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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과정은 즐거움과 거리가 멀었다. 이게 맞는지 의미 없는 글을 쓰지 않는지 똑같은 얘기를 쓰는 내가 한심하지 않는지 여러 사투를 한다. 나의 아픔에 대해 잘 대응하지 못한다는 슬픔을 업고 한숨으로 마음이 부풀어진다. 내게 기쁨을 더 주는 이야기만 편애했는데 슬픔만 가득한 이야기만 나오는 재능도 재능일까?
슬픔을 느끼기가 세상에서 제일 쉬웠다. 그러나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기쁨은 몇 초라 잘 잊었다. 그래도 좋은 이야기와 좋은 언어와 좋은 노래는 내게 있었다. 슬픔이 다 가시지 않아도 그게 곁에 있다는 건 모든 게 없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게 했다.
겉으로는 나는 고요해 보이는데 속에서는 운석이 내리치는 멸망의 세계를 자주 감각한다. 나는 평균보다 감정적인 사람일까? 감정을 무시하는 말들이 늘 싫을 테지만 나는 내 감정에서 미움을 산다. 평정심이라는 단어와 내가 나를 평온하게 싫어한다고 생각하면서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상념을 유예해야 한다.
자기연민은 자기비판보다 의욕을 높인다는 글을 봤다. 어쩌면 내가 쓴 글에서 큰 만족감을 느끼지 않고 단점만 찾게 되면서도 내가 쓴 글을 반복적으로 읽는 이유는 내가 글을 쓰는 것이 우회적인 자기연민일까.
여기 글을 쓰는 건 혼자 마이크를 들고 무언가를 말하는 나를 상상하게 했다. 나쁘지 않은 장면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너에게 붉은 사과를 웹툰을 최근에 봤어서 사람이 보이지 않고 사람의 흔적만 남은 공간에서 자라는 식물들을 응시하면서 살아가는 여자를 상상했다.
햇빛을 받으면서 아주 오랜만에 설렘을 느꼈다. 처음으로 글 창작 커미션을 신청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기다릴 수 있어서 좋은 마음이 신비했다. 내 글도 그렇게 기대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사람을 위해 만들어지는 창작들을 상상했다. 배명훈 작가의 작가 노트가 생각났다.
- 소설은 별과 같아서, 지금 독자의 손에 들려 있는 이야기는 이미 몇 년 전에 작가의 책상을 떠난 것들이다.
- 소설집에 실린 단편소설들은 별자리처럼 한데 모여 있는 것 같지만 실은 하나하나가 다 다른 시간에 최초의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 그래도 작가는 홈 경기장에서 환호를 받으며 글을 쓰는 장면을 자주 상상한다. 우리는 그렇게밖에는 만날 수 없지만, 밤하늘의 별과 우리도 그렇게밖에는 못 만난다. 그러다 어디선가 늦은 추임새라도 들려온다면, 작가는 이야기가 건너간 시공간의 범위를 가늠하고 마치 은하를 가진 것처럼 가슴 설렐 것이다.
과거의 별을 관측하는 사람들처럼 언젠가 내 글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을 어렴풋이 상상했다. 내가 배명훈 작가의 조개를 읽어요 소설 속 작은 의미의 한 단어를 갖는 조개들을 상상하는 마음처럼 누군가 내 소설의 장면을 일상을 살다가 상상하는 상상은 그렇게 잘 믿기지는 않는다. 슬픔이 주된 에세이와 거리가 먼 아름다운 소설은 내게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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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려운 사람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았다. 그는 내가 기질적으로 쉬운 사람이 될 수 없다고 확신하며 말했다. 내가 어려운 사람이라 좋은 사람을 만나기 어려운 걸까. 그렇다면 그걸 받아들이고 원래 내가 처한 사회가 그렇다고 날 주입시켜야 하는데 불쑥불쑥 부당하다고 억울하다고 속이 외쳤다.
그것뿐만 아니라 운이 개입하는 자본주의와 능력주의가 옳다고 순응하게 되는 주류 사회가 기이했다. 노년 인구에서 장애인 비율이 높은데도 노인의 장애인을 혐오하는 정치인 지지율이 높아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보수 기독교가 정치와 결탁해 동성애 혐오를 응집력으로 쓰는 게 화가 났다. 쉽게 페미냐는 말을 적고 내뱉으며 여자를 모욕하는 남자들을 너무 많이 봤는데 실제로는 더 많았다. 20대 남자 설문 중 60퍼센트는 꼴페미에 대해 편안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결과를 봤다. 그들이 여성 차별은 존재하지 않고 자신들이 차별 받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때 최근의 강력범죄 통계는 피의자 95퍼센트가 남성이며 피해자 86퍼센트가 여성이라는 집계를 내고 있었다.
혐오 사회는 나를 고통과 괴로움에 잠식시키기에 그것으로부터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작은 것에도 문제들은 연결되어 있어서 늘 쉽지 않다. 천천히 심호흡을 하자. 그리고 자세하게 살피고 싶었던 것들을 생각하자. 나는 더 많은 여자들과 사랑할 것이다. 그것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