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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숲에도 꽃은 핀다(3).

3. 토착민과 유랑민

by 김은집

30년이 넘게 알고 지내고 있는 옛 직장 동료가 있다.

그는 서울 인접도시에서 태어나 현재까지 그곳에 살고 있다.

태어나고 자랐고 그리고 현재까지도 그곳에서만 살고 있으니, 은퇴를 한

지금까지도 여전히 익숙한 사람들과 일상을 나누며 지내고 있을 것이다.


나는 아주 어린 나이

태어난 곳을 떠나, 서울이라는 대도시로 살려고 왔다.

태어난 곳을 고향이라고 한다면, 고향역을 떠나 덜커덩 덜커덩 거리며

기찻길을 달리는 완행열차에 몸을 싣고, 수없이 크고 작은 기차역들을 지나,

한나절을 넘게 달려 도착한, 일곱 살 촌 아이의 눈에 비쳤던 경이로운 도시,

서울이었다.


아스팔트 깔린 길을 처음 보았고, 기차가 아닌 것이 기차처럼 철길 같은 레일 위를

질주하였고, 무수한 사람들이, 수많은 자동차들이 아스팔트와 보도 위를 바쁘게

다니는, 신비로운 도시라는 세계에 첫발을 내딛는 그 순간부터 어쩌면 유랑민의

시작점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태어나서 유년의 시기를 보낸 곳을 떠나온 이래, 어느 특정한 지역 한 곳에서만

살아오지를 못했었던 것 같다. 때로는 사정에 따라, 때로는 불가피한 조건들에 따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늘 사는 곳을 바꾸는 유랑민처럼 떠돌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흑백 사진 한 장 안 남겨져, 이제는 얼굴조차도 기억되지 않는 나의 할머니처럼,

내가 태어난 고향이란 곳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유랑민에게는 고향이란 없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유랑길에 태어나 유랑을 하다, 유랑길에 죽는 것이

그들의 운명일 것이다. 유랑길에 태어난 것도 아니고, 지금 유랑길에 있는 것도 아니니, 언제 죽더라도

유랑민의 죽음은 분명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이 세상에 와서 살아가는 여정이 마치 시간의 바다를 항해하는 돛단배 같은

생각이 가끔씩 드는 까닭은, 그만치 인생이 녹녹지 않는 여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육십 년을 넘게 살았다.

쉽지 않은 세월이었고, 이제 그 숱한 날들에 대해 가끔씩 회상해 보면 만감이 교차하는 부분도 있다.

지나온 많은 순간들이 분명했었던 것보다, 늘 불분명했었던 순간들이 많았고, 지금도 그러할 것이다.

그래도 한 가지 잊히지 않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너무 또렷해지는 것은, 얼굴조차 기억되지 않는

나의 할머니 등에 업혀 있었던 그때의 할머니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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