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의 자리는 어디일까?
도시로 돌아왔다. 도시 집 근처 초등학교로 큰 아이를 전학시켰다. 작은 아이를 단지 안에 있는 어린이집에 등록시켰다. 전학 수속을 밟기 전 날, 마음속에는 심한 내전이 벌어졌다. 다시 도시에 오는 것이 맞을까? 이 선택이 맞는 것일까?
나는 참, 내 마음을 잘 모른다. 다른 사람의 마음도 잘 모르지만, 내 마음에는 정말 둔감하다. 내가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하게 결론을 내리는 것이 힘들다. 시골과 도시의 삶을 놓고 대차대조표를 작성해 보았지만 쓸모가 없었다. 무엇이 더 좋고 나쁜지 드러나지 않았다. 확실하게 더 좋고 나쁜 것이 없었다. 두 가지 삶이 모두 가능했고, 내 마음 끌리는 대로 하면 되었다.
주어진 상황이나 조건에 맞춰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익숙하고 편하다. 내 맘대로 살고 싶다고 하면서, 막상 선택의 기회가 주어지면 머릿속이 하얘진다.
짜장 먹을래, 짬뽕 먹을래? 탕수육 소스 찍어 먹을래, 부어 먹을래? 보쌈 먹을래, 족발 먹을래? 감자탕 먹을래, 순댓국 먹을래?
선택하기 어렵다. 그럴 때 남편에게 선택권을 넘겨 버린다. 그러면 남편은 두 개를 다 시켜서 반반씩 나눠 먹자고 한다.
시골에 살래, 도시에 살래?
이 질문에도 반반이 가능하면 좋겠다. 요즘엔 5도 2촌을 하는 사람이 많다. 도시에서 주중을 보내고, 주말이 되면 촌으로 떠나는 것이다. 도시에서는 아파트에 살며 돈벌이와 교육을 해결하고, 촌에서는 텃밭을 만들어 농사를 짓거나 주변 자연환경을 만끽한다. 나도 5도 2촌을 해야 하는 것일까?
나도 내 마음을 모르기 때문에 우선 다시 도시로 돌아와 보기로 했다. 시골에 살다 다시 돌아온 도시의 삶은 어떨까? 시골에 가기 전의 삶과 다르지 않을까? 잘 모르는 일이었다. 내 마음을 예측해 보기 힘들었기에, 몸소 체험을 해보고 그 상황에서 마음을 대어 보기로 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도시로 다시 돌아와 생활해 보면서 직접 몸으로 그 차이를 느껴보는 것이 선택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큰 아이는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 초등학교에 입학했기 때문에 도시에서 제대로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찔끔찔끔 갔기 때문에 재미를 느끼다가 말았던 것이다. 시골 학교에 가서도 도시의 학교를 그리워했다.
작은 아이는 시골에 친구가 없었다. 같은 나이 또래의 아이가 없어서 늘 혼자 있어야 했다. 거기엔 어린이집도 없어서 한 해 동안 같은 나이 또래 아이들과 어울릴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심심해하고 하루 종일 핸드폰을 보고 싶어 했다. 집도 불편해했고 말이다.
시골에 가면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어놀고 신나 한다는데, 생각보다 그렇지 않았다. 도시를 그리워하고 가고 싶어 했다. 집 앞에 있었던 편의점도, 수세식 화장실과 대형 티브이도 그리워했다. 그런 것들이 아이들에게는 태어나자마자 주어진 고향 같은 환경일 테니 그럴 만도 하다.
시골에서 한 번 살아봤으니, 도시에서의 생활이 어떤지 다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원래 주어졌던 도시 생활이 더 좋은지, 새롭게 알게 된 시골 생활이 더 좋은지…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주인공 혜원은 도시 생활에 지쳐 고향 시골집으로 내려온다. 그곳에서 한 해를 보내고 다시 서울로 올라간다. 그러곤 다시 짐을 싸 들고 시골로 돌아온다. 혜원이는 다시 돌아올 것이면서 왜 다시 서울에 올라갔을까? 아마도 서울이라는 환경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다시금 확인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도시 집으로 돌아와서, 브런치를 개설하고 시골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산에 있었을 때는 글을 쓸 시간과 여유가 없었다. 왜인지 하루하루 보내기에 바빴다. 글을 쓸 시간에 더 많은 것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글 쓸 시간에 불 피우고, 나무 자르고, 잡초 뽑고, 하늘을 쳐다보았던 것이다. 시골의 삶이 실시간으로 스쳐 지나갔기에,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얼떨떨했다.
글을 쓰면서 산에서 있었던 일을 돌아보았다. 일주일 내내 산에서 겪었던 일을 되살려보고, 그 일에 대해 생각했다. 몸은 도시에 있지만 머릿속은 산에 있었던 것이다. 도시로 돌아왔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점차 글을 써 나가면서, 시골에서 무엇을 했고 그것이 어떤 의미였는지 되새겨 볼 수 있었다. 그때는 이해되지 않았던 것들이 이해되기도 했고, 좋은 줄 몰랐던 것이 좋았던 것이었음을 깨닫기도 한 시간이었다. 특히 사진으로 보면 왜 이렇게 다 좋아 보이는지 모르겠다.
동시에 도시의 편안함 삶도 잘 누리고 있다. 부엽토 걱정 없이 화장실도 마음껏 쓰고, 샤워하는 것도 편하다. 소파에 누워 있으면 몸이 착 달라붙는 것 같다. 인터넷도 팡팡 터지고, 큰 티브이에서 영화도 보고 예능 프로그램도 본다. 조금만 나가면 단지와 공원에 정원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고, 걸어서 도서관에 갈 수 있다. 도서관은 한적하고 깨끗하고 편리하다. 집 앞에 슈퍼에서 간단하게 야채도 바로바로 사 올 수 있고, 새벽 배송도 놀랍다. 스타벅스에서 카페라테와 베이컨 치즈토스트를 먹으면서 글을 쓰는 재미도 쏠쏠하다. 아이들이 매일매일 아빠 얼굴을 볼 수 있는 것도 좋고 말이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
너무 낙천적인 성격이 문제다. 이것이 우유부단의 근원이기도 하고.
그럼에도 ‘어디에 살까?’ 아직도 고민 중이다. 나의 삶의 자리는 어디일까? 나는 어디에서 살다 가야 하는 것일까? 아이들은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자라는 것이 좋은 것일까? 정답이 없기에 고민이 길어진다.
공부 모임에서 우연히 알게 된 분께서 귀농귀촌에 대해 알리는 운동을 하신다고 한다. 여기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열 명 중 한 명 정도만 귀촌을 결심하고 나머지는 살던 곳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몇 달 동안이나 교육을 진행했는데 막상 결과가 좋지 않아 실망이 될 때가 많다고 하셨다. 내 입장에서는 그 학생들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아무리 교육을 받아도 쉽게 결정하기 힘든 일이다.
우선은 반반의 삶을 선택했다. 올해에는 마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로 해서, 당분간은 마을에 왔다 갔다 할 예정이다. 그러면서 마을에 계신 분들과 대화를 더 나눠볼 생각이다. 마을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서 예전의 모습도 천천히 살펴보고 있다. 어떤 마음으로 시골에 내려가게 되었고, 그곳의 생활을 지속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오늘을 살아가고 있으며, 앞으로의 미래를 그리고 있는지 조금은 더 깊게 알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