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쨈맛캔디 Jan 14. 2021

동네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만났다!

노벨상이 갖는 진정한 의미에 대한 단상

유태인에 대해 논하자면, 세계적으로는 국가/종교 문제가 얽힌 여러 민감한 문제들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한국인들에게 유태인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노벨상과 유태인 교육’ 일 것이다. 여전히 한국 서점가에는 유태인 교육서적들이 스테디셀러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역대 노벨상 수상자의 20%가 유태인이라는 사실은, 매번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될 때마다 듣는 이야기라 더 이상 놀랍지도 않다. 알게 모르게 유태인 = 노벨상 수상자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6년 전쯤,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친구를 따라 유태인 성당(템플이라고 부른다)에 간 적이 있다. 예배는 한국 교회와 비슷하게 진행되었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의 원어인 히브리어와 영어가 섞어서 진행된다는 점이었다. 당시 영어도 잘 못 알아듣는데, 생소한 히브리어까지 섞어서 들리니, 시간이 갈수록 살짝 지루해졌다. 본 예배를 마치고, 진행자가 그 달의 행사/이벤트에 대해 안내를 하면서 “우리 템플의 제임스 씨 (가명, 성함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가 이번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축하합니다” 하는 것이 아닌가!? 다른 것은 잘 못 들어도 “노벨상 (Nobel Prize)”이란 단어는 귀에 쏙 들어와 꽂혔다. 와우! 말로만 듣던 노벨상 수상자가, 그것도 의학 부분 수상자가 저기 앞에 앉아 있다고?!


내가 가서 사인 받고 같이 사진을 찍어야 한다며 호들갑을 떨자, 친구가 이상한 듯 쳐다봤다. 아니나 다를까, 예배당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축하의 박수를 보내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음 광고로 넘어갔다. 수상한 업적에 대해 나누는 소규모 컨퍼런스가 열릴 예정이니 관심 있는 사람은 등록하라는 정도의 안내가 이어졌을 뿐이다. 그렇게 예배가 끝났다. 하지만, 나는 난생처음 만나는 ‘노벨상 수상자'를 이대로 보낼 수는 없었다! 직접 만나기 위해 로비를 서성이며 나오길 기다렸다. 그런 내 모습을 보더니, 그 유태인 친구가 의아한 듯 물었다.


“그게 왜 그렇게 중요하니? 그 사람이 상을 받은 것은 축하할 일이지만, 사람들이 더 축하하고 싶은 것은 그 사람의 업적이 인류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기여했다는 거야. 비록 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기여가 있었을 것이고, 노벨상은 상징적으로 그 분야의 업적을 기린다고 생각해”  


순간 머리가 멍했다. 난 그분이 생리의학분야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모른다, 아니 관심도 없다. 오로지 내가 관심을 뒀던 것은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그 사실뿐이었다. 나의 속물근성이 드러나는 것 같아 살짝 창피하기도 했다. 뜻밖의 깨달음을 얻고, 싸인은 포기하고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돌아가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왜 우리는 노벨상을 수상하려는 것일까? 매년 발표 때마다, 후보자들 집 앞에 장사진 치고 있는 미디어들, 수상이 실패되면 쏟아지는 한국 과학/문화 위기론들. 뭔가 우리가 세계에 뒤쳐진 교육을 받고 있고, 인정을 못 받고 있다는 인식이 알게 모르게 생긴 것 같다. 그렇다면 노벨상을 받아야만 가치 있는 연구가 되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노벨상의 진정한 의미를 잊고, ‘어쨌든 노벨상을 수상한 영웅’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그 영웅이 슈퍼맨처럼 등장해, 한국을 그 분야의 세계 최고로 만들어 줄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언젠가 한국에도 노벨 의학상을 타는 사람이 나올 것이다. 단지 시간의 문제라 생각한다. 하지만, 설령 노벨상을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 사회 곳곳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 세계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수고하는 분들의 노력이 있다. 그런 분들의 피, 땀, 눈물이 모여, 하나의 진보와 성과를 만들어내는 것일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할 일은 노벨상을 바라보며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고군분투하는 그분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격려하고 응원하는 것일 것이다. 결국, 유태인들이 노벨상을 많이 타는 이유가, 그들은 상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큰 대의를 향해 큰 걸음으로 나아가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이전글 트럼프 트위터 영구정지, 과연 옳은 선택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