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의 가치 (1)

같이 살면서 느끼는 가치들

by 새벽 별


08 같이의 가치 (1)

같이 살면서 느끼는 가치들






20대의 일부를 캐나다에서 보낸 탓에 그때의 분위기와 구조를 지향하고 있는 나는, 한국에서도 셰어하우스에 살고 있다. 지금 집은 벌써 두 번째 셰어하우스이고, 캐나다를 합치면 8번째 집인 셈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가족 외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형태는 크게 두 가지, 군대 아니면 기숙사였을 것이다. 근래 3-4년 사이, 한국에서도 소셜 하우징이란 콘셉트로 꽤나 빠르게 새로운 생활 구조가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



지점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혼자 쓰는 방 또는 2명 최대 3명이 한 방을 쓰는 구조인데 다들 각 방을 조금 더 선호한다. 기숙사와는 다르게 정말 아무런 연결고리 없는 청년들이 만나 동고동락을 하게 되고, 공용공간을 나누게 되며 그 안에서 규칙들과 패턴들이 정해지곤 한다. 재미있는 건 세상 어디를 가도 같은 성격은 없다는 것이다. 저 마다 가장 편한 공간, 활동하는 시간대 그리고 화장실 이용 버릇까지 모두 개성이 넘친다.



캐나다와 한국의 셰어하우스를 비교하는 것은 사실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오는 부분이지만, 가장 개인적인 사례가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정보가 될 수 있음에 이렇게 셰어 하고 싶다. 그리고 캐나다로 여정을 떠날 예비 워홀러, 유학생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여기에 잠깐 담아보고 싶다.



나의 첫 번째 공용살이는 홈스테이였고 6개월 정도를 살았다. 포르투갈에서 온 이민자 가족으로 홈스테이 마더는 간호사, 파더는 은퇴한 (구) 호텔리어였다. 그들에게는 두 딸이 있었고 모두 독립해서 한 명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한 명은 아마 자취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두 딸은 일주일에 3번 정도 저녁을 먹으러 본가에 들렀다. 홈스테이 엄마는 어학원 수업 개강 전에 직접 나와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학원 가는 방법을 친절히 알려주셨다. 어떤 방법보다 가장 효율적이고 정확한 시뮬레이션이었다고 생각한다. 겨울엔 정말 오들오들 떨 만큼 집이 추웠지만 그들이 준 배려와 정성에 지금까지도 감사하며 지내고 있다.



이후로는 계속 한국인들과만 살았다. 어학원에서 만난 친구의 친척분께서 영주권자이고 룸 렌트를 부업으로 하고 계셔서 그 집으로 들어갔고 나는 덴이라는 방에서 살았는데, 이 곳은 사실 방이 아니다. 부엌 옆 창고 같은 공간이고 이 곳에서 생활하며 처음으로 서러움도 느껴보고 자다가 팔의 감각도 잃어보았다. 팔 한쪽을 완전히 펴기에도 좁은 공간이며 누가 밤중에 부엌이라도 쓰게 되면 우당탕탕 오디오 사운드로 다음날 컨디션과는 작별해야 한다. 돈을 아끼고 싶은 마음에 선택했던 창고 살이는 두 달 만에 두 손 두 발 다 들고 나오게 만들었다.



조금씩 집과 사람을 보는 기준이 만들어지는 듯했다. 경험보다 값진 것은 없다는 말처럼 타지살이에서 더 확고해지는 것은 '내가 만족하는 생활환경'을 알게 되는 부분이었다. 4번의 이사 끝에 첫 캐나다 타임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딘가 찝찝하고 후회되는 감정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무언가에 쫓기듯 내 머릿속은 한 깃발을 보며 뛰기 시작했다.



-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