절망스럽지는 않다. 돌이키거나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일들이니까.


너와 나, 이렇게 가을을 온몸으로 느끼며 걷고 서로에게 편지를 보내는 우리는 불행할 이유도, 절망할 이유도 없는 거다. 그렇지? 힘내자!!!

매거진의 이전글 오랜만에 뒷북치는 답장을 보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