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억의 시작점
지나치는 한 줌 실바람결에 실려, 거리에 나뒹구는 빛바래고 낡은 종이 한 장 같은
유년의 기억 중 하나가 떠오르곤 한다.
아직 두 발로 서서 잘 걷지도 못하는 정도의 어린아이가 그때 있었다.
어느 날 그 아이는 할머니 등에 업혀, 손을 흔들며 길을 떠나는 어느 여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휑한 신작로길위로 무심한 듯 떨어지고 있었던 그날의 햇살만이, 그 어린아이의 기억 저장소 깊은 선반 위에 어딘가에 감추어져, 빛바래고 다닥다닥 낡아버린 질감을 가진 흑백사진 한 장처럼 되어, 오랜 시긴 동안
숨을 쉬고 있었다.
두 발로 서서 걸었을 때쯤,
종이꽃으로 뒤덮인 상여가 나가던 날, 그날도 햇살은 유리빛처럼 투명했고, 상여꾼들이 토해내는 상여소리를
따라 쫓아가는 차 안에서 눈물대신 손을 움켜 잡음으로, 늘 자신의 등을 내게 내주었던 할머니와의 마지막 인사를 했다.
시간이란 마법이 공간의 모습을 바꾸듯,
어느새 그때 그 어린아이가 등을 내주었던 할머니만큼 산 초로의 세월이 되어, 오랜 세월 동안 쳐다보지도
찾아보지도 않던, 먼지 잔뜩 쌓여있는 기억저장소 선반 한 칸에서 커낸 기억 하나를 놓고, 산 아래를 바라보고
있다.
기억이란 사람마다 더러 낯선 손님처럼 찾아오는 것들도 있고, 때로는 가슴속에서 내리는 빗물처럼, 혹은 봄날 햇살같이 화사한 미소 같은 것들도 있을 것이다.
살아온 날들보다 남겨진 시간들이 적은 때에 이르게 되면, 나도 모르게 한두 번쯤은 자신이 지나온 궤적을 되돌아보게 됨은 자연스러운 감정일 것이다.
더러는 후회스럽고 아쉬운 기억들도 자연스럽게 되돌아볼 수 있는 지금, 조금은 생각나는 대로 기억을 정리해보고 싶은 마음이 불현듯 일어났었다.
하두 오랫동안 드나들지 않았던 기억의 방이라, 얼마나 많은 것들을 찾아서 보고 정리를 할 수 있을지는 솔직히 알 수는 없으나, 생각나는 대로, 할머니 등에 업혀서 물 그러 미 바라보던 눈동자 속에 손을 흔들고 떠났던
그 기억을 시작점으로 기억의 여행을 시작해보려 한다.
2023.9.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