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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a Dec 21. 2016

'김똘똘'씨를 무서워하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돈 많은 기업가와 똘똘하다는 정치인이 바보 같은 대답만 되풀이해서 웃음이 난나며, 청문회를 보라던 네게

"나는 못 보겠어. 네가 보고 말해줘."

하고 대답했다.


나같이 개복치 멘탈을 소유한 사람은, 여우 같은 정치인이 '기억이 안 난다', '나는 모른다'고 되풀이하는 대답을 들을 때까지 TV를 켜 놓는 게 힘들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며 답변자들을 끊임없이 곤혹스럽고 불편하게 만들어야 하는 질문자와 진실을 요구하는 질문에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하는 답변자.

이들의 불편한 관계, 때때로 윽박을 지르거나 고성이 오가는 상황을 지켜보는 것 자체가 너무 불쾌하거든.


나는 청문회를 보는 대신, 그 늙은 정치인이 얼마나 무섭고 소름 끼치게 똑똑한 지를 팟캐스트 방송을 통해 접했다. 그리고 나의 어떤 면이 '양심 없는 김똘똘'에게 힘을 실어 주는지를 생각해 봤다.




우선, 그에게 힘을 실어 주는 건 나의 '용기 없음'이다.  


올해 여름에 동생이랑 TV를 보고 있는데, 대통령들이 다녀간 맛집이 소개되기에 내가 말했었다.

"야, KGB.

내가 저기 대박집 사장님인 거야. 어느 날 박근혜 대통령이 국밥 한 그릇을 먹겠다고 찾아오는 거지.

나는 국밥을 내놓는 대신

"밥값 못하는 사람들이 밥 한끼 먹는 게 어디 쉬운 세상인가요? 그러니 대통령님께 드릴 국밥이 없네요. 밥값 좀 못해도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대접받는 세상 위해 애쓰시면, 그때는 따끈한 국밥 말아서 진상하겠습니다요."

하고 말하는 거야.

어때? 완전 멋지지 않니?"


동생이 대답했다.

"누나, 멋진 생각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다녀간 다음날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와서 어디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느냐며 입조심하라고 한 소리를 하고 가. 그리고 건물 주인이 갑자기 찾아와서 당장 나가라고 하는 거야.

그래도 국밥 주는 대신 그런 소리를 할 수 있겠어?

그렇다고 하면 우리 누나 정말 멋지다고 해 줄게."


나는 주눅 든 목소리로 얘기했다.

"치, 너는 왜 시사 코미디를 다큐멘터리로 바꾸냐? 생각만으로도 신났었는데...

국밥을 주더라도 절대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거나, 대통령이 다녀간 집이라고 홍보하지는 않겠어. 그리고 굽실거리지도 않겠어. 국밥을 상에 놓을 때는 실수를 가장해서 '탁!'소리가 나게 국물도 조금 흘릴 거야."


법률가, 검찰 총장, 법무부 장관, 대통령 비서실장이라는 이름 따위에 쫄지 않고 바른 소리를 하려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할까? 나에게는 그런 용기가 없다.

용기가 부족해서 '김똘똘'씨의 똑똑함이 무서운 나는, 일단은 촛불 하나를 들고 230만 명 사이에 서 있으련다.




또한, 그에게 힘을 실어 주는 건 물질에 대한 나의 '욕망'이다.


몇 년 전에 봤던 기사 중에 아직도 잊히지 않는 게 있어서 찾아보니 2013년도더라.

한 시민단체에서 설문조사를 했는데, 초등학생의 16%, 중학생의 33%, 고등학생의 47%가 돈 10억 원을 주면 죄를 짓고 1년 정도 감옥에 가는 것도 괜찮다고 대답을 했다는 기사다.


우리가 돈 10억을 받고 1년 정도 감옥에 가도 괜찮은 사람이 되면, '김똘똘'씨는 거짓말을 하기가 훨씬 쉬워지겠지.

40년 넘게 절대 권력 옆자리에서 콩고물을 긁어먹은 늙은 정치인이 흘리는 부스러기를 먹으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늙은 정치인이 탐욕스러운 사람들을 믿고 뻔뻔스럽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대답을 할 수 있는 게 아니겠니?


내가 10억짜리 아파트에 살고 싶으면, 에르메스 가방을 사고 싶으면, 라페라리를 끌고 싶으면, 럭셔리한 여행을 꿈꾸면, 돈 줄테니 감옥 다녀오라는 제의를 넙죽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래서 물질에 대한 욕망을 줄여볼 요량으로, 나도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를 읽어봤다.


선물 받은 컵과 없는 살림에 하나씩 사 모은 컵이 소중한 나는, 아직 버릴 준비가 안 됐다.

여행을 하며 사온 기념품에 나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느끼는 나는, 아직 버릴 준비가 안 됐다.

읽지도 못하면서 독일어로 된 책마저 소중하게 생각하는 나는, 아직 버릴 준비가 안 됐다.

읽지 않았을망정 이런 어려운 책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뿌듯해하는 나는, 아직 버릴 준비가 안 됐다.

나의 허영심은 아직 버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나 같은 맥시멀리스트가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굳이 미니멀리스트가 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러나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를 읽고 다짐했다.

"버리 못해도, 사지는 말아 보자."


일단은 신발, 옷, 가방, 컵을 사지 않고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텨 보려고 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은근 궁금하고 재미있는 거 있지.

그리고 모든 물건을 살 때마다 책에서 알려준 '인생이 가벼워지는 비움의 기술'을 적용해 보려고 노력할 거야.




촛불을 드는 것, 물건을 사지 않으려 애쓰는 것.

작긴 하지만, 파손된 것을 복구하는 "조금씩, 조금씩", "아주, 아주 열심히 노력"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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