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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봄 Nov 10. 2022

둘째 임신 9개월 차, 생애 첫 반깁스 하다

그날은 남편이 독일로 일주일간 출장을 떠나는 날이었다. 


첫째 흥이는 이제 26개월, 한참 에너지가 넘치는 시기. 그리고 지난주부터 날씨가 추워져서 어린이집 하원 후 놀이터에서 놀면서 간식 먹는 것을 중단한 상태라서 아직 어린이집 끝나고 하원하면 까까 달라고 보채는 과도기이다. 


이제 둘째 임신 9개월 차라서 배도 제법 많이 나오고, 허리를 구부리거나 앉았다가 일어나는 게 쉽지 않고, 잠잘 때도 어느 자세를 취해도 불편한 상태이다. 


남편은 이미 공항으로 출발하고, 남편의 부재 기간 일주일간, 무거운 몸으로 남편 없이 오롯이 육아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걱정이 태산이었던 그날 아침.


흥이와 어린이집에 가기 위해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고 입구로 나아가던 차, 청소하시는 이모님이 아파트 1층과 현관을 물걸레질 중이셨다. 그 모습을 보고 '바닥에 물기 때문에 누군가가 넘어질 수도 있겠군'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약 4개 정도의 계단이 있는 아파트 현관에서 흥이가 안아달라고 해서 흥이를 안고 계단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어떻게 된 것일까.


나는 흥이를 안은채 계단 4칸을 미끄러져 흥이는 뒷머리를 인도 바닥에 박아서 울고 있고, 내 팔은 아직 흥이의 몸을 안고 있었다. 혹시나 흥이가 뇌진탕에 걸린 건 아닐까 조마조마하며 달래고 있는데, 도저히 다리를 움직일 수가 없었다. 주머니에 있던 뽀로로 사탕으로 겨우 흥이를 달랬는데, 정말 다리를 움직일 수가 없어서 그 상태로 5분 정도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내가 일어나지 못하자 흥이는 '엄마 일어나'라고 하며 다시 울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이사용 사다리차가 우리 아파트 앞을 막고 있어서 누구도 내가 넘어지는 것을 보지 못했고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바로 50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어린이집이 있는데, 아무도 흥이 우는 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나와보는 사람은 없었다. 


겨우 겨우 몸을 일으켜 흥이를 챙기고 어린이집 가방을 챙겨서 흥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켰다. 


그날은 흥이 어린이집 등원 후 바로 엄마 아빠와 이케아에 가기로 한 날이어서, 부모님이 우리 집으로 오고 계셨다. 부모님을 모시고 이케아에 가야 한다는 생각에 주차장에서 차를 빼서 나와보니, 그제야 레깅스 오른쪽 무릎이 찢어지고 상처가 나서 피가 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부모님이 오실 때까지 차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점점 왼쪽 발목이 아파서 걸을 수가 없어지는 것이었다. 부모님이 도착하셨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흥이와 같이 있을 땐 흥이가 다쳤을까 흥이가 괜찮을까가 먼저여서 나 아픈 것은 생각도 못했는데, 아프기도 하고 놀라기도 많이 놀라서였는지 부모님을 보니 갑자기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엄마 아빠도 놀라서, 정형외과를 가야 하나 산부인과를 가야 하나 우왕좌왕하셨다. 배가 아프지는 않았고 바로 다음날이 산부인과 검진일이어서 산부인과가 아닌 정형외과를 가기로 했다. 정형외과에 도착했는데, 도저히 혼자 걸을 수가 없어서 엄마 아빠가 양쪽에서 부축해서 겨우 병원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임산부라서 X레이를 찍지는 않았고 의사가 상태를 보더니 왼쪽 발목 인대가 늘어난 것 같다며 반깁스를 해주었다. 반깁스를 했어도 도저히 걸을 수가 없어서 병원에서 주차장까지는 휠체어로 이동을 하고, 아빠가 부축을 해줘서 겨우겨우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연히 그날, 그 시간에 엄마 아빠가 오시기로 했던 게 얼마나 다행인지.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혼자서 병원도 가지 못해서 119를 불러야 했을 것이다. 


당장 흥이가 어린이집에서 하원하는 문제부터, 흥이 케어하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는데, 친정엄마가 저녁에 흥이 하원과 케어를 도와주신다고 했다. 도저히 흥이 저녁밥을 내가 챙겨 먹일 상황이 안되어서, 결국 갑자기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께 연락해서 그날 저녁부터 어린이집에서 저녁밥을 먹고 하원하기로 했다. 하원 시간이 1시간 늦춰지는 것인데 흥이에게 미리 알려주지도 못해서, 혼자 얼마나 속상하고 엄마를 기다릴까 마음이 아팠다. 


당근으로 목발을 찾아서 엄마 아빠가 사다 주시기로 했고, 목발이 올 때 까지는 집안에서 최대한 안 움직이고 싶었지만 청소기도 밀어야 하고, 밥도 챙겨 먹고, 화장실도 가야 해서 바닥에 주저앉아서 팔로 바닥을 밀며 기어 다녀야 했다. 


그날 저녁, 할머니와 하원한 흥이는 반깁스를 한 내 왼쪽 발을 보더니 '엄마 아야'하다면서 안아달라고 보챘다. 하지만 도저히 안아줄 수가 없었다. 바닥에 앉아서 흥이를 품에 안았다가 혼자 일어나는 것도 얼마나 아프고 힘이 드는지.. 부들부들 떨면서 겨우 일어나는데, 그 모습을 흥이가 따라 하고, 내가 절둑이며 목발을 짚고 걷는 것도 흥이가 따라 하고. 평소에도 엄마가 아프다고 하면 울면서 마음 아파하는 마음이 이쁜 우리 흥이는 친구들은 거의 다 집에 갔는데 갑작스레 늦게 하원을 하게 되고, 엄마도 아프고 하니 마음이 많이 힘들었나 보다. 하원 후 2~3시간 동안 평소보다 정말 많이 심하게 울면서 떼쓰고 보채는 것이었다. 그나마 3시간 정도 지나니, 어느 정도 마음이 누그러 졌는지 할머니와 놀면서 웃기도 했다. 


할머니가 있어도 응가하고 나서 씻는 것은 엄마가 해줘야 한다는 우리 흥이. 밤 10시까지 친정엄마가 흥이 케어를 도와주고 집에 가셔서 밤 11시에 흥이가 잠들 때까지 어찌어찌 흥이 수발을 들며 첫날을 보냈다. 밤이 되자, 계단에서 떨어지는게 뱃속 태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태반조기박리 같은 무서운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찼는데 뱃속 홍이는 더 열심히 태동하며 본인의 존재를 어필하고 있었다. 


그 다음 날, 친정엄마가 흥이 등원을 도와주러 아침부터 와주었다. 그런데 엄마도 같이 나가야 한다고 흥이가 '엄마, 할미 같이!!'를 외치는 통에, 결국 셋이 함께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흥이 등원 후 산부인과 정기검진에서는 다행히 태반이나 경부에 이상이 없고 양수도 괜찮다고 했다. 천만다행이었다. 넘어진 것에 대한 영향은 없는데, 둘째 홍이 오른쪽 콩팥에 물이 차는 수신증이 생긴 것 같다는 소견이었다. 왜 모든 나쁜 일은 다 한꺼번에 일어나는 것일까.... 지금 태아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태어나서 대학병원에 가서 복부 초음파를 봐야 한다고 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기도뿐. 


흥이를 재우고, 왼쪽 발목만 아픈 게 아니라, 바닥으로 떨어지며 몸이 충격을 받았는지 양쪽 손목과 허리 등등 몸이 전부 쑤시는 통에 잠을 이룰 수가 없어서 수신증에 대해서 밤마다 검색을 하게 된다. 


왼쪽 발목은 시간이 흘러 낫는 것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기에, 목발을 짚고 절뚝이며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거의 평소의 생활을 하고 있다. 어제는 어린이집에서 하원한 흥이가 엄마 빠방 타고 마트에 가자고 하도 졸라서 결국 운전을 해서 마트에 다녀왔다. 오늘 아침에는  아파트 앞을 산책하고 놀이터에서 미끄럼틀도 타고나서야 흥이가 어린이집에 등원을 했다. 


물론 움직이지 않아야 빨리 낫겠지만,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흥이가 아빠는 출장 가있고, 엄마는 아프고, 본인은 어린이집에서 오랫동안 있어야 해서 많이 힘든 상황이니, 가능한 범위에서 흥이가 원하는 것은 해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흥이도 그날 떨어지며 몸에 충격이 갔을 텐데, 혹시 엑스레이나 CT를 찍어봐야 하는 것은 아닐지 너무 걱정이 된다. 작년에 침대에서 낙상 했을때, 정말 애 잡을뻔 하면서 응급실에서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사실 엑스레이로는 알수 있는게 한정적이라서 원한다면 약을 먹여서 CT를 찍으라고 했었는데 CT는 찍지 않았었다. 그때 며칠간 경과를 보고 축 처짐, 구토 같은 것이 있으면 다시 내원하라고 했었다. 계단에서 떨어지고 오늘까지 3-4일이 지났는데, 아직 특별한 이상 증세를 보이지는 않는것 같아서 엑스레이나 CT를 찍고 싶지는 않다. 제발 문제가 없기를...


사실 다음 주부터 다른 문제가 생긴다. 반깁스는 앞으로 2주 정도는 더 하고 있어야 하는데, 다음 주 월요일부터 우리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교체 공사가 한 달간 진행된다. 그렇게 되면 10층에 사는 우리는 5층을 걸어 올라가 옥상을 통해 옆라인 엘리베이터를 타러 가던지, 아니면 10층에서 1층까지 걸어내려 가든지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올라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걱정만 한다고 상황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니, 그저 부딪혀 보는 수밖에..

나의 부상은 액땜이라고 생각하자. 이제 좋은 일들만 생길 것이라고 믿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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