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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구의 삶 Oct 11. 2022

착한 팀장은 해롭다.

팀장인데 팀원은 없습니다 - 6

"우리 회사에 팀장으로 스카웃하고 싶어요."

"팀장요?"

"날개를 펼칠 기회가 될 거예요."


몇 년 전, C는 집 소파에 누워 있다 전화를 받았다. 이제 막 퇴사한 회사에서 알았던 업체의 대표였다. 대체 뭘 보고 팀장으로 고용하려는 걸까? 의문은 잠시, 퇴사 후 생활은 생각보다 후련하지 않았던 터라 잘 됐다 싶었다. 30대를 코앞에 두고 있으니 전환점이 필요하기도 했던 타이밍이었다.


성실함 하나는 자신 있던 C는 '팀장'이라는 것도 열심히 해내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제안을 받아들였다. 포지션이 달라지면 업무의 영역도 달라진다는 걸 인지하지 못한 채로.


몇 주 후 새롭게 출근한 회사에는 놀랍게도 팀장이 1명 더 있었다.

그녀는 기획팀장이었고, C에게는 총괄팀장이라는 새로운 직함이 주어졌다. 게다가 팀원은 2명이었는데, 얼마 가지 않아 1명이 퇴사를 하는 바람에, 팀원보다 팀장이 많은 웃픈 상황이 되어버렸다. 


팀원 1명에 팀장이 2명이라니!

직함이 넘쳐나는 이 상황이 당황스러웠지만, 당시 열정이 넘쳤던 C는 총책임자의 역할을 해주길 원했던 대표의 제안이 나쁘지 않았다.  

Photo by @lingchor on unsplash


"팀장님!"

팀원이 부르면 두 팀장이 동시에 뿅 하고 고개를 드는 민망한 상황이 자주 벌어졌기에, 팀장을 호칭할 땐 꼭 성을 함께 부르는 게 무언의 원칙이었다. 


문제는 여기저기서 C를 팀장님이라 불렀지만 정작 C는 '팀장'의 역할이 뭔지 몰랐다는 데 있었다. 성실히 했고, 그렇게 한 업무의 결과는 늘 좋았기에 성실함의 힘을 믿었던 C였다. 팀장이 되어서는 팀원보다 '더욱더' 성실하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마치 모두의 해결사라도 된 듯 팀원이 어려워하는 일이 생기면 대신 처리해줬고, 누군가 실수를 하면 괜찮다며 어깨를 토닥였다. 당연하게 혼자서 고군분투하는 시간이 길어졌고 그럴수록 C는 밥 먹듯 야근만 했다. 몇 개월간 성실함에 매몰된 C를 꺼내 준 건 어느 아티클의 헤드라인이었다. 


'팀장이라면 하지 말아야 할 것들'

그 기사에 따르자면, 팀장으로서 C의 점수는 0점이었다. 그렇다면 0점 팀장 C는 왜 종종 착한 팀장님이라고 불리곤 했을까?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에 쓴소리를 잘 못하는 C. 외부에서 요청해오는 업무는 대부분 받아들였고, 팀원이 어려워하면 그 업무를 떠맡으면서 결론적으론 팀원들의 역량 발휘 기회를 빼앗는 꼴이 되곤 했다. 냉철한 피드백이 필요한 순간마저 따뜻한 격려로 답했으니, 팀장으로서는 최악일지언정 사람으로서는 자칫 '좋은 사람'으로 보일 수 있는 행동들이기도 했다. 


C는 그런 자신에게 '착하다'는 말 말고는 달리 표현할 말도 없었겠다 싶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착한 팀장'은 곧 '최악의 팀장'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팀의 성장에 해가 될 수도 있겠다고 말이다.





[팀장인데 팀원은 없습니다]

1화) 팀장인데 팀원은 없습니다

2화) 6년째 연봉 동결이라고요?

3화) 고맙다는 말이 불편할 때

4화) 90년생 그들과 80년생 C는 달랐다.

5화) 30대 중반, 가난이 훅 들어왔다. 

6화) 착한 팀장은 해롭다.

7화) 돈 대신 성실함을 타고 난 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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