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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학준 Nov 30. 2022

마라맛 연애 버라이어티

22.11.30. SBS PLUS, ENA, 나는 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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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책을 볼 체력이 안 남았다. 집으로 돌아오니 마루에 하다 만 퍼즐이 남아 있어서 아내와 함께 맞췄다. 대강 반쯤 맞추고 나니 밤 11시다. 같이 맞추던 아내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리모콘을 들었다. 배경 소음으로 틀어두었던 <골 때리는 그녀들> 대신 <나는 솔로>로 채널을 바꿨다. 다리도 저린 김에 나도 일어나 책상에 앉아 같이 보기 시작했다. 나는 포도를 오물모물, 아내는 무인양품에서 사온 고구마 튀김을 오독오독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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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 <짝>의 조연출을 짧게 한 적이 있다. <나는 솔로>를 만든 선배는 그 당시 <짝>을 떠나 있던 상태였고, 나는 새로운 팀장과 함께 일을 했다. 그렇다고 크게 다르진 않아서, 지금 나오는 프로그램이나 그때의 프로그램의 밑바닥에 흐르는 시선과 감각은 여전히 동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물론 형식도 달라지고 경험도 축적되었으니 완전히 같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더 '나은' 것인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여기엔 내가 연애 프로그램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는 개인적 선호가 깔려 있기 때문이겠지.


'익명'과 '날 것'의 감각이 다른 연애프로그램과 이 프로그램을 가르는 지점인데, 나는 그 날 것의 감각을 예나 지금이나 좀 불편해 하고 있다. 코너에 몰린 사람들의 절박함을 사용하여 프로그램의 활력을 유지하는 방식인데, 익명을 통해서 출연자들의 피해를 최소화시키려고 시도하는 것 같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출연자들에게 쏟아질 비아냥을 감당하긴 어려워 보인다. 프로그램 바닥에 인간에 대한 냉소가 깔려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어디 한 번 뛰어 놀아 보거라, 우리가 만들어 둔 동물원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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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쨌든 본다. 그래도 여기 나오는 사람들은 주변에서 볼만한 사람들이니까. 한때 유행하던 수많은 연애 프로그램들을 보면 같은 인간인가 의심될만한 사람들만 가득해서, 너네 연애 너나 재밌지의 마음이었다면 그래도 <나는 솔로>를 보면 쟤도 나처럼 어디 하나가 모자라구나, 쟤도 참 인생 힘들게 사네, 하는 마음으로 보게 되는 부분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포맷이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는 것이겠지. 같이 고구마 튀김을 오독오독 씹으며 결국 다시 화면을 본다. 이번 기수는 좀 더 재밌네,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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