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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버들 Apr 26. 2022

잔치국수와 영양 찰떡

    

“엄마, 잔치국수 먹고 싶어.”

딸아이는 잔치국수를 좋아한다. 일주일 전에도 해달라고 했는데 손이 많이 가기에 해주지 않았다. 먹고 싶은 게 많은 아이. 아니 아이보다 아가씨가 더 잘 어울리는 딸. 머뭇거리며 조금은 고심을 하다 가스레인즈 위에 냄비를 올려놓았다.     



잔치국수의 육수 국물은 역시 멸치. 멸치의 배에서 검은 똥을 빼낸다. 멸치 비율에 비해 큰 눈과 입. 어딘가를 쳐다보고 있는 검은 눈, 자기보다 더 큰 것을 먹었을 것 같은 쩍 벌어진 세모진 입. 바다를 헤엄쳤던 멸치는 이제 냄비 속에서 가자미처럼 누워 있다. 냄비 안에서  멸치, 고추, 양파, 무, 다시마 물이 부풀어 오른다. 푸푸. 수면 위로 반쯤 잘린 물방울 풍선.


프라이팬에 풀어놓은 달걀을 붓는다. 얇게.  달걀지단은 손목 스냅으로 높이 올려 뒤집힌다. 오오, 완벽하다. 바로 채 썰어 놓은 애호박을 볶는다. 후추와 소금 톡톡! 약간의 참기름. 볶은 애호박을 차반 통에 담고 식은 지단도 썰어 통에 담는다.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 수돗물에 대충 씻어낸다. 씻은 김치를 송송 썰어 그 위에 약간의 참기름과 깨소금 그리고 조물조물 무쳐 또 다른 작은 통에 담는다. 냉동칸에서 유부를 꺼내 끓는 물에 넣어 데친다. 데친 유부를 물기 없이 짠 다음 채 썬다. 유부는 달궈진 프라이팬에서 물기가 사라지도록 볶아낸다. 반복 같지 않은 반복이 이어진다.


눈은 분주하다. 양쪽을 번갈아 바삐 보는 사이 손은 더 분주하게 건더기를 건져낸다. 멸치 육수에  한 스푼 간장을 넣어 맛의 깊이를 더한다. 이제 잔치국수의 재료는 준비되었다. 가장 중요한 국수 면발만 있으면. 문장처럼 간결하고 간단하게(?).


또다시 가스레인지 위에 물이 끓고 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물에 소면을 붓는다. 넉넉하게 심심할 때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게 소면을 붓는다. 한 번의 거품이 일어난다. 흰 거품과 함께 엄마의 찰떡이 부풀어 오른다. 잔치국수와 영양 찰떡의 거리는 가깝거나 멀다.      




어릴 때, 엄마는 일 나가기 전에 자주 찰떡과 약식을 해 놓으셨다. 자식이 많기에 당연히 입도 많았다. 자식의 간식거리로 먹을 수 있게 미리 준비해 놓으셨던 엄마. 지금처럼 배달음식을 주문해서 먹는 시대가 아니었기에 가족이 먹을 음식은 직접 만들어야 했다. 대식구로 인해 간식거리뿐만 아니라 반찬도 국도 많은 양을 해 놓고 일터로 나가셨다. 그때는 몰랐다. 엄마가 얼마나 힘드셨는지. 그것도 모르고 맛있게 받아먹었다. 분리된 주방은 엄마의 자리라 생각했다. 지금은 대부분 주방과 거실이 연결되어 있지만 과거의 그때는 주방은 방의 개념처럼 분리되어 있었다. 주방은 먹을 때 말고는 직접 음식을 만들기 위해 들어간 본적은 극히 드물었다. 배고파서 주방에 들어가면 엄마가 만들어 놓은 음식들이 항상 채워져 있었다. 간식거리가 담겨 있는 쟁반, 국과 탕이 담겨 있는 큰 솥, 비빔밥 용기에 그득 담겨 있는 반찬들이 주방보다 더 크게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간식 중 좋아했던 것은 떡이었다. 식당에서 음식을 나르는 넓적한 사각 쟁반 2개. 그 쟁반에 한가득 떡을 만들어 놓으셨다. 도깨비방망이 한번 휘두르듯 뚝딱. 눈 깜짝할 사이 만들어져 있었다. 엄마 손은 만능 손이었다. 로봇보다 빠르고 비밀의 도깨비방망이를 가지고 있는 듯했다. 만드는 과정을 자세히 보거나 같이 한 적이 없다. 다만 압력밥솥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갈색의 약식 밥과 밤, 대추, 강낭콩이 섞인 영양 찰떡이 넓적한 쟁반에 한 번에 쏟아붓는 엄마의 손만 볼 수 있었다. 네모 쟁반 위에 부어진 간식거리를 납작하게 고루 퍼지게 엄마의 손은 뜨거운 것들을 꾹꾹 누른다. 엄마가 사라진 자리에 약식과 찰떡이 거실 바닥 한쪽에 덩그러니 자리해 있다. 엄마는 정말 도깨비방망이를 가지고 있었는지 모른다.


지금도 가끔 엄마가 해주신 음식들이 생각나고 먹고 싶을 때가 있다. 물론 사 먹으면 되지만 그때의 맛을 느낄 수 없다. 상품화된 음식과 엄마가 해준 음식의 맛은 다르다. 당신의 손맛이 들어가고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이 들어가기에 당연히 맛이 다를 수밖에 없다. 생각나는 맛, 기억을 부르는 그 맛.  누구나 하나쯤 간직하고 있는  그 맛, 그 향기.



흰 거품 위에 찬물 한 컵을 붓는다. 가라앉고 다시 거품을 올라오고. 두 번의 찬물 세례를 받은 국수를 건져 찬물에 헹군다. 시원한 물에서 면발은 씻어지고 비벼진다. 흰 국수 면발을 먹기 좋은 양으로 둥지 틀 듯이 감아 가지런히 채반에 담는다. 식탁 위에 잔치 국수 고명 재료들이 기다리고 있다. 벌써 입안에서는 잔치국수를 먹고 있는 것처럼 배가 불러온다. 사기그릇에 삶은 국수를 담고 그 위에  색색의 고명을 올려놓는다. 그리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육수를 붓는다. 마지막으로 김을 뿌린다.    

 

“잔치국수 먹자.”

감탄의 소리와 함께 딸과 나는 잔치국수를 먹는다. 진한 향의 멸치 냄새와 부드러운 면발이 입안으로 들어가는 한낮의 오후.



음식의 향기

향기를 담은 그릇

진한 국물 안에 떠오르는 당신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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