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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버들 May 25. 2022

버리지 못하는 것

  - 프롤로그

        

현관문 앞에 버리려고 내놓았던 거울이 사라졌다. 남편이 버렸나 생각하고 잊었다. 그러다 행거에서 옷을 찾다 옷 사이로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얼마 전 버리려 했던 거울이다. MDF 두꺼운 합판에 알록달록 색유리를 잘라 붙인 거울 공예품. 27년의 시간을 담고 있는 거울은 1m 이상의 높이로 제법 크다. 만만치 않은 무게 때문에 걸어놓았던 못에서 떨어져 귀퉁이가 뭉개졌다. 거울 유리 쪽은 금이 가지 않았지만, 또다시 무게 때문에 떨어질까 봐 한쪽 벽에 세워 놓았다. 사실 세워 놓았다기보다 가로로 눕혀 놓았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겠다. 그렇게 거울 속의 여인상은 누워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형체의 끝도 해지고 있었다. 볼 때마다 지나갈 때마다 거슬리게 되었다. 버리자와 버리자 말자의 의견이 오고 갔다. '버리자'는 나의 입김으로 버려졌던 또는 정해졌던 저 거울이 아직 옷걸이 뒤에 있다.     


세월의 시간이 축적되면서 물건이 많아지고 있다.  집의 공간이 좁아지고 있다. 더 넓은 곳으로 이사 가지 않는 한 줄여야 한다. 공간과 환경을 생각해서 되도록이면 물건을 적게 사려고 하는데도 이상하게 물건이 줄지 않는다. 필요에 의해서 구입했던 것들이 하나 둘 자리를 차지하면서 짐으로 전환된다. 필요 없으면 쓰레기가 된다. 쓰레기를 분리해서 버린다. 옷장 안의 옷들도 버린다. 그럴 때마다 약간의 고민을 한다. 누구나 한 번쯤 했을 고민. 한 번도 입지 않은 옷, 또 입을까 하는 마음에 몇 달 몇 년 그대로 버리지 못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옷들을 들었다 놨다 한다. 옷뿐만 아니라 다른 물건도 마찬가지다. 분명 필요했던 것들이었다. 가치를 논할 수 도 있는, 그것들을 정리하고 버린다. 한 번의 생각도 없이 버려지는 물건과 고민에 빠지게 하는 물건이 있다. 잠시 머뭇거린다. 아직은 쓸모가 있어서, 나와 함께한 어떤 기억이 있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전자보다 후자의 이유로 인해 버리지 못한다. 생각해 본다. 버리지 못하는 물건 중 어떤 것이 있는지.  왜 버리지 못하는지. 물건에 나의 시간이 배어 있기 때문이라고.     


그것들과 함께했던 시간 속에 사람과의 기억도 묻어 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좋은 기억도 있지만 그 반대의 기억도 있다. 감정은 살아있는 것이기에 혹 상처를 받았다면 더 빨리 그와 관련된 물건은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 버려지는 물건처럼 기억도 버릴 수 있을까. 눈에 보이는 물건과 다르게 보이지 않는 기억은 쉽게 버리지 못한다. 하지만 사라지는, 이미 사라진 기억은 아마도 살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의 추억이 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남아 있는 기억은 내가 버리지 못하는 추억인지 모른다. 기억이 기억으로 끝나거나 기억이 추억이 되어 스며들거나.  


버리려 했던 거울을 본다. 거울 안에 여자를 본다. 그리고 관계된 그 누구와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그 시간 속에 엄마가 있고 딸이 있고 아픈 기억과 행복이 있다. 버리지 못하는 것과 아직은 간직해야 할 것을.




공간을 넓게 차지하고 있는 책상

그 위로 빌딩을 만들어가는 책들

그것을 기대고 있는 어떤 시간들

그사이 턱을 괸 채

무게에 무게를 더해 보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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