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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별 Nov 20. 2020

퇴사하려고 타로를 봤습니다

뜯어말리는 세상에서 스스로를 꺼내다.


퇴사 전까지 몹시 불편했습니다. 아니 사실 마음이 아팠다고 하는 게 맞겠지요.

이미 답은 나와있었는데 그 답을 요리조리 피하며 나를 달래고 있었으니까요.

좁고 어두운 공간에서 도망치던 저는 지칠 대로 지쳤고, 이제 정말 결정의 순간이 왔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한 번만, 아니 조금만 더 오래 버텨볼 수는 없을까 고민하던 중 근거와 정확도는 다소 부족하지만 묘하게 지각되는 타로를 보자는 결론을 내립니다.


이런 점술은 사람의 심신이 약하고 판단력이 흐려질 때 더 의지하고 따르게 됩니다. 절대 답이 아닌 결론을 붙잡고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래, 그건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거였어." "그 사람이랑은 애초에 오래갈 수가 없었구나."처럼요.


 이 날은 이상하게도 출근 길이 설레었습니다. 점심시간에 전화 타로를 예약했거든요.

직접 방문해서 보는 게 가장 좋겠지만 점심시간이 짧은 저에게는 전화 타로라는 게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센세이션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안에서 달리는 시계는 차마 오늘 저녁까지 달리는 게 힘에 부처서라는 생각이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점심시간, 회사를 나와 인근에 조용한 카페를 찾아 나섰습니다. 금융기관과 크고 작은 기업에 많은 곳이라 점심시간에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카페는 없었습니다. 계란을 띄워줄 것 같은 다방 같은 곳을 들어갈까 말까 한참을 망설였지만 이내 포기합니다. 길거리에서 듣기에는 날이 추웠고 소음 등의 리스크가 있을 것 같아 실내를 한참 찾아 헤맸습니다.


Emart24 편의점을 찾았고, 그곳은 다행히도 작지만 몇 개의 데스크와 창가 쪽에 바 테이블이 있었습니다. 바 테이블에 자리 잡고 약속한 12시 30분이 되기를 기다렸습니다. 12시 29분, 30분, 31분이 되어도 전화가 오지 않는 겁니다. 저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전화 타로 예약했는데, 지금 통화 괜찮으실까요?'

'네, 전화 주세요'


신호음이 울렸고 타로 보는 여성분께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오시기 어려운 상황이신 것 같아서 전화로도 가능하다고 말씀드렸어요. 어떤 게 궁금하신가요?"


질문 하나당 만원이고, 저는 이만 원을 선입금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과 또 '네, 아니오'로 끝나지 않는 포괄적인 질문 두 개를 통화 전에 끄적끄적 정리해 두었고요.



드디어, 떨리는 첫 번째 질문을 제시했습니다.  "지금 회사에서 퇴사하고 저 다른 회사를 곧 찾을 수 있을까요?"

돌아오는 대답은, "흠... 이동수가 한번 있는데, 이미 써버렸다고 하네요."


무섭지만 사실이었습니다. 이직한 지 한 달이 채 안된 시점이었거든요. 그래서 더욱 고민이 깊었던 것 같습니다.

"이 회사 나가면 한동안 좀 쉬게 된다고 나와요..."라고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몸에 힘이 살짝 빠졌습니다. 물론 듣고 싶은 얘기가 아니라서도 그렇지만, 예상했던 커리어 공백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를 직면하는 순간이었죠. 걱정으로만 끙끙 안고 밖으로 내뱉지 않았던 내 선택에 대한 진짜 고민거리가 사실 명백해진 것입니다.


타로 보는 여성 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상황도 힘든데, 조금만 버티세요.. 또 내년에 이동수가 보이긴 해요."  아마 3개월 뒤 정규직 전환 때 내가 정규직이 안되고 퇴사를 한다는 얘기인가? 고민에 고민이 더해지는 암흑의 연속이었습니다.


이후, 두 번째 질문을 던졌고 저는 이 역시 만족할만한 대답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사실 만족한 만한 답을 얻지 못했다.라는 곳에 이미 답이 있었습니다.

원하는 것이 정해져 있는데 저는 단지 누군가에게 그게 맞아, 니 선택이 맞아 라는 동조를 원했던 것이고 이렇게 얻은 추가된 옹호로 내 선택의 최후 결과의 책임을 나 외 어떤 이와 나누고 싶어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타로를 보고 회사로 복귀한 뒤 오히려 1-2시간 이후부터는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속으로 계속 이렇게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었고요. '그래 지금은 퇴사해서는 안되나 봐. 일도 금방 또 적응할 거야 비록 내가 지원한 직무가 아니지만... 그리고 여기 회사 조직문화에도 곧 내가 녹아들어 있겠지.. '



그리고 이틀 뒤 '퇴사' 했습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편해진 마음은 마치 거대한 파도가 오기 바로 직전 몹시도 평화롭고 잔잔한 전조증상 같은 거였나 봅니다. 저 깊은 곳에서는 갈라지고 흔들리고 솟아오르는 감정이 커가는 줄 모르고.

퇴사는 일사천리로 이루어졌고, 저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이름 세 글자의 우뚝 솟은 그저 '내가'되었습니다.

다음 회사를 정하지 않고 나가지 말라고 늘 주위 사람들을 설득했던 내가. 기댈 곳이 없으면 무엇보다 스스로가 불안해하는 것을 너무도 잘 아는 내가. 극단의 선택을 한 것이죠.


퇴사를 한 주에는 무엇에 쫓기듯 살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이 들 때까지 아니 잠든 꿈에서 조차 분주하고 정신없고 붕 떠있는 기분에 평소 잘하지 않던 지각과, 카드를 잃어버리는 등 불안함에 정신도 놓고 신경도 예민해졌습니다.


그리고 퇴사 이주 차가 된 지금. 아주 조금씩 여유를 찾아가고 있고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전진해가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이뤄내거나 뚜렷한 계획이 세워진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오늘 나의 하루만큼은 진중하고 진솔하게 사용해보자 그러는 동시에 나를 더 알아가자는 콘셉트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타로카드에서는 저에게 퇴사를 권장하지 않았지만, 선택은 나의 몫이고 그 책임은 나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주체는 나 자신이 되어야 하고 나의 몸과 정신이 이상증세를 보인다면 원인을 찾고 그것을 해결하거나 제거해보자 말하고 싶습니다. 타로를 본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와 반대로 내 선택에 더욱 큰 힘을 실어주었다 믿습니다. 나는 나를 믿기로 합니다.





고민하는 예비 퇴사자분들도 당장 힘들지 않을 거라고 말씀드릴 수 없지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는 더 신속하고 덜 상처 받을 수 있도록 스스로를 위한 선택을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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