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을 위한 사회적 거리의 존중
흔히 미국을 개들의 천국이라고 한다.
정말 그렇다. 대부분 개를 동물보다 가족의 일원으로 생각한다. COVID-19으로 대부분의 회사와 가게들이 문을 닫고, 자가 격리 명령(order)이 떨어졌을 때에도, 공식적으로 오픈을 허가한 필수 업종 (Essential businesses)에 병원, 약국, 마트 외에도 동물 병원 (Veterinary care for animals)이 포함되어 있었다. 외출 가능한 예외 조항에도, 병원 방문, 음식/생활필수품 장 보러 가기와 함께 "강아지 산책"이 들어갈 정도로, 중요한 삶의 요소로 간주한다.
Q) Can I walk my dog during the COVID-19 pandemic?
A) Walking your dog is important for both animal and human health and wellbeing. Walk dogs on a leash, and stay at least 6 feet (2 meters) away from others...
Q) COVID-19 기간 동안 강아지와 산책 나가도 되나요?
A) 강아지와 산책을 하는 것이 동물과 사람 모두의 건강과 웰빙(wellbeing)을 위해서 중요합니다. 강아지 줄을 꼭 하시고, 다른 사람들과 최소 6 피트 (2미터) 간격을 유지하세요...
- from 미국 질병 통제 센터(CDC) 웹사이트
COVID-19으로 할 수 있는 여가활동이 제한적이다 보니, 공원에 나오면 정말 사람반, 강아지 반이다. 개를 키우는 사람들은 의무적으로 하루에 한 번은 외출을 시켜준다. 사람도 집에만 있으면 스트레스받고 힘든데, 개들은 오죽 나가고 싶을까 싶다. 심지어 강아지 산책 아르바이트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공원에 그냥 풀어놓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넓은 잔디에서 자유를 실컷 만끽하게 하고픈 마음은 이해가 간다. 치와와처럼 조그만 강아지도 있지만, 어른 허리가 넘어설 정도로 큰 대형견들도 많이 키운다. 목줄을 한다 해도, 어찌나 힘이 세고 활동적인지, 개가 주인을 끌고 가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도 공원에서는 강아지 목줄을 하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경찰에게 신고하면 벌금을 물기도 한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풀러 나온 산책 길에 일일이 신고를 하기란 쉽지 않다. 또 공원에서 만난 사람이라면, 주변에 사는 사람일 테니 더욱 꺼려진다. 풀어놓은 강아지를 보고, '호들갑' 떠는 사람도 거의 없다;; 때문에 결국 피해는 나처럼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아이들과 함께 나온 경우, 아이보다 큰 강아지들은 정말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목줄을 한다고 해도, 줄을 길게 늘어뜨리고 걷는 경우, 목줄이 별 소용이 없어 보인다. "개 목줄을 좀 해주겠니?"라고 요청하면, 미안해하면서 목줄을 채우고, 한쪽으로 길을 비켜주는 고마운 사람도 있다. 하지만, 경험상 대부분 5명 중의 3명은 의아한 듯 쳐다보며 반문한다.
"너는 왜 강아지를 무서워하니?"
"걱정 마. 우리 강아지는 온순해서 안 물어"
"무려 10살이 된 나이가 많이 든 강아지야. 걱정하지 마"
"네가 한쪽으로 비켜가면 되잖아"
등등.. 정말 뜻밖의 답변들이 되돌아온다. 여기서 내가 "원래 공원에서는 목줄을 하게 돼있어. 규칙을 어긴 것은 너야. 여기 표지판 안보이니? 지금 당장 목줄을 하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할 거야"라고 쏘아붙인다고 하자. 말싸움으로 번지거나, 눈살을 찌푸리며 Crazy lady라고 생각할 것이다. 어떻게 해야 좀 더 서로 기분 나쁘지 않게 산책 공간을 확보할 수 있을까?
자료를 찾아봤다. 2018년도 기준으로 미국에 7천 6백만 마리 (76,811,305 마리)의 개가 있다고 한다. 많을 줄 알았지만 이렇게 많을 줄이야;; 이중 38.4% (48,255,413 마리)가 개 주인이 키우는 강아지 (pet-owning households)라고 한다. 미국의 각 집마다 평균 1.6마리의 개가 있는 셈이다. 질병 통제 센터(CDC)의 조사에 따르면, 매년 미국의 470만 명의 사람들이 개에 물리고, 이중 80만 건 정도가 병원 치료 (medical treatment)를 받는다고 한다. 2017년 미국 인구 기준으로 볼 때, 인구 69명 당 한 명이 개에게 물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래도 개를 키우는 가구가 많다 보니 사고도 많은 것 같다. 참고로, 한 해 6,244명의 우체부들이 개에게 공격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 데이터 출처: The Top 10 Eye-Opening Dog Bite Statistics >
꽤 심각한 수치다. 분명 개를 방치하는 것은 큰 사회문제다. 개에 물리고 난 후의 트라우마를 생각하면 더욱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미국 사람들은 개에게 관대할까? 먼저, 강아지를 가족 구성원으로 생각하는 문화와 언제 어디서나 강아지를 접할 수 있는 익숙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주인이 통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고가 발생하지, 대부분은 사고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때문에, "우리 개는 안 물어요"라는 변명은 "내가 잘 훈육시켰어요"라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잘 훈육된 강아지라도, 상황에 따라, 강아지의 컨디션에 따라 의도치 않은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 개는 '나에게'만 '좋은 개'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시청에서 진행하는 커뮤니티 수업 카탈로그를 보면, 강아지 관련 다양한 수업 제공하고 있다. 강아지 훈련 수업(Dog Obedience), 강아지 매너 수업 (Dog manners), 모범 반려견 인증 프로그램 (Canine Good Citizen Test)등 종류도 다양하다. 강아지를 훈련시키는 것뿐만이 아니라, 강아지 주인의 오너십 (Ownership)에 대한 책임감을 부여하는 교육이기도 하다. 정부에서 이런 문화와 프로그램을 장려하는 것은 긍정적 모습이다. 얼마만큼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사람과 강아지가 함께 살아가는 것을 거부할 수는 없는 환경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 간에도 매너가 필요하듯이, 사람과 강아지 사이에도 규칙이 필요하다. 그 규칙에 대한 책임은 개 주인에게 있다. 단순히, "우리 개는 안 물어요"와 같은 순진한 믿음을 상대방에게 강요하기보다는, 누구나 안심하고 공원을 걸을 수 있는 권리를 지켜줘야 한다. 스트레스 없이 공원을 걷고 싶은 것은, 강아지도, 개 주인도, 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모두 같은 마음일 것이다. 오늘도 공원에 산책을 나가면, 목줄 없는 강아지들이 드넓은 잔디에서 마음껏 뛰노는 장면을 볼 것이다. 다시 또 눈살을 찌푸리겠지만, 어쩌겠는가. 문화가 그만큼 성숙해지기 까지 기다릴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