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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정현진 May 02. 2022

나도 내 돈이 있어요!

놀면서 공부하는 법

엄마의 일기


현진이에게 연산 개념이 어느 정도 잡히면서 우리 부부는 집안일의 대가로 용돈을 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동전만으로 해결하던 용돈의 개념은 양가 조부모에게서 너무 큰일이 되어버렸다. 손주 예쁜 마음에 천 원, 이천 원씩 주시던 게 어느 날은 만원이 넘는 돈도 용돈이라며 주시다 보니 어느새 현진이는 10만 원 가까운 용돈을 쉽게 모으게 되었다. 다른 책을 러 간 서점에서 현진이는 갑자기 꽂힌 겨울왕국 책 두 권에 기꺼이 본인의 용돈 16200원을 지출했다. 그리고 아주 뿌듯한 마음으 지출 후 남은 돈까지 야무지게 계산해 적어놓았다.


스스로 한 지출이 마냥 기쁠 뿐 저축에 대한 개념을 아직 모르는 것 같아, 돈은 잘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절약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은행과 통장이라는 것의 존재를 추가로 설명해줬다. 현진이는 통장이 신기했는지 이제는 돈을 쓰지 않고 은행에 본인 통장을 만들러 가는 날까지 돈을 잘 간직하고 있을 거라고 굳게 다짐했다.


그간 용돈 계산을 하며 연산을 익혀왔던 현진이는 오늘 저축이라는 로운 한 가지를 더 배웠고, 배운 것을 몸소 실천하는 중이다. 




아이들의 교육에서 가장 어렵고 그래서 늘 고민하는 부분이 바로 공부와 놀이 사이의 균형을 찾는 일이다. 내 능력이 허락하는 한 아이들은 내가 가르치겠다며 남편에게 큰소리 떵떵 쳐놓고(남편은 학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 이게 웬 떡이냐 덥석 물었을 테지만) 유치원 말고는 모든 학습을 엄마표로 진행하고 있는 요즘, 나는 더더욱 고민이 많다.


아직까지는 공부를 엄마와 함께 하는 놀이의 연장선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 다행이다 싶다가도, 의무처럼 해야 하는 공부에 대한 경험치가 부족하다 보니 어느 순간 진짜 공부를 하는 때가 오면 거부감이 들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순간에는 유체 이탈하듯 엄마에서 빠져나와 세상 친절 선생님이 되는데, 이러다 내 몸에서 사리가 수십 개는 나오는 게 아닐까 하는 나름의 피로와 고충도 있다. 전문적으로 육아나 유아교육을 배운 사람이 아니다 보니 내가 가르치는 이 방향이  좋은 방향이 맞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 또한 내 고민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내가 나와 함께 놀면서 하는 공부를 놓지 못하는 이유는, 현진이에게 배우는 과정의 즐거움을 먼저 알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틀리면 어때, 느리면 어때, 새로운 걸 배워가는 과정이 즐거웠으면 그것만으로도 넌 성장한 거야'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어 맞이할 세상이 요구하는 것은 대부분 결과일 테지만, 과정이 즐거웠다면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에 그리 좌절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먼저 느끼게 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현진이가 학교에 입학하고, 시험을 보고, 주위의 아이들과 비교가 되면서는 공부의 결과를 나도 현진이도 절대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현진이가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는 과정을 즐거워하고, 결과가 어떻든 본인이 얻은 배움에 뿌듯해하면 좋겠다. 그러니까 나도 지금의 고민을 잊어서는 안 된다. 틀렸다는 빨간 줄에 움찔하지 않고, 엑스표 하나 없는 동그라미 잔치에 환호하지 않으려 한다. 100점을 맞으면 선물을 사준다거나, 학원에서 진급을 하면 원하는 걸 하나 해준다던가 하는, 결과에 따라 보상을 하는 일만큼은 절대 하지 않으려 한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공부는 어쩌면 이미 시작되었고, 공부는 뿌듯하고 기쁜 일이라기보다는 끝도 없이 지루하며 지치기 쉽다는 걸 언젠간 알게 될 테고, 내가 원하지 않았더라도 결과에 실망하는 일은 수도 없이 맞이하게 될 테다. 그러니 적어도 지금 엄마와 함께 하는 공부는 지치거나 피하고 싶은 일이 아니면 좋겠다. 엄마와 함께 쌓온 공부에 대한 즐거운 기억이, 힘들고 딱딱한 공부의 길에 가끔씩 말랑하고 촉촉한 단비가 되어 내리면 좋겠다.  


그래서 쉬지 않고 고민한다. 아직 겪어보지 않고 배워보지 않은 것이 더 많을 일곱 살 인생에게, 또 어떤 재미있고 새로운 것을 가르쳐주며 놀아볼까. 무슨 일을 함께 하며 일곱 살에게 신기한 세상의 문 하나를 열어줄까. 해답 없는 고민을 기꺼이 쉬지 않고 는 중이다.



아들의 일기


어제 내가 엘사 1,2를 샀다.
16,200원. 생각보다는 적네ㅋㅋ 26,200원이었으면 너무 비쌌을 텐데 다행이다. 정말 정말 30,000원이라면 크아아아악! 쿵 넘어질 뻔했다.
내가 산 엘사 책은 정말 재미있다. 500원짜리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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