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경험 속 증거 찾기

긍정변화 프로젝트 #5.

by 한들


나의 경험을 리-서치하여 변화를 위한 증거를 찾아라


변화의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면, 이제는 여기에 힘을 실어줄 때이다. 목표를 설정해 놓고도 작심삼일이 되는 것은 변화에 대해 표면적으로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떤 물건을 살 때조차 우리는 여러 가지를 알아보고 구매한다. 내가 사용해보지 않은 물건을 사려고 비싼 값을 지불해야 한다고 하면 신중해지기 마련이다. 새 상품에 대한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서 열심히 검색을 해보면서 사도 괜찮다는 증거를 쌓아 나간다.


변화에도 그러한 증거가 필요하다. 내가 꼭 변해야 하는 이유나, 변할 수 있는 능력이 내 안에 있다는 믿음을 주는 구체적인 경험을 찾을 필요가 있다. 이러한 증거가 많이 쌓일수록 변화에 대한 확신이 들 것이다. 또한 변화를 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떠 올릴 수도 있다.


나의 변화에 대한 실마리를 나의 경험 그 자체에서 배우는 것이다. 우선 나에게서 자료를 찾기 위해 과거를 탐색해야 한다. 예전해 살아왔던 삶의 경험이 모두 생생한 자료가 되어 준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이 특별하지 않고 내가 하고자 하는 변화와는 상관이 없게 느껴질 수 있다. 딱히 해 놓은 것이 없고, 오히려 변화를 좌절시키는 일만 일삼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렇다면 아래의 아들러의 말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의미는 상황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그 상황에 어떤 의미를 주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알프레드 아들러 저, 김문성 역, 2021, 아들러 심리학 입문, 스타북스, 31쪽



심리학자인 아들러는 경험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가 중요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지금 하고자 하는 변화의 주제에 맞추어 자신의 과거 경험을 다시 탐색할 필요가 있다. 예전에는 별 볼 일 없는 사소한 경험이라고 생각했지만 변화가 필요한 지금의 시점에서 눈 씻고 다시 보면 새로운 진실이 드러날 수 있다.


이전에 해왔던 방식대로만 생각하면 과거의 습관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과거를 탐색하되 변화의 발목을 잡았던 부정적인 증거를 반박하고 변화에 힘을 줄 수 있는 긍정적인 일을 떠올려 보아야 한다.



지금의 상황에 함몰되어 있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기억 떠올려 보기


지금 어떤 상황이 고민이 되면 문제가 있는 지금에만 집중을 하게 된다. 지금의 상황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자책을 하거나 남 탓을 하곤 한다. 이 순환고리에 갇히면 빠져나가기가 어렵다. 자책과 남 탓을 하면 분노가 올라오고 마음뿐 아니라 몸도 많이 상하게 된다. 어렵지만 방향을 조금만 틀어서 이 상황을 바라볼 수 있는 질문을 던져 볼 필요가 있다.


내 몸이 가장 가볍고 건강했을 때는 언제였는가?


지금 상태를 보면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 쉽지 않다. 과연 나의 몸이 가벼운 때가 있었나… 아주 오래전 기억을 떠올려야 할 것 같다. 아이를 갖고 나서 몸무게가 10kg씩 훅훅 쪘다. 산후조리를 하면서 체중관리를 해야 하는데, 어디 그럴 여유가 있었는가. 코로나로 집콕 생활을 하다 보니 어느새 몸은 축축 늘어지고 무거워지기만 했다.


생각해보면 예전부터 나는 나의 몸에 대해 생각할 때 뚱뚱하고 볼품이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예전 사진을 보면, 예전의 나의 몸은 날씬하고 예뻤다. 그때는 그런 것을 볼 줄 몰랐고 대체로 불만족이 가득하여 나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런 생각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생각에 파묻혀 있다 보면, 언제 내 몸이 건강하고 가벼웠는지 떠올리기가 힘들다. 늘 몸은 무겁고 버거웠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가만히 생각을 해본다.


지금 생활을 하면서 신체가 불편해서 무언가를 못하는 것이 있는가?


몸에 아무런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 불편한 곳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내가 통증이 없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고 있다. 만약 내가 몸의 통증을 느낀다면, 나의 신경은 온통 그곳으로 쏠려 있을 것이다. 머리 한쪽이 아프거나, 피부 한쪽이 쓰라리거나, 치아가 욱신욱신거린다면, 인생의 변화 따위는 집어치우고 통증에서 벗어나고만 싶어 졌을 것이다.


편안하게 숨이 콧속으로 들어가고 나오고 음식을 무리 없이 삼키고 배설하는 나의 몸이 신기하게만 느껴진다. 이 몸도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어딘가 다칠 수도 있고 병이 올 수도 있다. 나이가 들면 기능이 퇴화할 것이고 말이다. 모든 몸의 기능이 원활하게 돌아가는 지금이 가장 편안하고 가벼운 때이다.


내가 항상 움직이지 않고 살아왔던가?
활발히 움직이고 운동했던 적이 없었나?


그래도 예전에 몸에 활력이 많고 피곤함을 덜 느꼈을 때가 있었다. 내가 가장 오래 지속하고 싫증을 내지 않는 운동이 있는데, 바로 걷기이다. 나는 실내에서 하는 운동은 오랫동안 하지 못했다. 헬스장도 다녀보고, 요가나 필라테스도 해보았지만, 금세 그만두었다. 대신 걷는 건 수시로 했다. 걷는 것의 연장선상에서 등산도 꽤 했고 말이다. 그렇게 걷고 나면 활력이 돌고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걷기와 등산에 강점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예전 기억을 더듬어 보니, 나는 걷기와 등산을 꽤 했었다.


증거 #1, 움직이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은 오해였다

대학생 때는 자취를 하던 회기동에서 종로까지 걸어 다닌 적이 있었다. 그때 강남보다는 종로나 광화문으로 놀러 다는 것을 좋아했다. 기분이 가라앉아 있거나 심심할 때면 종로 쪽으로 나갔는데, 어차피 놀러 나가는 거 걸어가 보기로 했다. 지하철로 7 정거장이 되고, 버스로는 30분 넘게 걸리는 거리였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진 않았다. 2시간쯤 걸린 것 같다. 가면서 청량리 시장 구경도 하고, 버스 차창 너머로 스쳐갔던 풍경을 천천히 돌아보며 걸었다. 다리가 아팠지만 그렇게 고생했다는 기억이 없다. 그 뒤로도 심심하면 걸어서 시내에 나가곤 했다.


등산도 꾸준히 해왔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놀랍게도 고등학교 때 특별활동으로 등산부를 선택한 적이 있었다. 특별부 활동을 그리 많이 하진 않았지만, 주변의 산 몇 개를 탔던 기억이 있다. 학교 체육복 입고 친구들이랑 수다 떨다, 노래 부르다, 헉헉 대면서 산을 올랐던 기억이 난다.


대학생 때는 신문사에서 운영하는 대학생 기자단으로 활동했었다. 이때 중년이었던 신문기자 선배들이 등산을 그렇게 좋아했다. 주말이면 시간 많고 쌩쌩한 대학생 애들을 불러서 등산을 가곤 했다. 그 덕에 서울에 있는 산 여러 곳을 알게 되었다. 대학원생 때도 역시 교수님들과 등산을 다녔다. 어른들은 왜 그렇게 산 타는 걸 좋아했는지.


그렇게 따라다니다 보니, 서울의 등산코스가 익숙해져서 나중에는 혼자 다녔다. 토요일 새벽이면 우이동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거기에서 우연히 등산회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매주 함께 산에 올랐다. 일주일에 한 번 하는 등산이었지만, 그때 몸도 꽤 튼튼해지고 살도 많이 빠졌던 것 같다.



다른 삶으로 점프할 수 있었던 때 떠올려 보기


변화를 즐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반기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변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수시로 무언가를 바꾼다. 변화가 힘든 사람은 안정적인 상황을 유지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두 가지 유형 모두 득과 실을 가지고 있다. 수시로 바꾸는 사람은 많은 것을 경험해 볼 순 있지만 축적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기 쉽다. 여러 가지를 하지만 모두 깊이가 없을 수 있다. 안정을 좋아하는 사람은 한 곳에서 오래 있으면서 자리를 인정받고 많은 것을 쌓을 수 있지만, 다채로운 상황을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긴 어렵다.


무엇이 더 좋고 나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의 성향에 맞게 길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현명할 것이다.


가장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변화를 즐기든 그렇지 않든, 살면서 변화를 겪지 않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의지에 의한 것이든 주변 상황에 의해 변하든 어쨌든 변하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내가 겪었던 변화 중에서 괜찮고 좋았던 변화는 어떠했는지 떠올려 보고, 그것을 다시 적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변화를 선사했던 선택은 무엇이었는가?
증거#2, 삶을 돌아보는 100일 글쓰기

결혼하고 얼마 안 돼서 <치유와 코칭의 100일 글쓰기>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했었다. 대학원 과정도 수료한 상태였고 결혼을 했기 때문에, 무언가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야 했던 때였다. 학교에만 있다가, 그 테두리에서 벗어나려고 생각하니 막막함이 몰려왔다. 박사논문을 쓰고 졸업을 해야 했는데, 졸업을 하고 나서 어떻게 해야 할지 용기가 나지 않아 진척이 잘 되지 않았다.


마음부터 다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사이트에 갔다가, 우연히 이 프로그램을 접하게 되었다. 계속 글을 써오긴 했지만,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써 본 적은 없었다. 과연 가능할까. 중간에 여러 일이 발생할 텐데, 지속할 수 있을까... 여러 고민이 앞섰지만, 완주하지 못한다고 해도 도전은 해 보고 싶었다.


이 과정은 글쓰기 기술을 익히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삶 전반을 돌아보는 성격이 강했다. 가족과 지나간 삶을 돌아보며 치유를, 나의 강점과 앞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전망을 하며 코칭을 하는 글쓰기였다.


이 과정에서는 다른 사람이 쓴 글을 꼭 읽어보고 댓글을 달아야 하는 미션이 있었는데, 글 쓰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같은 기수가 11명이어서, 하루에 글 하나 쓰고 무조건 10개의 글을 더 읽어야 했다. 필수로 읽어야 하는 책도 있었고, 중간발표도 있었다. 지금 돌아보니 가벼운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결국 나는 100일 글쓰기를 완주했다. 이 과정에서 함께했던 분들과 친해질 수 있었고, 나를 넘어서 다른 사람의 삶을 깊숙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글 쓰는 몸을 만들고, 내면의 힘을 기르게 되었다. 이 에너지로 이후 박사논문을 쓸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물론 중간에 아기가 생기면서 시간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결국 졸업 논문도 써서 제출했다. 정리 작업은 변화를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 아닌가 싶다.


내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박사논문 수여'를 내놓지 않은 것을 눈여겨볼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 드라마틱한 변화는 석사에서 박사로 바뀌는 것이다.


그런데 타이틀이 바뀌었다고 해서 나의 삶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하던 프로젝트에 계속 참여하고, 하던 강의 하고, 하던 공부를 이어서 했기 때문에, 생활은 여전히 이어졌다. 박사라는 지점을 통과하기 위해 그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지만, 막상 통과해보니 아무것도 없어서 놀라웠다.



노력을 통해 원하는 성과를 이루었던 때 떠올려 보기


사람은 살면서 좌절이나 실패도 하지만, 무언가를 이룬 경험도 한다. 문제는 그러한 성취의 순간을 정신없이 보내버리곤 한다는 것이다.


지금 자신의 주위를 돌아보면 수많은 성취 끝에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집을 구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비를 피할 수 있지? 이불은 어디에서 온 걸까? 입고 있는 옷은 어떻게 구했는가? 오늘 저녁은 어떻게 먹을 수 있는 걸까?


모든 것이 당연하거나 거저 얻게 된 것이 아니고, 어떤 노력의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의식하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중에서도 특별하게 의도를 가지고 무언가를 시도했던 경험이 있는지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여서 성취를 이루어낸 적이 있는가?

증거 #3, 번역서 작업을 끝까지 해내다

내가 번역한 책이 하나 있다. '갈등 종결자'라는 책이다. 대학원 다닐 때 친구와 함께 작업했던 책이다.


갈등 종결자/더들리 위크스/커뮤니케이션북스/2011

맨 처음 번역서를 내겠다고 결심한 것은 책 한 권 분량의 내용을 감당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갈등관리 쪽으로 전공을 하고 있어서 이쪽 내용으로 무언가 작업을 하고 싶었다. 그러다 연구실에서 함께 돌려본 자료 중 '갈등 해결의 8단계 the eight essential steps to conflict resolution'이라는 책에 관심이 갔다. 사례도 많고 내용도 쉬울 것 같아서 도전해 보기로 했다.


막상 시작해 보니, 쉬운 내용도 아니고 번역이란 것이 만만치 않았다. 수업 시간에 원서 읽고 발제문 만드는 수준을 뛰어넘어, 일반 대중에게 읽히도록 글을 만드는 과정이 '장난이 아니었다'. 질적인 측면은 제쳐 놓더라도, 책 한 권 분량의 텍스트를 처리한다는 것 자체가 힘겨웠다. 커다란 산을 옮기는 느낌이었다. 당연했다. 그 이전까지 이렇게 긴 글은 다뤄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얼마의 노력이 들어가는지 알 수 없었다.


결국 출판사와 약속한 기한을 넘기고 말았다. 작업은 자주 중단이 되었고, 오랫동안 밀어 놓고 보지 않은 때도 있었다. 결국에는 이 작업을 그만두지 않고 결국 책으로 냈다. 그때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이 책을 마치기 위해서 습관 하나를 바꾸었다. 점심 먹고 나서 무조건 도서관에 가는 것이었다. 도서관에는 컴퓨터를 쓸 수 있는 공간이 있었는데, 그곳으로 가서 1시간씩 번역 작업을 했다. 나머지 시간에는 보고 싶은 책도 보고 과제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한다고 될까?' 마음속에 의심이 들긴 했지만, 어차피 늘어진 일이었다.


책 한 권은 엄청나게 크게 보였고, 하루 한 시간은 너무 작게 보였다. 워낙 밤새서 과제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졌던 때여서, 이렇게 해서 언제 책 한 권을 다 번역하나 싶었다. 어차피 안 되는 거 마음의 여유를 갖고 조금씩 하자고 마음먹고 '깨작깨작' 했는데, 그게 효과가 있었다.


그 이후 무언가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일을 해야 할 때, 이 경험을 떠올리면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한 동안 이 일을 잊고 있었다. 변화를 해야겠다는 의지를 갖고 조금씩 긍정 프로젝트를 시행해 나가면서, '그래 나에게도 그러한 순간이 있었지'라는 것을 일깨우게 되었다.




이 글을 쓰면서 '내가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나?' 싶었다. 옛날에 했던 작업, 참여했던 프로그램의 결과물을 다시금 들춰보았다. 이렇게 좋은 경험을 잊고 살았다. 그 자리를 과거에 힘들었던 일이나 아쉬웠던 일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주저앉게 되었다.


자꾸 자신을 일깨우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의 좋은 경험에 자꾸 빛을 비추어야 한다. 나쁜 경험에 자꾸 함몰되면 화가 나고 침체되기 쉽다. 세상이 자꾸 그런 경험을 근거해 해석된다.


나빴던 것을 좋은 것으로 바꾸거나, 힘들었던 것을 부정하고 없었던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다만 좋았던 것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이고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살펴보는데 시간을 가지면 원하는 삶의 방향으로 변해갈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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