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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학준 Jul 10. 2023

거짓된 사랑의 여권

23.07.09. 질 미모니, <라빠르망>

* 영화 <라빠르망>의 스포일러가 들어있습니다.



얼마 전 아내가 로맨스 영화에는 관심이 없냐고 했다. 아무래도 그런 편이라고 했다. 하지만 같이 보고 싶은 게 있다면 얼마든지 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어제 <라빠르망>을 보자고 했다.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겠으나 로맨스 영화니까 적당히 아름답겠거니 하고 한 손엔 조너선 로젠봄의 <에센셜 시네마>를 펼쳐 놓고 있었다. (직전에 본 영화가 클로드 샤브롤의 <의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줄 정도를 읽고 나서 나는 손에 책을 들고 있다는 사실을 잊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아내에게 물었다. "이걸 왜 그렇게 좋아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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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막스(뱅상 카셀)가 보석상에서 반지를 고르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가게 주인은 막스에게 하나씩 반지를 보여주며 특징을 설명한다. 하나는 기품있고 수수하나 비범한 매력을 가졌고, 다른 하나는 화려하고 날카로와 자칫 다칠 수 있는 '관상용' 제품이며, 마지막은 소박하지만 불빛에 비추면 별처럼 타오르는 독특한 매력이 있는 녀석이라며. 막스는 답한다. "세 반지 모두 마음에 드네요. 나중에 연락드릴게요." 그는 골랐어야 했다. 한 여인에게 세 개의 반지를 동시에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여기서 영화는 이미 결론이 났다.


어떤 결론? 막스는 끝내 우유부단하리라는 것. 막스에게는 세 명의 여인이 등장한다. 한 때 미친듯이 사랑했으나 갑작스럽게 연락이 끊고 사라진 전 연인 리사(모니카 벨루치), 친구 뤼시앵(장 필리프 에코페)의 연인이자 자신을 오랫동안 짝사랑해왔던 리사의 친구 알리스(로만느 보링거), 그리고 곧 결혼을 앞둔 현재의 약혼녀 뮈리엘(상드린 키베를랭). 그는 리사와 재회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고, 알리스에게 배반의 고통을 안겨주기 위해 뮈리엘을 이용한다. 어느 누구에게도 그는 완전히 속하지 않는다.


영화는 1996년의 시대상 아래에서만 가능한 영화다. 편지와 전화 이외에 소통할 수단이 없었던 그 때엔 가능했던, 만남과 헤어짐의 몸짓들로 가득하다. 서로가 서로의 의중을 온당히 확인할 방법은 아주 가느다란 선들로만 이어져 있었기에, 한 사람의 의도만으로도 끊기고 뒤엉킨다. (오늘 그러한 화면을 만들기 위해서는 재난 상황을 가정해야 할 것이다) 또한 그 희미한 소통의 가능성은 그만큼 절박한 몸짓으로 이어지는데, 그로 인해 오늘날이라면 범죄로 치부될 행위들에도 당위성이 부여된다. (정당하다는 것은 오로지 캐릭터의 '동기'로서만 그렇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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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관계는 알리스의 질투심으로 인해 무너져내린다. 하지만 알리스가 욕망한 것이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알리스가 아파트 창문 너머로 바라본 것은 리자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장면들에서 알리스의 시선은 막스에게로 이동하는데, 이는 별로 진실되지 않다. 리자와 막스가 헤어진 이후에도 알리스는 리자의 곁에 남아 있으며, 연기 장면을 녹화하는 리자와 알리스의 모습은 흡사 연인의 장난을 떠올리게끔 한다.


갑작스레 문을 열고 뛰쳐나가는 막스로 인해 밀쳐진 알리스가 막스를 바라보는 시선이 곧바로 자신의 방에서 춤을 추고 있는 리사와 막스에게로 향할 때 카메라는 두 사람을 같은 거리에 두고 바라본다. 알리스가 바라는 것은 막스인가? 아니면 리자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자신의 것이 아닌 '연인의 행복'인가? 영화는 막스와 알리스의 관능적인 섹스 장면을 통해 알리스가 바라는 것이 막스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그녀가 바라는 것이 막스인지 아니면 자신을 사랑해주는 누군가인지는 비교적 명확하다. 거짓으로 삶을 꾸미는 이유는 누군가의 시선을 독차지하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다. 그녀는 '관상'을 바라는 반지다. 


영화 속 모든 관계들이 무너지는 건 막스 때문이기도 하다. 그가 만약 알리스가 남긴 '자서전'을 읽고서도 리자를 만나러 갔다면, 그래서 리자가 집에 제때 돌아가지 못했다면 리자는 다니엘(올리비에 그랑니어)로부터 안전했을 것이다. 불륜 상대인 리자와의 결합을 위해 아내를 죽일 만큼 잔혹한 자로부터, 자신이 한 때 사랑했던 사람을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막스는 거짓으로 꾸민 삶이었으나 모든 것을 고백하고 온전히 자신에게 육박해오는 알리스에게 간다. 하지만 그의 발걸음은 자신을 기다리던 뮤리엘과의 우연한 부딪힘 앞에서 멈춘다. 막스가 보여주는 마지막 움직임들에 대해 이해할 새도 없이 영화는 끝난다. 그에게 이입할 필요가 있냐고 묻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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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빠르망을 보고 '사랑'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 이 영화에서 사랑은 언제나 뒤틀린 형태로 등장한다. 알리스의 사랑은 오직 거짓말 속에서만 진실되다. 알리스가 리자의 흉내를 내고 있을 때만 막스의 사랑을 받는다. 동시에 알리스가 막스를 모르는 사람으로 대할 때만 뤼시앵의 사랑을 받는다. 뮤리엘은 막스의 거짓말을 모른 상태로 결혼을 준비한다. 리자는 유부남 다니엘과 불륜을 저지르다 그의 집착에 목숨을 잃는다. 영화의 시작에서 끝까지 이어지는 막스의 여정은 비밀에 부쳐진다.(알리스의 웃음은 불안함을 유발하지만) 여기에 어떤 사랑이 있는가? 


영화는 막스나 알리스 그 누구에게도 동정의 여지를 내주지 않는다. 그들은 영원히 묻어두어야 할 거짓된 시간을 남겼고, 이것은 끝내 그들의 발목을 붙잡을 것이다. 투명한 벽과 여권을 통해서. 영화에서 여권은 두 번 등장한다. 한 번은 도쿄로 출장을 떠나기 위해 막스가 출국장으로 들어갈 때 등장하고, 다른 한 번은 로마로 사랑의 도피를 떠날 수 있다는 기대를 안고 알리스가 출국장에 들어갈 때다. 짧게 카메라가 비추는 여권에는 그들의 젊은 시절의 사진이 붙어 있다. 한 번 투명한 벽으로 가로막힌 출국장으로 들어서면 다시는 공항으로 돌아올 수 없듯이 그들의 지나간 시절도 다시 돌아올 수 없다.


이를 깨닫지 못한 채 두 사람은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넘어선 후 무력해진다. 막스는 뮤리엘을 배신하고 도쿄행 비행기를 타지 않은 채 리사를 찾았지만 끝내 (자신의 선택으로) 리사를 잃었다. 알리스는 모든 것을 고백한 후에 자신을 선택한 막스를 기뻐하였지만 끝내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입국장에서 뮤리엘과 막스가 껴안고 있는 장면을 무기력하게 바라본다. 거짓말로 되돌릴 수 없는 과거는 없는 것이다. 다시 한 번, 파국은 예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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