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빈지한 살림러가 아니었을까?
조금은 엉뚱할지 모르겠지만, 글쓰기에 대한 내용으로 시작을 해본다.
지금도 그렇지만, 글 쓰는 게 힘들어서 고민을 많이 했었다. 잘 쓰는 것은 고사하고 일정량을 채우는 것조차 힘들어서 헉헉거리며 겨우겨우 지탱해 나갔다. 작품성 있는 글을 창작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읽은 것을 토대로 요약하고 생각을 정리하여 글로 내뱉는 작업만으로도 글쓰기는 꽤나 힘들었다.
그래서 ‘무언가 글 쓰는 요령이 따로 있지 않을까?’, ‘글을 쉽게 쓸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궁금해졌다. 이 요령만 터득하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것만 같았다. 그런 와중에 이런 제목의 책을 마주하고선 ‘이거다!’ 싶었다. 책의 제목은 무려 “How to write a lot 많이 쓰는 방법”이었다. 내가 딱 원하는 것이었다. 난 잘 쓸 생각이 없다. 우선 양을 채워야 한다. 고 퀄리티의 글을 쓰는 것보다, 다작하는 게 나의 목표다.
원서였지만, 굉장히 얇은 책이었기에 얼른 책장을 열어 보았다. 심리학 전공 교수가 쓴 책이어서 더 신빙성이 있어 보였다. 이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끈 단어는 ‘binge writer’라는 단어였다. 빈지binge는 폭음, 폭식할 때 ‘폭’에 해당하는 단어였다. 그러니까 빈지 라이터 binge writer는 비정기적으로 한꺼번에 몰아서 쓰는 사람을 말한다.
엥? 원래 글은 과제가 생기거나 쓸 일이 있을 때 쓰는 거 아닌가? 어떤 격한 감정이 올라오거나 분위기 좋은 곳에 가면, 막 글이 써지는 거 아닌가?
이런 나의 생각과는 반대로, 저자는 이러한 ‘몰아 쓰기’가 다작을 하는데 해롭다고 했다. 글은 한꺼번에 몰아 쓰는 것이 아니고, 매일 조금씩 일정량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영감을 받는 날이든 아니든, 날씨가 좋든 그렇지 않든, 마감이 닥치든 아니든 상관없이 일정하게 써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자는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대충 씻고 8시가 되면 무조건 정해진 자리에 가서 일정량의 글을 썼다고 한다. 글의 종류는 상관이 없었다. 책을 위한 원고를 써도 되고, 학과 일과 관련된 보고서나 프로젝트 제안서 같은 것도 괜찮다고 했다. 쓴다는 건 꼭 타자로 글자를 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글 쓰기 위해 자료를 조사하고 정리하는 것도 포함. 그냥 정해진 시간 동안 무언가 쓰기 위한 활동을 하는 게 중요했다.
저자는 연구자답게 이걸 엑셀에 날짜별로 정리해 놨다. 몇 월 며칠 분량을 얼만 썼는지 기록했다. 날마다 쓰는 글자 수가 달랐다. 그렇지만 정해진 시간만은 지켰다. 어떤 날은 필을 받아서 더 쓰고 싶기도 했지만, 일부러 더 쓰지 않았다고 했다. 리듬이 망가지면 다음 날 또 쓰기 어려워지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꾸준히 일 년을 보냈더니, 단행본도 완성되고 프로젝트도 성공적으로 해냈다고. 중간에 번아웃 같은 게 오지 않아 끊임없이 작업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글을 쓰는 데 중요한 건 단 하나, 쓰는 시간을 꼭 내서 잘 지키는 것이다.
이런 단순한 게 비결이라니~! 이런 견해는 나의 고정관념을 한 번에 부숴버렸다. 진짜인가 싶어서, 실제로 이러한 방법을 이용해 보았다. 점심을 먹으면 습관처럼 도서관에 들러 1시간 정도 번역을 했다. 할까 말까 고민하지 않고, 그냥 반복적으로 했더니 정말 단행본이 나왔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단순하고도 쉬운 이 노하우를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번역서 프로젝트가 끝나자마자 다시 옛날로 돌아가 ‘빈지’한 삶을 살았다.
가계부를 쓰면서 이 책의 내용이 다시금 떠오른 것은 이 때문이다. ‘매일 시간을 정해서 쓴다’는 단순한 행위가 유용한 결과를 도출한다는 사실을 한동안 잊고 있었던 것이다.
가계부 쓰는 것을 번번이 그만두게 되고, ‘될 대로 돼라’하면서 돈을 써 버리고, 그러다 문득 불안해지는 과정을 반복했던 것이 바로 ‘빈지’한 습성 때문이 아니었나. 평소에는 돈에 대해 관심을 쏟지 않다가 갑자기 생각이 나면 마구 돈걱정을 하고, 무언가 대책을 세운답시고 주식을 하고 통장을 만들고 그러다가 다 깨버리는 이 어이없는 상황을 반복하는 게 말이다.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지금 와서 보니 참으로 건강해 보이지 않는다.
이러니 돈 걱정이 끊이지 않고 마음이 불안한 게 당연하다. 이건 돈 걱정의 문제가 아니고, 생활이 안정되지 않는 문제로까지 이어진다.
그래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때그때 원하는 것이 생기면 있는 돈을 써서 충족시키며 어느 정도 마음을 달랬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곧 약발이 떨어져서, 또 다른 욕망이 솟아오르고 그걸 진정시키기 위해서 또 돈을 써야 했다.
물론 그것이 큰 금액은 아니어서 눈에 띄거나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그렇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좋지 않은 패턴이 있다는 게 분명해진다. 이건 알코올 의존증 증상과 유사하다. 알코올이 돈으로 바뀐 것일 뿐. 혹시 내가 돈 의존증에 걸려 허우적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렇게 극단적으로까지 몰고 가지 않더라도, 돈에 있어서 참으로 무능하고 훈련되지 못한 상태라는 건 확실하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든다. 글 쓰는 건 특별한 노력을 들여서 배우고 연습한다. 요새 책 쓰기 코칭하나 받는데 몇 백씩 한다. 대학원에 다녀도 꽤 많은 시간과 돈이 깨진다. 그런데 가정 살림을 하는 걸 배우는 데는 아무런 투자를 하지 않는다. 집안의 돈을 다루고 절제하는 걸 배우는 데도 그만한 노력이 필요한 거 아닐까? 그런 노력을 들이지도 않고 그저 못하는 게 이상한 거라고 말해선 안 되는 거 아닌가?
이런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가계부를 쓰는 건 가정주부가 하는 살림의 영역이고, 이건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란 생각이 만연해 있다. 그러니 나도 따로 배우거나 훈련하지 않아도 당연히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렇지 않다는 걸 십 년 결혼생활을 겪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가계부를 쓴다는 건 ‘빈지’한 생활 습관에서 벗어나는 걸 배우는 과정이다. 그러니 단순히 가계부를 샀다고 해서, 혹은 작성법을 배운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가계부가 없어서, 혹은 쓰는 법을 몰라서 가계부를 못 쓰는 게 아니란 건 다들 알 것이다.
특히 돈은 사람의 근본적인 욕구와 욕망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대충 해서는 조절이 잘 안 된다. 의식적으로 노력을 기울여서 바꿔나가야만 한다. 그렇다고 해서 심오한 철학을 갖추거나 특별한 기술을 배워야 하는 건 아니다. 다만 일정한 시간을 내서 주기적으로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이런 복잡한 돈과의 관계가 생각보다 빨리 정리된다.
글쓰기도 가계부도 하다 보면 늘게 되고, 바람직한 결과도 나오게 된다. 게다가 이렇게 주기적으로 글쓰기와 가계부 쓰기를 하다 보면, 다른 생활의 영역에서도 빈지한 습관이 잦아든다. 폭식과 폭음을 하지 않게 되고, 과도하게 미디어를 소비하지 않게 된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