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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fu Oct 25. 2020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심리상담

중학생인데도 아직 이불에 실수를 하는 아이


 나는 평범하게 사는 것을 항상 바랬다.

평범한 게 무엇인지, 그렇게 사는 게 나와 맞을지, 행복할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어느 화요일, 심리상담 중


두부: 선생님 저는 정말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성공한 삶까지는 바라지도 않아요. 남들 사는 만큼만 살고 싶어요.


주치의: 평범한 게 먼데요?


두부: 남들처럼 사는 거요.


주치의: 두부 씨 인생인데 어떻게 남들처럼 살아요? 똑같을 순 없어요. 두부 씨.


두부: 그러네요


주치의: 평범한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보죠.


두부: 안정적인 직장, 적당한 수익, 결혼 후 아이?


주치의: 그걸 원하시는 거예요?


두부: 저는 행복의 기준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어요.

         사실 이 평범함의 기준도 아빠가 강요하는 삶이에요.


우리 집에서 나는 천덕꾸러기다. 친가 쪽은 죄다 공무원이다.

우리 아빠와 친오빠, 심지어 새언니까지 공무원이다.


내가 제주도로 이주하고 외식업을 하는 것,

유럽 배낭여행으로 1달 이상 돌아다닌 것,

다수의 해외여행과 내일로 기차 여행.

공휴일에도 일하러 가는 딸


공무원과는 다른 일상들은 아버지의 이해를 구할 수 없었다. 항상 못마땅하셨다.


명절에 친할머니 댁에 가기라도 하면 아빠가 10명은 더 늘어난다.

참고로 우리 아버지는 7남 1녀로 매번 명절에 모이면 30명이 넘는다.


‘제주도에서 네가 혼자 무엇한다고 거기까지 갔냐’

‘두부도 안정적인 직장 들어가서 일해야 할 텐데’

‘나이 생각해, 늙으면 설거지밖에 더하니’

‘얼른 시집가, 고모가 학교 행정직 하는 공무원 맞선 주선해줄까?’


‘그 애가 결정한 일이니까 이유가 있을 거예요, 우리 그 아이의 결정을 믿고 지켜봐요’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자란 아이가 있기는 할까?


항상 부모님과의 대화에는 유리 벽이 있었다. 본인이 생각하는 삶을 강요하셨다.

아버지와는 대화로 안된다는 것을 확신하고 어느 순간, 나는 몸으로 나의 의사를 표현하고 있었다.


섭식장애였다.

‘아빠가 내 체중까지는 간섭하지 못해’

‘내가 토하는 것까지 못 막아’


‘미운 받을 용기’란 책으로 유명한 심리학자 아들러는


배설, 폐, 심장, 위, 생식 기관 등의 기능 장애로 자신의 의사를 신체적 증상으로 표현한다고 한다.


중학생이지만 밤마다 이불에 실수하는 아이.

의사는 정상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복통을 호소하는 아이.

대변해야 하는 데 참는 아이.


사랑한다면 길을 제시해주기보다 믿어주는 게 더 중요하다.

안전한 길을 제시해서 부모의 꿈을 자식에게 투영하지 말자.


부모고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지만 소중한 마음을 표현하기 서투르다.

그래도 목숨만은 놓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대화로는 안되니까.

자신의 몸을 해하거나 아프게 해서 나의 존재를 알리려 했다.

이제 ‘믿어줘’라고 이야기할 때인 것 같다.

부모에게 강요받은 삶의 형태보다 나 자신이 어떻게 하면 행복할지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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