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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기념관

by 함이재 Jan 15. 2025

  물이 가득 찬 항아리가 있던 곳이었다.


  물은 계속해서 솟아나고 있었다. 넘친 물은 아래로 흐르고, 아래로 흐른 물은 작은 연못을 이루고 있었다. 연못 옆으로 눈 내리는 광장이었다. 위장 색을 칠한 탱크 위를 눈이 하얗게 덮고 있었다. 신이 난 아이들이 손바닥 도장을 곳곳에 찍고 있었다. 손이 닿을 때면 온기에 녹아내렸다. 솔잎 같은 표면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다. 연못 위로 설치된 군함에서 아이들과 어른들이 웃고 있었다. 배 위에서 내려다보며 두 팔을 벌린 채 사진을 찍는 부모와 아이들의 닮은 모습이 보기 좋았다. 아이가 입으로 총소리를 내면, 어른들은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지는 척을 해주고는 했다.


  위령비에 적힌 빼곡한 이름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이름을 읽어 내렸다. 세 글자 아니면 두 글자였다. 비석 옆에 비석, 그 옆으로 다시 또 비석. 이름을 적지 못한 사람이 더 많다고 설명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표정이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닮았다. 조금은 고요했다. 정문에는 각국의 위령비와 국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가보지 못한 나라들이 많았다.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나라들도, 지금은 갈 수 없는 나라들도 있었다. 눈 덮인 비석 위를 손으로 쓸어내린 검은 흔적들. 생기고, 지워지고, 다시 생기기를 반복했다. 비석 위에 놓인 꽃잎은 바람에도 흩날리지 않았다. 눈이 내리는 겨울은 뭐든지 조금씩 멈춰 있는 법인 것처럼 보였고


  광장 한구석에 앉아 스티로폼 비행기를 던지는 아이를 오래 바라보았다. 아이는 던지는 법을 몰랐고 웃고 있었다. 아이의 아빠가 던지는 방식을 보여주며 알려주고 있었지만, 아이는 끝까지 던지는 법을 몰랐다. 아이는 비행기를 손에 든 채 달려가고 있었다. 눈이 내리는 장면 속으로 아이는 달려갔고


  물이 가득 찬 항아리가 있던 곳이었다.


  저 항아리가 깨지는 날이 있을까. 있다면 안에서부터 깨지기를 바랐다. 물이 만들어내는 윤곽이 달항아리를 지탱하고 있었다. 모뉴먼트, 무르고 단단하게 지속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탱크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고는 강철 위에 하트를 그렸다. 함께 걷던 사람의 이름을 적었다. 이유도 없이 그러면 좋을 것 같았다. 손끝에 물기가 마르지 않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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