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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하엘린 Oct 11. 2024

여기 독방에 앉아

-같이 하면 우리는 브런치 세트


주방창을 통해 아침햇살이 내가 앉아 있는 식탁을 지나 거실 소파의 등까지 길게 드리워져있는 것을 본다.

평소보다 일찍 출근하는 남편을 보내고 식탁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뉴욕커피숍 분위기라는 플레이리스트를 골라 틀고 간단히 화장을 한다. 오늘은 아무도 만날 약속도 없고 정해진 외부 일정도 없지만. 

햇살이 참 길다고 생각하며 투명한 빈 통에 달라붙어 반짝이는 모습을 지켜본다. 화사하게 드리운 햇살과 반짝이는 몇 개의 물건들이 사뭇 아름답다.


우리 집 식탁은 이름이 식탁일 뿐 책상에 가까운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장식적 요소 없이 원목과 철제로만 만들어진 큼지막한 테이블이 실용적이다. 왼쪽 끄트머리에는 각티슈와 핸드크림, 간단한 화장품들과 필통과 집게핀, 면봉과 꼬리빗 등 자주 사용하는 잡다한 물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애초에 4인용으로 만들어졌기에 이런저런 물건들이 한쪽 구석에 잔뜩 자리하고 있어도 여유롭다.

식탁 가운데에는 내가 끼고 사는 노트북과 핑크색 마우스패드와 핑크색 마우스, 동그란 스탠드형 거울이 있고 오른쪽에는 몇 권의 책과 연습장과 스케쥴러, 나무컵받침과 휴대폰 거치대가 있다. 테이블에 이렇게나 많은 물건들이 있었구나.


나는 이 식탁, 아니 테이블에서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운다.

내 삶을 한 걸음 나아가게 만들어 줄 만한 사소하지만 중요한 계획들을 열심히 세워왔다. 그리고 그 계획들의 거의 대부분은 작심삼일, 아니 작심 당일이 되어 버리곤 했다...


간절한데도 못 지킨다. 미루고 지우고 그러다가 계획표를 찢어 버리고 다시 계획을 세운다.

어차피 지키지도 못할 계획 따위 그만 세우고 그냥 살면 될 것을 또 그렇게 열심히 계획을 세우면서 살았다. 그렇게 열심히 계획만 세우다가 반평생이 지났다. 자책도 하고 게으른 천성을 미워하면서도 여전히 반복하고 있다. 눈이 쌓이듯, 허무하게도 그렇게 세월이 훌쩍 흘러버렸다. 티끌 모아 태산이 맞았다. 젠장. 


어느새 길었던 햇살이 사라지고 빛이 사라진 테이블 위는 전보다 더 어둑하게 느껴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자리에 앉아 있었을 뿐인데 시간의 흐름은 내게서 조금씩 빛을 앗아가는 같아 스산한 마음이 들었다. 침침해진 공간을 밝히기 위해 나는 식탁등을 켰다. 약간 노르스름한 빛을 뿜어내는 주백색 전구들이 순식간에 스산함을 몰아내고 공간을 따뜻하고 아늑하게 채워준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글을 발행해 보고 발행취소도 해보고 라이킷에 좋아했다가 실망도 하고 며칠 동안은 어리버리하면서 브런치스토리를 들락날락거렸다. 브런치 생태계 탐험은 흥미롭기도 했지만 아직 낯설었고 그런 낯선 나의 시선 속에서 끊임없이 글들이 쏟아져 나오는 이곳은 활기차 보이면서도 조금 지쳐 보이고 활짝 열려있는 같으면서도 닫힌 문처럼 보이기도 했다.

앞으로 이곳에서 나는 어떤 식으로 글을 써나가면 좋을까? 무엇보다 나는 이곳에서 꾸준히 쓰는 훈련을 하고 싶었다. 내게 가장 힘든 것은 꾸준함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통증 빼고) 게으름은 내 평생의 숙제였다. 


그리하여 또다시 나는 주방과 거실을 잇는 식탁에 앉아 앞으로의 글쓰기 계획을 세워보기로 했다. 반복된 실패와 학습된 무기력을 뚫고 내 깜냥 안에서 꾸준히 쓸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생각 끝에 나는 브런치스토리에 연재글을 올리기로 했다.



연재(連載) 
- 신문이나 잡지 따위에, 긴 글이나 만화 따위를
여러 차례로 나누어서 계속하여 실음.




나는 자유와 자율을 동경하면서도 그것들은 내가 감당하기엔 아직 버거운 관계로 약간의 구속과 강제성이 있어야 실천이 가능하다. 다행인 것은 게으르지만 책임감은 잘 작동하므로 약속을 해두면 어찌 저찌 괴로워하면서도 지킬 확률이 매우 높은 편이다. 따라서 이런 나의 성격적 특성을 고려해 볼 때 연재글로 글들을 발행하는 것이 현재로선 최선인 것 같았다. 


썸 탈 때처럼 이제 막 시작한 브런치스토리는 나의 최대 관심사였고 얼른 글을 올리고 싶은 앞 선 의욕으로 두근댔지만 나는 내가 곧 사그라들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현실적인 계획을 세워야 했다. 매일매일 글을 발행한다거나 매번 새로운 글들을 써낼 자신은 시작하는 지금 이 순간에나 있는 것이지 며칠 혹은 몇 주 내로 나는 다시 나무늘보처럼 늘어져갈 것이 거의 확실했다. 


내가 생각해 본 연재글의 장점은 정해진 요일에 정해진 주제에 대한 글을 발행하는 방식으로 글쓰기의 단순 명확한 루틴을 만들 수 있다는 것과, 나처럼 구독자가 거의 없는 작가에게는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될 수 있는 효과(뇌피셜)도 있을 것 같다는 점이다.

단점은 글을 쓰기 싫거나 다른 일들로 바빠도 정해진 요일에 글을 발행해야 한다는 것이지만 이 단점이야말로 나의 단점을 상쇄시켜 줄 것이기에 결국 연재글은 나에게 알맞은 방식이 맞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은 것은 브런치스토리를 시작할 때 각자가 자신의 상황과 특성에 맞는 방식으로 글을 발행하되 처음의 들뜬 마음만으로 무리한 계획을 세우지는 말라는 것이다. 가능할 것 같은 그것에서 반쯤은 덜어낸 정도로 시작해 보고 어렵지 않다면 조금씩 늘려가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승리하는 것은 하루짜리 경기가 아니다.
그것은 매일 반복되는 작은 습관들의 연속이다.
-제임스 클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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