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예정일을 3일 앞둔 2019년 9월 25일 오후, 예정대로 정기 검진을 받았다. 두 번째 내진을 했는데 자궁문이 1센치 정도 밖에 열려있지 않았다. 아기도 그리 많이 내려 온 상황이 아니었다. 첫째는 늦게 태어날 수 있단 말을 많이 들었던터라 나도 예정일이 좀 지나고 출산하지 않을까 싶었다. 선생님도 예정일을 넘기고 한 번더 보자며 검진 날짜를 잡아주셨다.
집에 돌아와 낮잠을 한숨 자고 일어나려고 몸을 왼쪽으로 돌렸는데 속으로 악.. 배가 아프다...를 외쳤다. 열 달간 한번도 느낀 적 없는 아픔이었다. 촉이 왔다. '이제 똘망이가 세상으로 나오려는구나.' 몸을 일으켜 화장실을 갔는데 피가 비쳤다. 출산의 조짐임을 확신했다. 이제는 진퇴양난이었다. 내진빨로 진통이 시작되기도 한다는데내가 그럴 줄이야.
진진통이 시작돼도 아기는 하루가 지나야 태어날 수도 있고, 길게는 이틀이 걸릴 수도 있다. 가진통과 진진통을 분간하는 것도 그리 쉬운 게 아니다. 진통앱을 키고 진통 간격을 재는데 규칙적이다가도 불규칙적으로 배가 아파왔다. 병원을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건 아픔의 강도가 세졌을 때였다.
저녁 8시가 넘어 20분 거리의 강남 차병원에 도착했다. 늘 임산부로 북적이던 낮과 달리 모두가 떠난 저녁 때의 병원은 스산했다. 신랑이 입원 수속을 밟는 동안 의자에 앉아 심호흡을 했다.
지하1층 분만실로 내려가 인터폰을 눌렀다. 진통이 시작됐다 하니 들어오라는 짧은 답을 들었다. 진통이 시작된 순간 침상에 뉘여져 이동할 것이란 내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간호사는 탈의실로 안내하며 내게 갈아입을 옷을 건넸다.
배는 아픈데 내 두 발로 걷고, 옷을 갈아입고, 벗은 옷을 가방에 챙기고, 분만실을 향해 걸어갔다. 침상에 눕기 전, 화장실도 다녀오라 해 다녀 오는데 갑자기 진통 강도가 세졌다. 난간을 잡고 주저 앉았다. 간호사는 복도에서 이러면 안 된다며 분만실로 들어가라 했다. 바쁜 그들의 상황은 십분 이해되나 그 순간은 서러울 수 밖에 없었다.
또 다른 일에 지친 냉정한 한 간호사가 들어와 내 배에 진통을 체크하는 밴드를 두르고 기계를 켰다. 내진을 하더니 진진통이 시작된 게 맞고 양수가 터졌다고 했다. 아기의 태변도 보인다 했다. '그래서 이제 어찌 된다는 거지.....?' 의료진은 분주해지고, 처치는 계속되고, 배는 점점 아파오고, 점차 무언가를 생각할 수 있는 겨를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래도 그 순간 엄마에게 알려야하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간호사에게 물으니 오시면 걱정만 하신다며 출산을 하고 난 뒤 연락을 드리라 했다. 그렇게 했다. 잘한 선택이었다.
의사는 내게 얼마나 아픈지 묻고 자궁문이 4센치는 열려야 무통주사를 놓아줄 수 있다고 했다. 그 때가 2센치가 열린 상태였다. 그 때부터였다. 진통이 육체적으로 견딜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진통 간격이 점차 줄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이 찾아왔다. 머릿 속엔 오로지 엄마 생각, 하나님 생각 뿐이었다. 열 달간 그리도 수없이 시뮬레이션을 돌려 보았지만 상상이 잘 안된 출산이란 영역은 진짜 어마어마하게 아프고, 무서웠다.
출산한 지 10개월도 더 지났지만 아직도 그 때 그 진통을 설명할만한 표현을 찾지 못했다. 앞서 출산한 친구는 생리통의 10배에 버금하는 진통이라며 꽤 구체적으로 묘사를 하기도 했다. 난 여전히 정신적으로 견딜 수밖에 없는 것이라 말할 뿐이다.
진통이 왔을 때 소리를 지르느라 힘을 쓰면 그만큼 배가 더 아팠다. 아주 작은 신음 소리만이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소리였다. 줄곧 내 옆을 지켜온 남편은 내가 소리를 크게 지르지 않아 진통이 그닥 아파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고통이기에 난 그저 웃어 넘길 수 밖에 없었다.
분만실 밖에 있는 의료진은 여럿인데 내진은 잦지 않았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남편에게 의사를 불러달라 해 내진을 했다. 그 때 들어온 의사의 손을 잡고 살려달라고 했다. 내 손을 조금만 더 잡아달라고도 했다. 진통이 조금은 주는 듯 했다. 의사는 3센치정도 열렸다며 조금만 더 힘을 내자 했다. 그 때부터였다. 지옥을 맛보기 시작했다. 고통의 강도가 극에 달했다.
배는 아픈데 갑자기 너무 더워왔다. 분만실에 있는 아무 서류로 남편에게 부채질을 해 달라고 했다. 자정이 넘어가고 있었다. 이 고통을 어떻게 줄여야할 지 도무지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출산 전 익힌 호흡이 도움이 되긴 했지만 결정적이진 않았다. 앞서 얘기한 엄마 생각과 기도가 그나마 가장 도움이 됐다.
드디어 4센치까지 열렸다. 근데 이게 웬일인가. 무통주사를 맞으려면 마취를 해야 하는데 마취과 선생님이 다른 분만실에 들어가 있어 기다려야 한단다. 생지옥을 경험하는 시간이 연장됐다ㅠㅠ
얼마나 지났을까. 마취과 선생님과 무통주사를 놔주시는 선생님이 모두 들어왔다. 내게 새우처럼 등을 구부려야 주사가 놓아진다 했다. 마지막 고비였다. 난 배가 너무 아파 줄곧 왼쪽으로 돌아 누운 자세 외엔 어떤 자세도 취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 등을 구부리란다. 남자 마취과 선생님이 등을 구부려줬다. 더한 고통이 찾아와 그 의사에게 또 제발 나를 살려달라 했다. 분만 때 이 자세를 하며 자기를 차라리 기절시켜 달라고 한 친구의 말이 머릿 속을 스쳐 지나갔다.
의사는 주사 바늘이 들어가야 하는 적절한 척추 뼈를 찾지 못하고 있다 했다. 두 번째 시도도 마찬가지였다. 세 번째 시도에 앞서 이번에도 실패하면 무통주사는 놓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다. 정말 기절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이었다.
신이 도왔다. 새벽 3시경 주사가 내 몸에 들어갔다. 내게도 무통 천국이 찾아왔다. 주사가 몸에 너무 잘 받았다. 언제 아팠냐는 듯 남편과의 대화가 가능해졌다. 자궁문도 점점 빨리 열려가고 있었다. 새벽 5시가 넘어가며 10센치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다. 그 때부터 의사들은 내게 힘주기 연습을 시켰다.
주사 효과 때문에 힘을 주는 게 잘 느껴지지 않았다. 의사들이 힘을 주라고 하는 때에 힘을 잘 줘야 했다. 자궁문이 모두 열리고 분만실이 엄청 분주해졌다. 담당 교수님도 들어오셨다. 새벽 6시 45분 우렁찬 아기 울음 소리가 들렸다. 나도 환희와 안도감이 뒤섞인 울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