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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봄 Oct 18. 2022

25개월 아기의 첫 치과 방문

첫 영유아 구강검진과 충치 발견

지난 연휴 저녁, 남편이 말했다. '흥이 어금니에 검은색 점 같은 게 있는데 충치가 아닐까?'

윗니 어금니에서도 비슷한 점이 발견되었는데, 아무리 칫솔로 긁어내려 해도 없어지지가 않았다.


열심히 검색을 해보니, 충치일 수도 있고, 착색이나 이물질일 수도 있다고 했는데, 불안한 마음에 연휴가 끝나는 날 첫 타임으로 어린이 치과를 예약했다. 영유아 구강검진을 남편과 함께 가려고 한 달 후 주말에 예약을 해두었는데, 그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남편이 이가 약한 편이라서  두려웠다.


초행길이라 건물을 잘못 찾아 한참을 헤매고, 치과에 접수를 해야 하는데 흥이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를 몰라서 핸드폰을 뒤지고 정부 24며 여기저기 사이트를 뒤지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흥이가 기다림에 벌써 지쳐버려서 우선 거기서부터 약간 일이 틀어졌다. 친정엄마 찬스로 함께 치과에 갔는데, 대기실에서 할머니와 놀다가 '엄마 안아줘'를 시작하셨다.


흥이의 차례가 되고, 진료의자에 눕혀서 입을 벌려야 하는데 흥이가 내 목을 잡고 딱 달라붙어서 떨어지지를 않았다. 결국 의자에 눕히지 못하고, 의사 선생님 무릎에 흥이 머리를 대고, 내가 진료의자에 앉아서 흥이의 다리와 손을 잡았다. 억지로 입을 벌리니, 의사 선생님의 손을 물어버려서 개구기까지 착용했다. 이틀 동안 치과 놀이를 하고 왔지만, 죽는다고 몸부림치며 우는데, 마음은 아프지만 설마 진짜 충치일까 조마조마한 마음이 더 컸다. 나는 임신한 상태라 흥이 발길질에 배가 차이지 않게 하는것도 힘들었다.


그 검은색 점에 바람도 쐬어보고, 물도 쏘아보고, 긁어도 보았는데... 결국 충치로 판명되었다. 그것도 무려 지금 있는 어금니 4개 중에서 3개가 충치라고 했다. 이럴 수가.....


앞으로 어금니 4개가 더 나올 것이고 모든 유치는 만 6세에 빠지고 영구치가 나온다고 한다. 만 6세까지는 지금 치아를 잘 간직해야 하는데, 이 어금니 유치가 잘 썩는 성향이 있다고 했다.


영유아 구강검진 질문지에도 있었지만, 의사 선생님은 간식을 얼마나 먹는지, 자주 먹는지, 주스는 얼마나 자주 먹는지를 물어봤다. 우리 흥이는 간식을 자주 먹는 편이고, 그중에서도 젤리를 제일 자주 먹는데 초콜릿보다 치아에 안 좋은 것이 젤리라고 한다. 떡이나 젤리 같이 찐득찐득한 것들은 치아에 달라붙어서 충치를 유발한다고 한다. 간식도 한 번에 먹을 때 많이 먹는 게 낫고 조금씩 자주 먹는 게 더 안 좋다고 한다. '이 나이에는 아직 젤리 먹으면 안되요'라고 못박으셨다.


진단이 끝나고 의사선생님과 상담을 하는 동안 겨우겨우 울음을 그치고 진정해서 나에게 안겨있던 흥이는 '흥이야, 이제 젤리 먹으면 안 된데' 하니까 다시 울기 시작했다... 그래... 젤리 제일 좋아하는데 이제 끝이네...


충치치료를 결국 하기는 해야 하는데 우선 불소도포를 하고 간식을 줄이고, 불소 고햠류 (900ppm 이상) 치약으로 바꿔서 3개월 후에 다시 진행상황을 보고 치료 방향을 결정하기로 했다.


불소도포는 생각보다 빠르게 끝났다. 여전히 흥이는 몸부림치며 울었지만 튜브 같은 것에 있는 불소를 간호사가 손으로 흥이의 이에 도포해 주었다. 1시간 동안 물과 모든 음식이 금식이었다.


치과에서 나온 후, 흥이는 집에 가자고 엄마 집, 흥이 집에 가자고 계속 얘기했는데,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어린이집 문앞에서 원장 선생님께 안겼는데 그날따라 세상 서럽게 울고 엄마를 찾았다. 숨어서 그 모습을 보는 마음이 너무나 아팠다.... 그리고 며칠 동안 어린이집 앞에만 가면 울고 엄마와 안 떨어지려 했다... 원장 선생님이 '치과 말고 다른 무슨 일이 있었나요'라고 연락이 올 정도였다. 치과의 트라우마가 컸던 것 같았다. 그날 어린이집에 보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날 흥이가 어린이집에 간 사이, 난 집을 뒤져서 모든 젤리를 찾아냈다. 찾고 보니 한 박스가 나왔다. 모두 차 트렁크에 숨겨두었다.


집에서는 그나마 관리가 되는데, 문제는 놀이터 메이트들과 함께 먹는 간식이었다. 다른 친구들이 젤리를 먹어도 '흥이는 이가 아야 해서 안돼요'라고 하고 비타민 캔디를 대신 주었다. 흥이도 속상하지만 생각보다 잘 받아들여 주었다. 대신 비타민 캔디에 중독된 것 같다.


하루는 친구의 누나가 초콜릿을 놀이터에 있는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우리 흥이는 충치 때문에 주지 말라고 했지만, 너무 간절한 눈빛으로 쳐다보니 한 개를 받았다. 친구 엄마는 '나중에 이빨 아야 안 하면 먹어'라고 했다. 우리 흥이는 '응!'이라고 하더니 너무나 소중하게 손으로 꼭 잡고 있었다. 껍질에 싸여 있었는데, 자꾸 만지다 보니 껍질이 조금 찢어졌고, 너무 소중하게 잡고 있다 보니 초콜릿이 녹아서 껍질 바깥으로 나오는 게 아닌가. 소중한 초콜릿이 지지가 되었다며 흥이는 통곡을 하고 말았다. 귀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마트에 가면 흥이는 여전히 젤리를 집는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이 '아야 해서 안된다고 했지'라고 하면 젤리를 내려놓는다. 젤리 대신 차라리 과자를 먹이기로 했다. 참크래커, 꼬깔콘 같은 자극적이지 않은 과자들을 위주로.


흥이의 잠자리 버릇이 양치를 하고 나서도 우유를 빨대컵으로 먹고, 자다가도 우유를 찾으면 빨대컵으로 좀 먹다가 다시 잠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충치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서, 양치를 최대한 늦게 하고 양치 후 우유를 최대한 안 주고, 혹시나 먹게 되면 물을 다시 마시게 했다. 자다가 깨서 우유를 찾을 때 우유 먹고 물을 먹이게 하는 게 쉽지 않았다. 누워서 우유 빨아먹고 나서, 일으켜서 물을 먹이고, 그러다 보면 잠이 깨고... 그래도 충치가 심해지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이제는 예전보다 양치도 더 열심히 시켜주고 있다. 크롱 양치 장난감을 구입해서 양치하기 전에 한 번씩 놀고 아무리 울어도 몸으로 제압해서 양치를 시킨다.


3개월 후, 제발 더 이상 충치가 더 커지지 않았기를. 그래서 가벼운 치료만 하고 넘어갈 수 있기를.

충치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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