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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서영 Mar 11. 2024

또래들




남편이 요즘 한 번 씩 하는 소리가 있다
"요즘 지나가다 거울을 보면 깜짝 놀래~"

집에서 세수하고 거울을 볼 때는 별로
실감을 못하다가 
밖에서 엘리베이터 안이라든지
자기 모습이 비춰지는 곳에서 보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 늙어보인다는 것이다

나역시 같은 경험을 하고 있는 터라
같이 웃고 말지만
사실 아무리 늙어도 마음은 청춘이라고
나 혼자서는 내가 늙었다는 것이
잘 실감이 안나서 오히려 당혹스러울 때가 많다

그래서 어쨌든 그렇게 나와 타인을 보는 눈이 
달라진 것이 얼마 전부터 이다
얼마 전까지는 나이 지긋해 보이는 사람을 보면
아직도 내가 공경해야 할 어른 정도로 인식했다면

지금은 어지간히 머리가 하얗고
얼굴이 주름으로 쳐지고 
누가봐도 늙은 사람이 분명하면

아~ 저 사람도 내 또래겠거니~
하는 동질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렇게 늙을만큼 살아오는 동안
우리가 겪어 온 삶과 역사와
시대가 바뀌면서 변질되어버린 
우리의 정서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현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우리가 지키고 싶었던 가치관도
우리가 지향했던 삶의 목표도
이제는 빛바랜 영화의 낡은 세트장에서나
볼 수 있을까

많은 것을 열정적으로 추구해 왔지만
그만큼 많은 것을 상실한 세대

어쩌면 그것은 우리 세대만의 경험이 아니라
모든 늙어가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맞이하게 되는
허무라는 관념과 맞닿아 있을지도 모른다

세상은 우리가 마음먹은대로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굴러가는대로 우리는 살아갈 뿐이라는 것을
모든 힘을 소진한 다음에야 깨닫게 되는 

그래서 그것을 깨닫게 된 후에야
조금은 현명해지는
그런 늙은이가 되는 게 아닐지

마치 세상을 씹어 먹을듯이 겁없던 청춘에서
이제는 세상 밖으로 한 발 물러서서
세상과 나를 관조해 보는 늙은 사람이 되는 것도
과히 나쁘지 않은듯 하다

또래의 모습들이 
현재 잘 나가는 모습이든
별 볼 일 없이 살아가든
모두 뜨겁게 한 세상 살아온 사람들이란 생각에
그 늙은 모습에 정이 간다

아직은 많이 남은 인생
무엇이든 과하지 않게 살아가면서
그래도 가슴에 간직하고 싶은 테마 하나쯤
있으면 좋을듯 하고
주변에 무언가 남겨줄 수 있는
애틋한 마음을 채워나갈수 있으면
좋으련만
세상사 모두 여의치 않으니
욕심은 금물이다

사실 늙었다고 하기엔 뭔지 억울한 
그렇지만 결코 젊었다 할 수는 없는
세대간의 경계에 선 듯한 우리 또래들
어쨌거나 오늘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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