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하면 우리는 브런치 세트
남편은 주말엔 해뜨기 전부터 조기야구?를 간다. 주중에는 일에 치여 바쁘게 지내다 보니 주말엔 마음껏 자고 싶을 건데.. 덥건 춥건 주말이면 무조건 꼭두새벽에 일어나 야구를 하러 간다. 일어나는 모습에 망설임이나 귀찮음이 1도 없다. 정말 좋아하는 것을 할 때의 모습. 연애 초반인 커플의 데이트 약속이 있는 날 아침처럼 기쁘게 일어나 준비를 한다. 그 열정이 대단하다. 그리고 부럽다.
나도 취미가 있다. 직장인 극단에서 연극을 했다. 처음에는 재밌어서 열심히 다녔지만 올봄에 세 번째 공연을 올리고부터는 지금까지 작품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다른 개인 사정이 생기기도 했지만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면 조율해 가며 병행할 수도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스스로는 초반의 재미가 많이 사그라들어서임을 알고 있지만 대외적으로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역할을 고사하며 쉬고 있다. 나는 잘 질린다.
너는 순발력은 좋은데 지구력이 약해
엄마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란 사람은 이렇게 태어난 사람인 것을... 이런 점에 불만을 갖고 있는 당사자로서 누구보다 고치고 싶었고 이렇게 저렇게 나름 노력도 했었지만 노력도 재능이기에 천성을 바꾸지는 못했다.
따라서 포커스를 바꿔서 이런 나의 특성에 맞춰 살기로 했다. 이왕이면 짧은 호흡으로 할 수 있는 일들, 끝이 보이는 일들을 (즐겁게)하기.
이제 지난 회차에 이어 오늘의 중요한 얘기를 해보자.
부푼 마음으로 브런치에 연재글을 올리기로 마음을 먹고 나자 나는 갑자기 두려워졌다. 글을 써본지가 언제였더라... 나는 국가대표급 게으름뱅이인데... 시작도 안 했는데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랄까. 부담감이 밀려오며 회피본능이 솟구쳤다.
워워!! 이제 와서 갑자기 무슨 시추에이션? 칼을 뽑았으면 호박이라도 썰어야지!! 밀물처럼 차오르는 부담감에 뒷걸음질 치는 마음의 멱살을 탁 붙들어 잡는다.
자.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어떤 식으로 연재글을 쓸 것인가를 생각볼 차례다.
나는 스트레스 없이 즐겁게 글을 쓰고 싶었다. 나에게 스트레스 없이 글을 쓴다는 것은 부담 없이 쓴다는 것과 흡사한 의미였고, 연재글을 기획하는 시점에서의 부담이란 주제 선정과 그 주제를 어떤 순서로 풀어가고 매듭지을 것인가였다. 감동과 재미가 빠방 하게 담긴 공감할 수 있는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포부는 거창하지만 자기 객관화를 해보면 쉽지 않을 것 같다. 감동은커녕 뭘 써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다.
따라서 내 능력치 안에서 내가 즐거운 마음으로 소화해 낼 수 있는 글의 주제를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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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를 정하고 나면 그 주제를 가지고 기승전결의 흐름을 생각하며 회차별 소주제를 배치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극 P인 나는 계획을 짜거나 무언가를 조직하고 구조화하는 것에 취약한 편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머릿속에서 체계가 잡히지 않고 멍해져 버리는 현상을 겪다가 불현듯 안 되는 걸 하려고 용쓰지 말고 할 수 있는 게 뭘까로 생각이 옮겨갔다.
아무리 애를 써도 나로선 처음부터 글감들이 막 떠오를 것 같지 않으니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기보다 유(有)에다 유(有)를 덧붙이는 글쓰기를 해보면 어떨까? 동시에 옛날옛적 싸이에 끄적이던 글들이 떠올랐다.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들을 중구난방으로 썼던 글들이기는 하지만 그 글들은 싸이월드시절 특유의 뭔가 과장된 멜랑꼴리함과 질풍노도의 감성을 담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굳이 흐름을 만들어 쓰지 않아도 싸이감성이라는 주제 안에서 맥락을 이어갈 수 있고 각 회차별로도 기존의 글로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그 글로부터 파생되는 생각들이 조금은 수월하게 새 글을 이어갈 수 있게 해 줄 것 같았다.
그리고. 싸이월드에서 쫓겨난 지난 글들이 몸 둘 곳이 생기는 것도 일석이조였다.
시작하는 글쓰기로 이 계획은 완벽하다. 난 천재였어!
이렇게 나는 연재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과 주제 선정 및 구성의 어려움을 싸이월드에 썼던 글들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기로 했고, 단순히 글들만이 아닌 그 시절의 독특했던 감성과 연결 지어 <싸이감성>이라는 주머니를 만들어 그 안에 다양한 색감의 갬성들을 담아보기로 했다. '감성'이란 단어로는 다 담을 수 없었던 아주 찐혔던 그 시절의 '갬성'을 다시 마주하는 것은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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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 보자면 연재글의 기획 단계에서 내가 고려한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나에게 편안하고 즐거운 글쓰기의 방식과 빈도 정하기
둘째, 내게 흥미로우면서 다양한 글감을 찾을 수 있는 주제 정하기
셋째, 주제에 기승전결 혹은 통일성과 흐름 등 맥락에 맞는 회차별 소주제 선정하기
지금 적극적으로 실행되는 괜찮은 계획이
다음 주의 완벽한 계획보다 낫다.
-조지 S. 패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