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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학준 Aug 08. 2023

반복되는 이탈

23.08.08. 마쓰모토 하지무, <궤도 이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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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피해자나 유가족이 더는 추천사를 쓰는 일이 없기를 바랐다.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참사를 보고 우리 곁에 일어난 참사를 떠올릴 일이 없기를 바랐다. 안전한 나라가 되어 참사를 다룬 르포에 거리감을 느끼길 바랐다. 모든 바람은 헛되었고, 책을 펼치자마자 떨어지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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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 25일, 일본 효고현의 아마가사키시에서 열차 탈선사고가 일어났다. JR서일본 산하 후쿠치야마선 쾌속열차가 곡선구간에서 선로를 벗어나 근처 이퓨전 아마가사키 아파트 1층에 충돌한 것이다. 사망자는 총 107명, 부상자는 562명이었다. 아사노 야시카즈는 하루 아침에 가족 대부분을 잃었다. 아내 요코와 여동생 치즈코가 사망하고, 둘째 딸 나호는 중상을 입었다. 아내의 '다녀올게'라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사고 발생 2년 뒤 국토교통부 항공 철도 사고조사위원회가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사고의 원인은 젊은 운전자 다카미 류지로의 브레이크 사용 미숙으로 밝혀졌다. 그는 곡선 구간에서 제때에 브레이크를 밟지 못했고, 제한 속도를 넘어선 채 진입한 열차는 원심력을 이기지 못해 탈선하여 선로에서 6m 정도 떨어진 아파트에 충돌했다. 안타깝게도 연결된 차량들이 잇달아 아파트에 충돌하면서 대형 인명 피해가 발생하고 말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운전자는 사고 직전 과속과 오버런을 반복했다. 정시에 도착하지 못하면 일근교육이라는 재교육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고 장소에서 가까운 이타미역에 정차할 때에는 심한 오버런(정차 위치를 지나쳐서 정차하는 실수)을 범해서 선배에게 오버런의 규모를 축소 보고해 달라고 간청한 상태였다. 따라서 운전자가 운전에 제대로 집중할 수 없는 상태에서 주의 소홀로 사고가 났다는 게 결론이었다.


하지만 아사노는 기관사의 주의 소홀은 진짜 원인이 아니라, 다른 원인의 결과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사고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인들이 보고서에서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사고의 원인이 오로지 운전자의 부주의로 결론나는 상황은, 구조적 문제를 도외시하고 사람 하나를 제물로 바쳐 끝내려는 시도가 아닐까 의심했다. 진짜 문제는 JR서일본의 조직 그 자체에 있는 것이지 않을까? 


지역 개발과 도시 재생을 전공한 아사노는 유가족으로서 분노를 잠시 억누르고, 사건의 진정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나섰다. 한때 국토문제연구회에서 활동하며 '당하는 쪽'의 입장에서 과학기술, 사회, 지역 주민을 연결하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능력을 배양해왔던 그는, JR서일본이 진지하게 사고에 대해 반성하고 원인을 검증해 그 결과를 유가족과 피해자에게 정확하게 설명하기를 요구했다. 그래야만 죽은 자들의 억울함을 풀 수 있고, 다시는 똑같은 참사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요구를 "유가족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불렀다.


그가 JR서일본에 요청한 것은 징벌적인 일근교육이 조직에 미치는 영향, 철도 시간표 편성의 현실성, ATS-P 등 기술적인 사고 예방 조치의 현황, 회사 전체의 안전 관리 체계의 수준을 파악해달라는 것이었다. 아사노의 곁에는 사고 피해자 모임인 '4.25 네트워크'가 있었다. 탈선 사고로 외동딸을 잃은 후지사키 미쓰코씨는 14년전 시가현에서 발생한 또다른 철도 사고 유가족들의 소송 자료를 제작하는 인쇄소를 경영했던 경험이 있다. 그가 딸을 잃고 시가현 사고의 유가족들에게 연락했을 때, 그들은 후지사키씨에게 피해자들의 연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과거의 유가족이 오늘의 유가족을 모이게 했다.


유가족이 한데 모였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가족을 잃은 상실감과 허탈감을 견디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가족을 팔아 신세 폈다'는 조롱이 인터넷에 끊이지 않았다. 원인 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들을 비웃고 저열한 언어를 내뱉는 이들, 얄팍한 지식으로 "막을 길이 없는 사고였음을 '해설'하는 사람"(111)들은 유가족을 심적으로 고립시켰다. 상대할 기업도 벽처럼 느껴지긴 마찬가지였다. 입으로는 사죄를 이야기하지만, 구체적인 잘못을 따져물으면 침묵했다. 장례식장에서 보상을 들먹이고, 유가족을 분할하여 협상력을 약화시켰다. 심지어 사고의 책임을 지고 사임한 임원들은 관련사 사장으로 슬그머니 복귀하기도 했다. 진정성은 어디에도 없었다.


사건을 취재한 마쓰모토 하지무는 "모두가 아사노처럼 강하지는 않다. 모두가 아사노처럼 싸울 수는 없다."(112)고 말했다. 사고로 파트너를 잃은 한 유가족은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익명의 악의, 책임을 회피하는 기업, 나가떨어지는 피해자라는 삼중의 지옥도에서 아사노는 버텼다. 정례 회의를 열고, 기업에 무엇을 어떻게 요구할지 결정했다. 활동에 반감을 가진 유가족이 떨어져 나간 만큼, 참여자도 생겼다. 사고의 사회화, 소중한 가족이 희생된 사고를 '우연히 일어난 불행한 일'이 아닌 사회 전체의 문제로 비화시키기 위해 그는 버텼다. 


1987년 일본국영철도는 민영화되면서 7개의 회사로 분할된다. 그 중 오사카, 교토, 고베 등을 포함한 긴키 지역을 담당하는 JR서일본은 분할 당시 경영 위기에 처해 있었다. 수도 도쿄를 포함한 간토 지방의 탄탄한 수요를 바탕으로 수익을 내고 있던 JR동일본이나 일본 철도 수익 1위 도카이도 신칸센을 소유한 JR도카이와 달리, JR서일본은 산요 신칸센과 오사카 순환선을 제외한 나머지 52개 노선이 적자인 상태로 민영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간사이 지역에는 사철이라는 민영 철도 회사들이 발달해 있었다.


JR 민영화의 핵심 인물이었던 이데 마사타카는 분할과 동시에 JR서일본의 부사장으로 임명된다. 직책은 부사장이지만 실권을 쥐고 있었던 그는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열차들을 개발해 보급하고, 배차 간격을 촘촘하게 만들고, 노선을 개량하는 데 집중했다. 지선에 불과했던 후쿠치야마선에 쾌속 전철이 도입되고 복선 구간이 연장되는 등 개량된 것도 이때다. 선로의 최고 속도 제한은 완화되고 배차 간격이 늘면서 노선 이용객은 증가했다. 수익성은 높아졌지만 부작용도 있었다. 시간표가 개정될 때마다 기관사의 여유 시간이 줄었고, 안전 시스템 개량을 위한 설비 투자는 비용을 이유로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었다.


이데 본인은 '안전'을 여러번 언급했지만, 정작 그 안전의 내용을 누가 어떻게 책임지고 실현할 지에 대해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일근교육을 통해 노동자의 정신적인 재무장을 요구하는 등 전근대적인 방식을 고집했다. 후쿠치야마 사건 이전에 이를 경고하듯 발생한 몇 건의 사고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대처하는 등 조직 내 안전 의식은 희박해졌다. 하지만 야전 사령관 스타일로 일을 처리하는 이데의 업무 방식은 비교적 효율적으로 작동했고, JR서일본 내에서 그의 영향력은 절대적으로 늘어났다. 거슬리는 사람들은 출향을 당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이세도 후쿠치야마 사건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당시 고문이던 그는 가키우치 다케시 당시 사장, 난야 쇼지로 회장과 함께 사건의 책임을 진다는 명분으로 임원직에서 사임했다. 동시에 '패전처리'를 담당할 후임 사장으로 철도본부장을 역임한 기술직 출신의 야마자키 마사오를 지명했다. 이 결정은 이데를 고립시키고 JR서일본이 문제 해결을 위해 아사노, 4.25 네트워크와 함께 공동 검증위원회를 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야마자키는 이미 눈밖에 나서 자회사에서 7년을 보낼만큼 이데의 영향력에서 비교적 자유로웠고, 재발방지를 위한 조직 개혁에 진지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사고가 일어난 지 4년 반이 지난 2009년 4월, 4.25네트워크가 요구한 '아마가사키 탈선 사고 검증 위원회' 설치에 대해 야마자키 사장이 동의했다. 책임자 개인을 찾아내 처벌하는 것을 잠시 미루고, 대신 조직 전체의 결함을 파악해 앞으로 다시는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피해자와 가해자가 한 테이블에 앉는 기구를 만들자는 데 둘이 동의한 것이다. 물론 야마자키는 2007년 발표한 보고서의 정보를 사전에 입수해 조율하려 했다는 스캔들로 입지가 불안했고, 조직 문화 개혁의 의지를 확실하게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럼에도 전향적인 결정 덕에 원인 규명에 한 걸음 더 가까이할 수 있었다.


공동검증위원회에서는 일근교육, 열차 시간표, ATS, 안전관리 체계 이 네 가지 주제에 대한 공동 검증이 이루어졌다. 위원회는 4.25 네트워크 유가족 7명, JR서일본 부사장 니시카와 나오키를 포함한 회사측 인원 8명 그리고 논픽션 작가 야나기다 구니오가 옵저버로 참가해 총 16명으로 이루어졌다. 유가족 대표단의 문의에 JR서일본 측은 자료로 대답하고, 이에 대한 반문과 재답변이 지리하게 이어졌다. 2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끝에 발간된 보고서에서 JR서일본은 회사의 조직 문화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또한 2012년 아사노가 주도한 'JR 서일본 안전 팔로업 회의'에서는 사고에 이른 주요한 원인들을 인과관계로 연결한 플로우 차트를 만들어냈다. 이로서 당시엔 커브 구간의 위험을 제대로 인식할만한 기술이 없었으며, 운전사가 커브 구간에서 과속할 가능성을 정확히 예측하지 못했음을 밝혀냈다. 이로서 기관사 개인이 모든 책임을 져서는 안된다고 규명된 건 사건 발생 9년이 지난 2014년이었다. 끝내 동력을 잃지 않고 집요하게 원인 규명에 모두가 매달린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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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두 가지 미덕이 있다. 하나는 아사노라는 독특한 인물의 시선을 따르는 구성이다. 그는 유가족인 동시에 노련한 협상가다. 북받치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사고 원인 규명에 매진할 수 있는 인물이다. 유가족과 기업으로부터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공통의 지점으로서 ‘재발 방지’를 철저하게 밀고나가 끝내 관철시켰다. 죽은 자의 억울함을 달래고, 말단을 잘라내는 방식으로 대응하던 기업의 조직 문화도 바꿨다. 그의 행동은 우리가 다시금 재난을 마주했을 때 어떤 과제들을 해결해야 하는지를 알게 했다.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아사노를 ‘단수’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모두가 아사노처럼 강하지는 않다. 모두가 아사노처럼 싸울 수는 없다.” 아사노라는 사람을 함부로 영웅화하거나 그가 택한 전략이 모두에게 적용 가능하다고 보지도 않는다. 덕분에 우리는 아사노의 헌신적인 노력에 경의를 보내면서도 그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고 이후를 살고 있는 사람”의 삶을 부정적으로 대하지 않을 수 있다. ‘올바른’ 유가족의 태도라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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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모토 하지무는 조직 문화를 악화시킨 원흉인 이데 마사타카와의 인터뷰를 진행한다. 노년의 그는 자신에게 가해진 의혹들을 조목조목 반박한다. 야마자키 마사오를 사장에 임명한 것은 패전 처리가 아니라 기술직이 사장을 해야 한다는 평소의 생각을 반영했을 뿐이고, 조직 문화에는 문제가 없었고 오히려 자기에게 너무 의존하는 심리를 불식시키기 위해 고문으로 물러났던 것이며, 사고는 순전히 운전사의 성격과 능력의 문제였다고 말이다. "사고에서 회사의 책임, 조직의 책임은 없어. 그런 건 허상이야. 조직적으로 사고를 막는다는 건 불가능해. 개인의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지."(300) 기자는 그런 그가 '통치자의 시선'에 사로잡혀 있다고 냉정하게 바라본다. 


"그러나 여기에는 안전 기술의 진보 뒤에서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 없다. 가족을 잃은 사람의 비탄에 조금이라도 멈춰 서서 귀를 기울일 자세가 돼 있지 않다. 이데의 눈에는 무수한 사고에 우연히 조우해버린 불행한, 무명의 개인들로만 보인 것이 아닐까? 조직과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 혹은 거대한 역사와 대의 앞에서 '개인'의 존재는 짓밟히고, 배제되어도 어쩔 수 없다는 신념을 강하게 갖고 있는 것이 아닐까?"(300-301)


안타깝게도 이데처럼 '천황'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어쩌면 우연히 유가족이 되지 않았을 뿐인 이들도 재난의 당사자들이 겪는 고통을 조롱하고 비난하고 아무 것도 아닌 일로 격하시킨다. 그들의 악의를 내버려둔다면 유가족들은 고립되고, 분열되어 끝내 침묵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재난은 꺼지지 않는 잔불이 되어 조용히 우리의 일상을 다시금 무너트릴 것이다. 반복되는 재난 앞에 보상금을 준비했다며 자찬하고, 재난이 뭐 그리 자랑스러운 것이냐며 침묵하길 요구하는 작금의 현실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재난 이후에 남은 자들이 한 번 더 가라앉지 않도록 연대의 손길을 내미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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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보수 경제지는 이 책을 소개하면서 제목을 '감정 아닌 논리로 해결한 日열차 참사'라고 달았다. 본문은 평범한 책 소개 기사지만, 제목을 단 데스크는 이 나라의 유가족들에게 '감정적'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싶었던 모양이다. 자못 준엄하게, 떼 쓰지 말고 이성적으로 접근해야 원하는 결과를 얻을 것이라는 마치 어른이 아이를 얼르는 듯한 태도로.


저자는 누구나 다 아사노처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아사노가 처한 특수한 인생 경로가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되긴 했지만 말이다. "실제로 아사노 씨나 4.25 네트워크와 전혀 무관하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고 이후를 살고 있는 사람을 나는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내용이 유일한 '정답'이라거나 '이상적인 모습'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수백 명의 유가족이 있고, 저마다의 사고 이후가 있다는 사실은 당연하다." (398) 기사의 가치를 폄훼하는 데스킹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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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저널에 보낸 원고의 수정 전 버전. 이로써 70번째. 올라가고 나니 같은 동사를 두 번 쓴 것도 보이고 바꾸고 싶은 문장도 보이고 그러네.

http://www.p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75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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