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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서영 Mar 11. 2024

바람부는 저녁에


오늘 저녁, 조금 전에
서면을 나갔다 왔는데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아파트 정문 앞에서 마을버스를 기다리는데
머리카락이 정신없이 휘날리고
낙엽들이 사방으로 구르고 날아다녔다

시간 맞춰서 나왔는데도
마을버스는 이미 지나갔는지
아니면 이번 타임은 건너뛴건지
오지를 않고

휘몰아치는 바람 속에 서 있는데
경비아저씨가 부른다
무슨 일인가 싶어 갔더니
버스가 오려면 몇 분 더 있어야 할 것 같으니
경비실 안에 있다가 버스가 오면 나가라고 한다

나는 웃으며 고맙다고 경비실로 들어갔다
그러면서 예전 생각이 떠올라
격세지감을 느끼며 속으로 나혼자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오래 전 옛날
그 때도 추운 겨울이었다
그 날도 추운 바람 속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경비아저씨가 불러서는
추운데 들어와서 기다리라고 했다
(지금의 아저씨가 아닌 다른 아저씨였다)

그런데 그 때의 나는
경비아저씨와 둘이 경비실에 있는다는 것이
심히 부자연스럽고 불편하게 여겨져서
그 호의를 거절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것이 호의인 줄은 알면서도
거북스러운 감정이 앞서서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 호의와 거북스러움 사이의 갈등때문에
마음까지도 굉장히 경직되어 버렸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 경비아저씨는
그 후로도 변함없이 친절하게 대해주었고
덕분에 나의 경직된 마음도 서서히
풀어져 갔던 것이다

생각하면 어이없고 우스운 일이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직도 그런 경향이 남아있다
소위 내외하는 성향이 잘 없어지지가 않아
이 나이에도 어려움을 느낄 때가 많다

그래서 오늘 경비아저씨의 호의에
웃으며 경비실로 따라들어간 내가
우숩기도 하고
역시 나이가 드니 사람도 조금 편해졌구나 하는
격세지감을 느꼈던 것이다

.....
.....

오늘의
휘몰아치는 바람은
세월의 격정과도 같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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