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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fu Oct 31. 2020

공황장애인의 강제 여행기

1일 차


  전날부터 비행기를 탈 생각에 얕은 잠을 잤다. 가기 싫은 마음에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하지만 안 간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아버지의 권력적 말에, 나는 가족의 역할을 해야만 했다.


심리 상담을 통해 나는 덮어두었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꺼냈다.

그 원망을 마주하니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랐다.


사람이 아무리 화가 나도 사람 얼굴을 멍이 들도록 밝아?’

뻔뻔하게 외도녀를 나의 보험 설계사로 소개할 수가 있어?’

본인이 설정한 가족의 역할을 그만 강요했으면 좋겠어.’

말을 듣지 않으면 뱉어대는 욕도 듣기 싫어’


아버지와 나의 생일인 오늘,

아직도 어떤 얼굴로 아버지를 마주해야 할지 모르겠다.


비행기를 타기 전, 심장이 입 밖으로 나오는 것만 같았다.

비행기에 대한 공포증을 완화하기 위해 주치의는 미리 약을 복용하길 권했다.

평소보다 높은 함량의 알프람정 0.4mg을 처방해주었다.


자리는 비행기 4a를 선택했다. 앞에 사람이 없었다.

사람이 많고 공간이 좁으면 더 힘들걸 알기에 선택한 자리었다.

창문으로 사람들이 타려고 줄을 서 있는 것만 보아도 힘들었다.

점점 공간이 사람으로 가득 차고 있었다. 비행기 탄 지 5분 만에 나가고 싶었다.

공간이 나를 조여 오는 것 같았다. 그동안 미뤄둔 ‘아몬드’ 책에 집중했지만 같은 페이지만

계속 읽고 있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이 차다. 마스크를 벗어버리고 싶다.

옆에 있는 아저씨는 코를 곤다.

같은 공간에서 이렇게나 다른 행동을 보이다니 덕분에 웃었다.

그는 우렁찬 코골이 소리에 번번이 놀라 깨기를 반복했다.



약효는 점점 나타났고 슬슬 안정되었다. 하지만 내리고 싶은 마음은 커져만 갔다.

참아야 한다는 생각에 손을 꼭 움켜쥐었다.


공항 리무진을 타기 전, 초초한 마음에 커피를 한 잔 마셨다.

제주도보다 추운 날씨에 처음으로 먹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다.


주치의는 말했다.

두부 씨 나체로 나뭇가지 하나 들고 호랑이굴로 들어가는 꼴이에요.’

나는 왜 이렇게 집에 가기 싫은 지 나 자신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주치의는 상황을 듣고 당연하다며 나를 응원해주었다.


점점 추워지는 겨울을 위해 꺼낸 포근한 이불이 있는 나의 침대로 돌아가고 싶다.

집에 가는 데 집에 가고 싶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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