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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장 Jun 04. 2023

'마을 만들기'가 아니라 '마을이 자란다.'

마을 만들기가 아니라 마을이 자라는 가미야마 학교 이야기

마을을 키우는 아이들 - 더가능연구소

출처는 정확하지 않지만, 아프리카의 속담으로 알려진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은 마을에서 교육을 이야기할 때나, 교육에서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그런데 마을이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마을을 아이들이 키우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에게는 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의 가미야마 학교 이야기이다. 

우선, 일본 도쿠시마현의 소도시 가미야마는 일본 제2의 도시 오사카에서 자동차로 약 3시간 거리에 있는 중산간 마을로 5천 명의 주민들이 마을을 이루고 있다. 해발 1천m 높이의 산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총면적의 83%가 울창한 삼나무 숲으로 이뤄져 있다. 풍부한 삼림자원 덕분에 일찌감치 임업이 발달해 1955년에는 인구가 2만 명이 넘을 정도로 제법 규모가 큰 도시였다. 하지만 산업화와 함께 불어닥친 극심한 '이촌향도' 현상으로 2015년엔 인구가 5천여 명으로 줄었다. 가미야마는 전국에서 소멸 가능성이 20번째로 높은 마을로 분류하기도 했다. 

소멸을 가능성으로 품은 마을은 현재 도시로부터 청년들이 이주하는 곳으로 IT 벤처 기업들이 계속 마을로 진입하고 있는 곳으로 변했고, 지역 재생의 사례를 보고 배우기 위해서 일본에서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방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이런 가미야마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마을의 진화 -<산골 마을 가미야마에서 만난 미래』를 먼저 살펴보기를 바란다.

가미야마를 배경으로 이해하지 않고서는 가미야마의 학교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제약이 있기 때문에 먼저 짧게 소개하였고, 지금은 가미야마가 가미야마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인 교육에 대해서 나누고자 한다. 직접 경험한 내용을 나눴으면 좋았겠지만, 간접적이지만 가미야마에서 지역과 학교의 관계를 중심으로 2016년부터 2021년까지 6년 동안 교육 코디네이터로 일한 경험을 통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이 책은 지역개발 컨설팅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가미야마의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글쓴이가 2016년 가미야마로 이주하면서 교육 분야에서 활동한 발자취를 담았는데, 지역과 학교가 진행한 네 개의 실험을 소개하면서 본격적인 마을에서의 학교 이야기를 시작한다. 

첫 번째 시도, 현장 기반 지역 학습 '가미야마 창조학'

학교 밖에서 활발한 학생들을 관찰하고, 그런 학생들이 좀 더 실제 사회를 알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가미야마 창조학'은 시작되었다. 복잡한 모든 계획을 뒤로하고, 학생들이 마을에서 배우는 것 자체를 환영하는 느낌이 들도록 '수업을 통한 자기 성장'을 목표로 하면서 학생들이 익혀야 하는 세 가지의 힘을 강조했다. 내 생각과 감정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하는 전달하는 힘, 다른 사람과 협동하는 힘 그리고 나와 사회에 관해 생각하며 새로운 발견을 하는 심화하는 힘이다. 마을의 축제를 기획하기도 하고 마을 사람들을 인터뷰하기도 하면서 '비선형적인 배움'을 경험하는 것이다. 교육학에서 이야기하는 비형식 교육의 전형인 셈이다. 창조학을 통해서 학생들의 도전은 물론 교사들도 도전할 수 있었다고 한다. 

두 번째 시도, 씨앗으로 경관을 만들다. '도토리 프로젝트'

귀여운 이름의 도토리 프로젝트는 산에서 주워 온 여러 씨앗을 학교 온실에서 길러서 새로 짓는 주택의 정원에 심고 녹지를 만드는 프로젝트로 지역의 일손과 자원으로 만들기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마을의 경관을 조성하는데 학생들이 참여하고, 마을 안에 목수가 시공 하고, 지역의 목재를 사용하도록 했다. 씨앗에서 묘목을 키워 마을의 경관을 만들기로 5년간 총 70종, 5,700개 가 넘는 묘목을 키웠다. 

세 번째 시도, 학교에서 익힌 기술을 살려 일한다. '손자 손 프로젝트'


도토리 프로젝트가 마을에서 주도하는 공공사업에 학생들이 수업의 하나로 참여하는 것이었다면 '손자 손 프로젝트'는 지역의 도움이 필요한 곳에 학생들이 참여한 또 다른 프로젝트였다. 휴일에 밖에서 하는 일종의 유료 봉사활동이다. 가미야마 고등학교에서는 현에서 유일하게 조경을 교육하는 학교인데, 학교에서 익힌 조경 기술을 마을의 고령자분들이 정리하기 힘든 자택 주변을 관리하는 유료 봉사활동이다. 학교에서 배운 조경 기술을 활용해서 멋진 정원을 만들고 감사의 인사를 통해서 자신감을 얻고, 유료이기 때문에 책임감까지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단순한 휴일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교류 프로그램으로 자리하고 있다. 6년간 진행된 프로그램의 의뢰 건수는 80건 이상으로 300명 이상의 학생이 참여했다.  

네번째 시도, 미래의 식농환경을 생각하는 '콩깍지 프로젝트'

오랫동안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아서 놀고 있었던 학교 근처의 경작지를 학생들이 작물을 키울 수 있는 실습 장소로 활용하면서 마을의 경관도 지키려는 목표로 시작된 '콩깍지 프로젝트'는 땅의 이름을 따서 프로젝트명으로 활용하였다. 콩깍지 프로젝트는 환경디자인 코스와 먹거리 생산 코스로 구성되어 있는데, 계단식 논을 복원하기 위해서 석축을 쌓는 일부터 배워서 이듬해 모내기를 시작했다. 5월 하순에 수확한 밀로는 다양한 먹거리 가공을 실험 해 보기도 했다. 

시도를 가능하게 하는 실험

위에서 나눈 시도를 가능하게 하는 실험은 지역다움이라는 기반 위에서 실행하였다. 가미야마라는 독특한 지역이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외부의 평가가 있지만, 그 '지역다움'은 마을의 '풍경'에 그 힌트가 있다고 글쓴이는 말을 한다. 이런 풍경을 위해서 상황 즉 환경을 조성하는 노력도 강조한다. 

마을의 교육 관련한 공통된 비전을 수립하고 공유하기 위해서 어린이집에서부터 초등, 중등, 고등학교 선생님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교류하는 자리를 만든 것이다. '선생님들과 다 함께 식사'라는 형태로 가볍게 시작된 모임은 차츰 활발한 학습과 의견 교환의 장으로 발전했다. 

두 번째 상황을 만드는 노력은 기존의 틀 속에서 노력도 중요하겠지만 틀 자체를 근본적으로 고민하는 차원에서 학과 개편에 대한 노력을 시도한 것이다. 학생이 지역 현장에서 배울 수 있는 과목을 만들고 싶다는 교감 선생님의 요청으로 '가미야마 창조학' 과목이 만들어졌고, 지역을 넘어서 전국 단위로 학생을 모집하고 싶다는 의견도 들을 수 있었다. 마을이라는 현장에서 지역과 협력하며 배우는 가미야마 스타일은 6년 동안의 시간을 거쳐서 정착할 수 있었다. 

이런 시도와 실험을 가능하게 할 수 있었던 상황은 또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글쓴이 역시 교육 코디네이터로 면사무소와 고등학교를 연결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교사는 매일의 수업과 학교 업무 때문에 지역과 장기적인 관계를 구축하기 어렵지만 코디네이터는 학교와 지역인재 또는 행정과 징검다리 역할을 지속해서 수행할 수 있는 존재이다. 이렇게 여러 분야에서 면사무소와 지역, 필요한 조직과 사람을 연결하는 존재가 지역공사인 가미야마연대공사로 민간 협동을 이끄는 새로운 중간 조직인 셈이다.

그렇다면, 마을에서의 3년간의 경험이 어떻게 미래로 이어질 것인가?

마을의 고민은 고등학교 3년의 내용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입학할 수 있는 선택지와 졸업 후에 지역에서 살고 싶고 일할 수 있는 선택지로 이것을 입구와 출구로 표현했다. 출구는 '지역유학'의 형태로 실제로 마을을 방문해서 사람들을 만나고, 학교와 지역이 잘 맞는다는 확신을 가진 상태에서 선택할 수 있도록 2일간 지역유학 체험을 필수로 하였고, 학생들은 기숙의 형태로 스스로 식사 준비를 해야 한다.  신입생들은 합숙을 통해서 자신을 열고 상대를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고, 규칙이 아니라 규범을 만들어 나가고 서로 도우면서 함께 일을 해나가는 연습을 한다. 

출구는 '이 마을에서 살고 싶고,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실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노력이다. 일 체험과 인턴십을 통해서 자기 몸과 마음의 변화를 느끼고, 그런 경험의 축적을 통해서 일에 대한 '선호'를 축적하는 것이다. 마을에서 지낸 시간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글쓴이는 만날 일이 없던 세계와의 만남과 몸으로 실감하는 체험, 그리고 사회를 스스로 만든다는 실감으로 답하고 싶다고 하였다. 

서로 다른 존재가 협력하는 환경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학교와 지역, 학생들과 어른 등 서로 다른 존재가 협력하는 환경에 대한 이야기가 글쓴이가 이 책을 통해서 생각하고 싶었던 물음이다. 6년간의 프로젝트를 돌아보면서 글쓴이가 관찰한 공통점은 서로 다른 입장과 경험을 존중하는 공정한 관계성, 경험하지 않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지탱하는 주위의 관용 그리고 너무나 강한 사명감과 헌신성 때문에 소모적이지 않은  자기만족 즉 자기 인생을 살아가는 느낌이라고 한다.

'마을 만들기'가 아니라 '마을이 자란다.'

이 책의 중심이 된 가미야마 농업고등학교에 이어 2023년 4월에는 '기술·디자인·기업가 정신'을 모토로 하는 5년제 가미야마 마루고토 고등전문학교가 개교했다. 가미야마에 새로운 입구와 출구가 생겼는데 부분의 합이 더 큰 전체를 만들어 낼지도 기대가 된다.  

한국에서 마을교육과 대안교육에 노력해 온 분들이라면 아마 이 책을 읽고서 새로운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 수 있을 것이다. 또 이 책의 나온 내용을 잘 학습 한다고 해서 아무 곳이나 가미야마가 될 순 없을 것이다. 결국에는 '지역다움'이 필요한 것이고 미래세대에 살고 싶은 마을을 물려주고자 한다면 경험을 축적할 수 있는 실험의 장으로서의 지역의 역할과 학교와 지역, 학생과 어른의 서로 다른 주체가 서로 키워주는 환경이 무엇이며,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의 답을 이 책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나마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질문을 바꾸자, 답은 다시 안에서 찾아야 한다.

끝으로 '선생님들과 다 함께 식사'를 주도적으로 이끈 에비나 미치코 선생님이 16년간 가미노미네 초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전근을 가면서 칠판에 남겨 놓은 글 중에 일부를 소개하면서 써 놓은 어느 책의 한 대목이 이 책의 내용을 대신하는 것 같아서 그 내용을 소개하면서 마무리하고자 한다. 

'마을을 키우는 학력'   

나는 아이들이 전부 마을에 남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어떻게든 학습 기반에 국토와 사회에 대한 '사랑'을 남기고 싶다. 자기가 자란 마을을 방관하지 않고 사랑하고 키워갈 수 있도록 주체성을 심어주는 교육, 그것이 '마을을 키우는 학력'이다. 그런 학력이라면 외지에서 진학과 취직에서 실패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일생을 망치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고, 마을에서 계속 살 때 그 태어난 보람을 발휘할 것이 틀림없다. '마을을 버리는 학력'이 아니라 '마을을 키우는 학력'을 기르고 싶다.  - 도이 요시오『하루에 한마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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