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하면 우리는 브런치 세트
운동화 하나를 반품하게 됐다. 평소라면 반품은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 왜냐? 귀찮으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중복 구매가 되어 반품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네이버 쇼핑몰에 연동된 공식온라인스토어에서 주문을 했는데 주문 직후 공식홈페이지를 통하면 더 할인받을 수 있는 걸 알고 네이버 주문 건을 취소한 것인데...
무료 반품에 해당되어 반품하기를 눌렀는데 뭐가 좀 이상하다…?!?
이미 판매자에게 발송했습니다(송장정보를 입력하면 처리 현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VS
나중에 직접 발송할게요(판매자에게 수거 방법 확인 후 발송해 주세요).
내가 직접 택배를 보내고 송장정보를 입력하거나 판매자와 통화 후 수거 절차를 밟는 것. 이렇게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었다. 보통은 반품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수거 신청이 완료되기 때문에 나는 상황파악이 안 돼 잠시 당황했지만 곧 정신을 챙기고 판매자 정보에 나와 있는 고객센터로 연락을 했다.
어쩌면 고객센터와 연결이 잘 되지 않은 기억들이 떠오르면서 조금 초조해졌는지도 모르겠다. 통화 연결을 기다리는 동안에는 녹취에 관한 안내와 상담사에게 친절하라는 안내멘트를 들으며 배고프다는 생각을 했다. 빨리 이 건을 처리하고 뭐라도 먹고 싶을 뿐이었다.
다행히 금방 상담사와 통화 연결이 되어 나는 상황을 설명했다.
"이러이러해서 반품하게 되었는데요… 블라 블라… 제가 택배사에 전화해서 접수해야 하는 건가요?"
이해할 수 있는 명료한 대답을 기대하고 있던 나에게 상담사는 송장번호는 필요 없으니 직접발송을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직접발송의 경우 송장번호를 넣어야 접수가 되는 건데 그냥 눌러두기만 하라는 말이 뭔 말이지??
"직접 발송을 누르면 수거 정보 입력을 해야 하는데 그걸 입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이신가요?"
"네. 그렇게 하시면 자동으로 신청이 되신 겁니다. 블라블라..."
답변을 들었지만 여전히 이상했다. 화면에는 분명히 '수거정보 입력 필요 - [반품정보] 확인'이라고 추가 입력을 요청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아.. 확인이 필요하다고 뜨는 화면을 보니 상담사가 아직 뭔갈 이해 못 한 부분이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아무래도 완료가 된 것 같지 않다고 재차 물었고 상담사 역시 재차 접수된 거라고 답하며 만약에 확인을 원하면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고객센터로 문의를 해보라고 했다.
음... 스마트스토어 고객센터에 물어보면 수거정보 입력을 하라고 할 거고 내가 수거 정보 입력은 필요 없다고 안내받았다고 하면 그러세요? 그렇지만 저희 전산상에는 입력을 해야 완료처리가 되는 점 양해 바라며 관련해서는 다시 판매자에게 문의하시라고 할 것 같은데...
"그러면 지금 상담사님께는 반품신청 정보가 확인되나요?"
상담사는 전산상으로 주문 건과 배송 건 모두 조회가 가능하니 정상적으로 처리됐는지 확인 요청을 해봤다.
"아... 고객님. 그건 지금 확인이 안 되네요."
(읭??)
"언제쯤 확인이 가능할까요?"
"음.. 아마 두세 시간 정도 후에는 확인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혹시 두세 시간 뒤에 정상적으로 접수되어 있는지 피드백을 주실 수 있나요? “
"..."
상담사는 잠시 침묵을 하고는 알겠다고 했다. 공백에서 느껴지는 짜증과 귀찮음. 이미 우리는 대화 중반부터 서로 기분이 상해 가고 있었다. 신청이 완료되지 않은 창을 보며 재차 묻는 나와 다 된 거라는데 왜 자꾸 묻나 싶었을 상담사. 서로 다나까체를 쓰며 정중하려고 애썼지만 올라오는 감정은 감출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서브텍스트에 기분이 상했지만 끝까지 정중한 채 전화 통화를 마쳤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은 끝내 나오지 않았던 통화. 그냥 웃으며 통화를 마무리하고 나중에 내가 다시 전화를 걸어 확인해도 됐을 일이었다. 이게 뭐라고 고작 운동화 하나에 나도 그리고 누군가도 기분이 상해버렸다.
전화를 끊고서 바닥에 입을 벌리고 있는 택배 박스를 보는데 통화 연결 전에 들었던 상담사에게 친절하라는 안내 멘트가 다시금 떠오르며 현타가 왔다. 나는 그에게 좀 더 친절할 순 없었을까? '상담사는 고객보다 더 친절해야 해!'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인지...
/
'이까짓 운동화 하나면 어떻고 두 개면 어떠냐. 걍 쟁여뒀다 신을까보다...'
위에 자책의 글을 쓰고 이따 통화를 하게 되면 사과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밥도 먹고(기분과 별개로 밥은 잘 들어가는 편이다) 동생과 카톡도 하고 나니 올라왔던 감정이 가라앉았다. 한 김 식은 눅눅한 마음으로 운동화 박스를 다시 쳐다보는데 고객센터에서 연락이 왔고 나는 아까의 딱딱함에 대한 미안함으로 최대한 친절을 그러모아 전화를 받았다.
"고객님~ 아까 문의하신... 블라블라..."
어랏.. 상담사의 말투도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 아마 수화기를 들기 전에 그도 마음을 한 번 털어내지 않았을까? 보이지 않는 창과 방패로 대치하던 우리는 이제 동시에 무기를 내려놨다.
그래서 결론은 정상 접수처리 확인됐다는 것.
"더 궁금한 점 있으실까요?"
"아... 아까 소통이 잘 안 되어... 블라블라... 언짢으셨다면 죄송합니다."
"아... 아닙니다. 고객님. 혹시 더 궁금하시거나... 블라블라..."
나는 용기 내어 사과했고 아까 우리의 상황이 어땠는지를 아는 상담사는 나의 사과를 흔쾌히 받으며 좋은 하루가 되라고 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진심을 담아 통화를 마무리하고 나니 이제야 내 마음도 뽀송해진다.
브런치 생태계를 하나도 모르고 브런치 작가가 된 첫날, 나는 '브런치에서 작가님의 서랍에 담긴 소중한 글을 발행하는 용기를 내주세요.'라는 알림을 받고 무작정 여러 개의 글들을 마구 발행했다. 발행하고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알림이 여러 개 와있는 걸 보았다.
"000님이 라이킷했습니다."
"000님이 라이킷했습니다."
"000님이 댓글을 남겼습니다."
"000님이 내 브런치를 구독합니다."
일단 당황스러웠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글을 올리자마자 순식간에 여러 명이 내 글을 읽었다는 게 놀라웠다.
라이킷...? 이건 뭐지? 나는 정말로 한참을 라이킷이 뭔지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영어 그대로 like it, 좋아요.라는 걸 직관적으로 알아챘어야 할 것 같은데 그날 나는 꽤 흥분상태였던가보다. 네이버에 '브런치 라이킷'을 검색해 보고서야 나는 라이킷이 like it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내 글이 나름 괜찮은 가...?"
라이킷은 나를 붕 뜨게 해 주었다. 하나하나 올라가는 하트를 보며 내 맘에도 하트가 뿅뿅 올라왔다.
그러나 붕 뜬 기분도 얼마 안 가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했는데 그것은 내가 올린 글은 여러 개인데 라이킷은 몇 개의 글에만 집중적으로, 그것도 매우 단시간에 달리고 이후로는 감감무소식이 된다는 것이었다.
내 글의 수준은 비슷비슷할 터인데 어떤 글에는 라이킷이 여러 개 달리고 다른 글들에는 거의 달리지 않는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고, 이후 조금은 씁쓸한 브런치 생태계를 알게 되었다.
내가 느낀 바로는 라이킷은 품앗이 같은 것이었다.(물론 모든 라이킷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새 글이 뜨면 노출이 되고 그걸 보고 누군가가 와서 라이킷을 누른다. 그러면 라이킷을 받은 사람은 (예의상?) 다시 라이킷을 해준 사람의 브런치로 가서 라이킷을 눌러주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것을 알게 된 계기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내가 라이킷 하면 높은 확률로 라이킷이 돌아왔다는 것과 내게 라이킷 세례를 퍼붓고 간 한 사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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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글을 쓰고 저장을 누르고 나니 모니터 좌측 상단에 새 알림 표시가 있다. 뭐지? 하고 들어가 보니 누군가가 내 글들에 라이킷을 누르고 댓글을 달고 구독까지 하고 갔다. 오. 마이. 가쉬!!
그분이 내 글을 정말로 읽고 마음에 들어 라이킷을 눌러줬다면 나는 기뻤겠지만... 아쉽게도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들이 불과 일이 분 만에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동일인이 누른 여러 개의 라이킷 알림들은 일분 전 일분 전 일분 전 일분 전...이라고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초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는 한 동일한 시간에 여러 글을 읽을 수는 없다.
누구인지 들어가 보니 내가 그분의 글을 읽고 마음에 들어 라이킷을 누르고 댓글을 남겼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통계를 보면 현재까지 내 글의 일별 최대 조회수는 74회이고 보통 연재글을 올리는 날에는 50~60회 사이의 조회수가 나오고 있다. 이는 글을 발행한 날 기준이고 글을 발행하지 않는 날엔 훨씬 더 적은 조회수가 나온다. 그래서 나는 조회수 대비 라이킷 비율은 높은 편이라고 생각하며 좋아했었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것은 아니지만 내 글을 읽은 사람들 중 다수가 공감해 준다는 것이 뿌듯했던 것이다. 하지만 내게 달린 라이킷들이 그저 라이킷을 위한 라이킷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실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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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버뜨! 실망할 것 없다. 잘 생각해 보자. 내가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이던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꾸준히 쓰는 습관을 들이고 브런치북출판프로젝트에도 도전해 보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내 글에 와서 달리는 라이킷이 찐이든 짭이든 그것에 마음 상할 필요가 있을까? 어쩌면 이 기분은 아직 부족하다면서도 미리부터 인정받고 싶었던 내 욕심의 발로는 아닌지. 그렇다. 나는 모짜르트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자.
따라서 나는 나의 기존 라이킷 방침대로 브런치스토리를 해나가기로 했다.
첫째, 내가 읽고 좋았던 글에만 라이킷을 누른다.
-읽을 글을 선택하는 기준은, (현재로선) 그날의 연재글들을 최신순으로 정렬해서 보는 것을 우선으로 하고 시간 여유가 있어 더 많은 글들을 둘러볼 여력이 될 때는 연재글들을 라이킷순, 응원순으로 해서 보거나 다른 요일의 연재글을 읽거나 내 글에 라이킷을 달았던 분들이나 구독자목록을 통해 찾아보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날의 연재글의 일부를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오랫동안 책은 책꽂이에 양보한 채 유튜브 숏폼에 중독되어 지내왔기 때문에 긴 호흡으로 무언갈 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둘째, 글을 읽고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경우 댓글도 남긴다.
-나는 낯가림도 있고 표현력이 좋지는 않아서 단체 카톡방에서는 할 말만 하는 스타일이다. 이점은 스스로에게 아쉬운 부분이라 브런치스토리를 하면서는 가급적 적극적으로 내 감정이나 생각들을 표현하며 소통하는 연습을 해보고 싶었다. 어차피 진실된 나의 이야기들을 쓰는 공간이므로 이곳에 오면 내 마음도 무장해제가 되는 면이 있고 다른 이들의 글들을 읽으며 여러 감정들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 감정들이 올라올 때 엣헴 하고 돌아서지 말고 따뜻한 말, 응원의 말, 감탄의 말, 장난스러운 농담 등등 그것이 무엇이든 전하고 싶어지면 전하도록 한다.
셋째, 눈치 보지 않는다.
-나는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이다. 내 글에 라이킷을 눌러주고 구독을 해주고 댓글을 써주고 하면 나도 뭔가 보답을 하고 싶어 진다. 고마운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라이킷에 라이킷으로 응해볼까도 생각해 봤지만... 아무래도 내키지가 않았다. 별 느낌을 받지 못한 글에 의무감 같은 것으로 라이킷을 눌러주는 것은 쌍방에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 나는 눈치를 보면서도 한편으로 하기 싫은 것은 못하는 (대쪽 흉내를 내는) 성격이라 그런 식으로 눈치 보며 브런치스토리를 하다가는 얼마못가 이곳을 멀리하게 될 것 같았다. 따라서 나는 눈치 보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내게 좋았던 글에만 라이킷을 달기로 한다.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읽는 것에서도 담백하고 진정성 있게 임하고 싶다.
사람들은 각자 생각이 다르고 가치관과 성격과 취향이 다르다. 저 위의 운동화 사건과 브런치의 라이킷에 대한 각자의 생각 차이에 대해 나는 잘잘못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다르다는 것은 수많은 오해와 대립과 상처와 실망의 원인이 되기도 하므로, 다르더라도 각자가 존중받고 서로 소통할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룰(rule)과 소신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소신이라 함은 '소신(所信): 굳게 믿고 있는 바. 또는 생각하는 바' 임과 동시에 '소신(小信): 작은 신뢰와 의리'이기도 하다.
진정한 소통은 서로의 마음을 연결하는 것이다.
-카를 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