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관으로 태정이를 만나기까지

한 번의 유산, 세 번의 시험관

by 남산바라보는여자

2018년 1월 난 크나큰 결정을 내렸다. 5년간 이어간 언론인 생활에 스스로 마침표를 찍었다. 퇴사하던 날 사수 앞에서 눈물을 쏟았다.

내 꿈과 맞바꾼 건 아기였다. 마감에 쫓기느라 난임 병원을 다니던 내 몸은 늘 고됐다. 결혼 4년 차에 회사와 아기 중 난 아기를 택한 것이다.

회사에 맞춰져 돌아갔던 일상은 석 달간 헤매고 또 헤맸다. 기자가 아닌 나의 생활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어색했다. 힘겹게 새 출발 버튼을 누르고 아기가 찾아올 수 있는 몸과 마음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해 4월 새로운 난임 병원을 찾았다.

의사 선생님은 내게 시험관을 하자 하셨다. 이전까진 인공수정을 했다. 두 번 모두 실패였다. 인공수정이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인공수정은 정자와 난자를 자궁에 주입하는 비교적 간단한 시술이다. 시험관은 수정란(배아)을 이식한다. 더 복잡한만큼 임신 확률이 높아진다.

시험관의 첫 단계는 자궁내시경을 하는 것이었다. 간단한 시술이었지만 전신마취를 했다. 30분이 채 안 된 시간 동안 오래 잠을 잔 듯했다. 반나절 입원도 했다.

두 번째 단계로 내가 직접 내 배에 과배란 주사를 놓았다. 주사는 무섭지 않았다. 아기가 찾아온다면 그 정도는 별 거 아니었다. 과배란 주사는 난자 수를 늘리기 위해 맞는데 시험관을 한다면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다.

과배란 주사를 맞으면 난소가 잘 붓는다. 한 달의 휴식 기간을 가졌다. 이후 난자 채취일이 다가왔다. 난자를 채취하기 위해 또 전신마취를 했다. 태어나 깁스조차 한 적 없는 내가 전신마취를 이렇게 자주 할 줄 몰랐다. 또다시 두려워졌지만 참을 만했다. 의료진을 신뢰했고 아기가 올 것이란 기대감이 컸다.

5일 배양된 배아를 그 해 6월 자궁에 이식했다. 2주 동안 병원에 가지 않고 기다리는 힘겨운 시간이 찾아왔다. 무던함, 지난함, 긴장감이 교차했다. 1차 시험관 결과는 임신이 아니었다. 괜찮았다. 1차 성공은 로또 당첨이나 다름 없다.

또 다른 2주가 지난 뒤 시작된 2차 시험관은 1차 때보다 속도감 있게 진행됐다. 또다시 과배란 주사를 스스로 맞았다. 세 번째 전신마취를 하고 난자도 채취했다. 곧바로 배아 이식도 이어졌다. 이번엔 행운이 따랐다. 임신이었다. 얼떨떨했다. 2차 시도 만에 성공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기쁨은 찰나였다. 임신 7주경 원인 모를 유산이 이어졌다.

진료실에서 유산 판정을 받고 유산 시술 동의서에 서명을 해야 했다. 서명을 할 수가 없었다. 내 이름과 함께 아이가 영영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펜을 든 채 몇 분간 울고만 있었다. 9년 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날만큼 슬펐다.

집에 돌아와선 아기 초음파 사진을 보고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남편은 본인은 아이가 없이 사는 것도 괜찮다며 나를 위로했다. 남편도 나만큼 슬펐을 것이다. 이후론 시술 날까지 감정을 자제하려 애썼다. 하늘이 유난히 예뻤던 가을이었다. 큰 위로가 됐다.

시술 날도 울어버리고 말았다. 시술 직전 만난 담당 교수님은 내게 아기가 찾아오지 않는 게 아니라 늦어지고 있을 뿐이라 했다. 어떤 말보다 힘이 됐다. 시술대에 누워 우는 걸 마지막으로 난 다시 울지 않았다.

시간이 약이었나 보다. 유산 시술 후 주어진 석 달의 휴식 기간 동안 어느 때보다 건강해졌다. 매일 운동을 했다. 여행도 갔다. 못 보던 친구들도 만났다. 남편에게 요리도 해줬다. 말투, 행동, 표정이 바뀌기 시작했다. 더디게만 흐르던 시간은 내게 나를 돌아보는 기회도 줬다. '아이는 언젠가 찾아올 것이다', '혹시 아이가 찾아오지 않더라도 행복한 삶을 살아보자'라며 마음을 비우고 어깨의 짐을 내려놨다.

이듬해 초 아기가 찾아왔다. 3차 시험관은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3차 배아 이식을 한 그날 밤, 한 남자 아기가 아장아장 걸어와 품에 안기는 꿈을 꿨다. 바로 내 아들의 태몽이었다.


실패는 겪는 순간엔 쓰기만 하다. 허나 어떤 실패도 헛되지 않다. 두려움도 긍정의 감정이 동반되지 않는다. 그러나 두려움도 시간이 흐르면 실체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내겐 두 번의 시험관 실패와 한 번의 유산이 그랬다. 쓰기만 한 실패였고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듯 무서웠다. 터널 밖을 나와 비로소 알았다. 시험관을 진행하며 마주한 모든 순간과 감정은 헛되지 않았었다.

시험관을 진행하며 아기를 기다리는 예비 엄마들이 힘을 냈으면 좋겠다. 지금 한 선택에 결코 후회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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