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켈리랜드 Jan 19. 2021

'우리 애는 벌써 글을 읽어요'에 대한 대답

서두를 필요 없다. 그래도 엄마의 마음은 끝없는 되돌이표

4-5살 아이를 둔 엄마들이 모였다. 자연스럽게 대화 주제는 아이들 이야기로 흐른다. 한 엄마가 '우리 아이는 벌써 책을 읽을 줄 알아요'라고 하자, 질세라 다른 엄마는 '우리 아이는 제법 단어도 쓸 줄 알아요' 하는 게 아닌가?!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이제 막 5살이 된 우리 아이는 자기 이름을 겨우 쓸 줄 안다. 그것만으로도 너무나 신기해서 물개 손뼉 치며, 가족들에게 자랑했더랬다. 조그만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연필을 잡고, 종이를 꾹꾹 눌러 이름을 쓰는 게 너무 신기했다. 삐뚤빼뚤하지만, 나에겐 이런 명필이 없다. 그랬던 내가, 엄마들 모임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귀가 쫑긋 세워진다. 벌써 그렇게 빨라?! 우리 애가 너무 늦은 건 아닐까? 내가 유치원에만 맡겨두고 너무 무심했던 건 아닐까?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심란한 마음에, 친정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했더니, 엄마의 대답이 아주 명쾌하다. 

"남들 신경 쓰지 말고, 절대 선행 학습시키지 마라. 내가 그 피해자 아니냐 (쿨럭;;). 아이들 단어 한 개 빨리 아는 것보다, 학교에서 호기심 갖고 선생님에게 집중하는 법을 배우는 게 제일 중요해. 혼자 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줘야 해"


정답을 얻은 듯 명확해졌다. 어쩌면 나 스스로도 이미 답을 알고 있지만, 확인받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애들은 노는 게 당연한 것이라고. 엄마가 해야 할 일은 적당한 때를 기다리는 것일 것이다. 


기억을 돌이켜보면, 아이가 2살쯤 됐을 때, 엄마들의 화제는 아이가 기저귀를 뗐는지 여부다. 배변 훈련에 성공한 엄마들은 기저귀 값을 아낄 수 있어서 좋고, 무한 반복되던 기저귀 갈기에서 벗어난 해방감에 기쁨이 가득하다. 반대로, 아이가 4살이 됐지만, 아직도 기저귀를 찬다는 엄마는 근심이 가득하다. 하지만, 아이를 키워본 엄마들이라면 다 안다. 그때는 세상 진지한 고민이었겠지만, 때가 되면 다 하게 돼있다는 것을. 엄마의 조급함과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려는 마음만 잘 제어한다면 말이다. 달리기 시합도 아닌데, 누가 먼저 기저귀를 떼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한가. 자랑할 일도 아니고, 부끄러워할 일도 아닌 것을. 



마찬가지다. 정규 교육만 잘 받는다면, 읽고 쓰는 것도 결국은 다 하게 돼있다. 수년간의 교육 프로그램이 그렇게 짜여 있고, 증명해 오지 않았던가. 남보다 한 글자 더 빨리 안다고 한들, 인생이 바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오늘도 우리 집 꼬마는 하루 종일 앞집 친구들과 모여 나뭇잎을 줏고 흙을 파며 놀고 있다. 그래, 그렇게 건강하게만 자라 다오 싶다가도, 다음번 엄마들 모임에 나가면, 다시 귀가 팔랑 거린다. '뭐라고?! 벌써 혼자 책을 읽는다고?!' 자식들 앞에서 엄마들의 마음은 어쩔 수 없는 되돌이표인가 보다. 다시 친정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동네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만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