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금발 머리 소년 (4)

by EJ

‘하아-’


자리에 앉자마자 물통의 물을 한 번에 들이켰다. 등교 내내 내리쬐는 햇살은 생각보다 뜨거웠다. 땀이 식자 재이는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10층 공주의 성’


무도회 초대장을 받고 성의 1층부터 차례로 올라가며 파티 준비를 하는 이야기였다. 5층에서 가방을 고르고 있을 때,


‘털썩’


아이가 앞자리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지친 표정이었다.

“물 줄까?”


재이가 물었다.


“아니”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책상에 앉아 엎드렸다. 재이는 잠시 지켜보다 다시 책을 펼쳤다.


‘딩동댕~’


기다리던 점심시간이 되었다.

“오예, 소시지~”

누군가가 좋아하는 반찬을 발견하곤 소리쳤다.

“감자튀김도 있다!”


재이도 신이 났다. 빨간 케첩과 소시지, 감자튀김이 있는 식판을 받아 드니 받아쓰기로 얼얼하던 오른손도 멀쩡해졌다. 밥을 먹고 나서 아이들과 교실 바닥에서 보드게임을 했다. 하교 시간이 되었다. 알림장을 다 써 갈 즈음 선생님이 아이를 불렀다.

“갑작스러운 이사로 전학을 가게 되었어요.”

선생님의 말씀에 재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이는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 동안 정든 친구들에게 작별인사할까?”

하지만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야, 너 우냐?”


진우가 눈치 없이 외쳤다. 몇몇 여자아이들은 가지 말라고 했다. 어떤 남자아이는 내일 또 볼 것처럼 쉽게 ‘잘 가’라고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돌아오는 말은 없었다. 선생님은 아이를 자리로 돌려보냈다. 재이가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서둘러 가방을 든 아이는 뒷문으로 도망치듯 나가버렸다. 창밖 운동장에 점점 작아지는 아이가 보였다.


한 학기가 지나며 교실 뒤편 벽에는 어느새 아이들이 만든 작품들로 가득 찼다. 재이는 자신이 만든 것들을 둘러보다 다 함께 그렸던 우리 동네 지도에 눈이 갔다. 고층 아파트 꼭대기에 아이가 있었다. 며칠 전 그 부근을 엄마와 지나갔던 기억이 났다.

"이제 이쪽으로는 못 다니겠다. 위험하겠어."

길가 건물에 붙어있는 안내문을 읽더니 엄마가 말했다. 어느새 빈 집이 늘어 노란 스티커가 여기저기 붙어있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어느 밤, 재이는 꿈에 아이를 보았다. 하얀 말을 타고 찾아왔다. 재이는 반가움에 소리쳤다.


“역시 넌 왕자였구나!”

아이가 희미하게 웃었다.

“이제 궁전으로 돌아가는 거야?”

한동안 서 있던 아이는 말없이 뒤돌아 사라졌다.

끝.

(원고지 11.5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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