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잘 나가던 시절을 안주 삼아 이야기할 때가 있다. 가끔은 그럴 수 있지만, 계속 반복된다면 머릿속에 새롭게 성취한 경험과 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면, 과거의 기억을 통해 현재를 위로받고 싶은 줄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이제 세상 물정 알만큼 아는데”라며 호기심도 줄고, “체력도 예전 같이 않아서”라며 도전적인 활동에 지레 겁을 먹게 된다. 하지만, 또 세월이 지나면 “아! 그때 시작했어야 했는데 “ 라며 나는 혼자 중얼거릴 것이다.
퇴직 후 무엇을 할지 고민하다 보면, 이것저것 잘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인간 생존의 필수요소인 두려움, 이것은 반복된 경험과 과학을 통해 줄여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사람들의 상상력으로 못 만들 것이 없지만, 자기 비하, 타인 시선, 자존심, 비교하기 등 없는 것도 만들어내 스스로를 주눅 들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요즘같이 개인화 시대에 가족 외에는 나에게 관심도 없는데, 남의 평가나 속세의 기준에 너무 구애받지 않았으면 한다.
자신에 대한 프라이드와 믿음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다. 어느 분야이건 최고가 된 사람들은 정신적, 육체적 한계에 도전하여 극복한 사람들이다. 결국, 두려움과 고통 그리고 게으름이라는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은 것이다. 이를 통해 자신만의 새로운 영역을 만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익숙하고 편한 기존 공간에 머물면서 무엇인가 새롭게 할 일이 없다고 걱정만 토로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심리적 한계를 깨뜨리는 것이 문 밖을 나가는 첫걸음이다.
현재 내가 쌓은 지식과 경험이 퇴직 후에도 유효하게 사용할 수 있을까? 인적자원의 반감기(half life cycle) 설에 의하면 개인이 교육훈련을 통해 지식과 기술 개발이 없다면 3년마다 50%씩 감소되어 10년 후에는 역량이 무용지물이 된다고 한다. 하루가 피곤하고 귀찮더라도 책이라도 읽는 의지가 필요하다. 서서히 변화하는 환경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죽은 개구리 이야기를 익히 알고 있다. 변화 불감증,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예전 광고방송 중에 ‘디지털 유목민’이라는 문구가 기억난다. 한 곳에 머물며 안주하는 순간, 변화보다는 유지에 급급하게 된다. 환경을 극복하고 움직이는 사람이 가만히 집에 있는 사람보다 기회를 잡을 확률이 높다. 패현이라는 작은 시골 동네 건달 출신으로 가진 것 없이 빈손으로 시작한 행동대장 유방, 초나라 귀족 집안 출신 항우를 이기고 진나라에 이어 두 번째로 중국을 통일한다. 처음부터 유방이 대업을 이루리라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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