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을 쉬면서
봄비가 내리는 아침의 공기가 촉촉하다.
나무들이 초록으로 물들어 대지가 화사해지는 중이지만 화창한 하늘을 기대하기 힘든 날들.
뿌옇고 탁하고 메케한 것들이 사방을 뒤덮고 있다. 맑고 청명한 하늘을 맞이하는 것은 가끔 찾아오는 행운 같은 일상이 되었다. 중국의 황사와 화석연료 사용의 영향으로 돌리기 전에 우리 역시 엄청난 양의 탄소에너지를 방출하는 중이다. 잿빛 하늘을 보면 인간의 편리함이 증가할수록 자연은 약탈당하는 중이라는 방증으로 읽힌다.
금요일에 휴가를 내니 마음이 한결 여유롭다.
음악을 들으면서 화초에 물을 주고 하수관을 막고 있던 슬러지들을 제거했다. 역한 냄새들이 올라오지만 머리칼과 엉킨 더러움을 닦고 나서 다시 원활해지는 물 빠짐이 경쾌하게 들렸다. 정신 차리고 보니 4월도 다 지나간 느낌이다. 열심히 살았고 분주히 움직였으며 성실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정리하고 기록하지 않으면 남는 것이 없다는 사실에 노트북을 켰다.
4월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해외 주문 책 한 권을 드디어 받아 들었다.
3월 말에 결제한 책은 45일이 경과한 후인 4월의 중순에 우리 집 우편함으로 날아든 것이다. 책값만 받고 배송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이 서점의 시스템은 오랜 기다림을 각오한 독자라면 그래도 장점이 있는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추해 보건대 비행기가 아닌 운송비가 싼 선박을 이용해서 바다를 건넜을 테니 저렴한 만큼 인내와 기다림은 기본인데, 코로나까지 겹쳤으니 30일 이내의 배송이 더욱 늘어난 것이리라. 아무튼 Better world books의 정신과 가치를 높이 사는 입장에서 더디더라도 좋은 상태의 중고책을 받아 든 것에 감사를 표한다.
새것이나 중고나 같은 책이라도 아마존보다는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믿을만하다는 생각이다.
책을 받아 든 기쁨을 상기하며 찬찬히 읽어나가는 중이다. 영상미학에 관한 책이라 글에 적합한 사진과 이미지를 같이 싣는 것이 중요한데, 발행한 지 오래된 내용을 계속 업데이트시키고 완성도를 높여가는 과정에서 문화적 깊이를 느끼게 된다.
졸속으로 만드는 일시적 짜깁기가 아닌 연구의 축적과 집단 지성의 연대와 외부의 지원, 그리고 그것의 가치를 높은 가격에 사주는 소비자의 의식, 뭐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리를 스쳤다.
영상을 제작하다 보면 그 가치를 알아보는 시청자나 클라이언트를 만날 때 보람과 가치를 느낀다.
가령, 5분 내외의 홍보영상을 2천만 원에 제작한다고 하면 영상을 아는 사람이라면 대략 2천만 원에 해당하는 영상의 퀄리티가 어느 수준인지를 인지하고 있다. 장비와 인력과 제작기간을 가만해서 결과물을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눈을 가졌다는 얘기다.
문제는 비용은 2천만 원을 지불하는데 영상의 퀄리티에 대한 기준을 4~5천만 원 선으로 잡고 있다거나 영화에서 봤던 뭔가의 느낌을 요구할 때면 참 답이 없어진다. 그렇게 못 만들어서가 아니라 그런 퀄리티를 바란다면 제작 기간을 늘리거나, 그것을 구현할 비용을 합리적으로 책정하면 되는 것인데 그렇게는 못한다.
상점의 물건이라면 그 가격에 몇 개 더 얹어주면 되는 것인데, 이런 기술력은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제작자의 경륜과 도의상 우리는 2천만의 영상을 만들 때 최소한 2천만의 의 퀄리티를 상회하는 3천만 원의 퀄리티에는 도달하려는 목표를 갖는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 다른 클라이언트도 우리를 매력적으로 보게 되고 2천, 3천, 5천, 1억의 제작비에 따른 아웃풋의 퀄리티가 어떻게 다른지 이해하게 되니 말이다.
클라이언트나 시청자들도 영상을 많이 보게 되면서 어떤 것이 완성도 높은 것인지 잘 안다.
클라이언트는 최종적으로 조금 더 욕심을 내게 되고 더욱 현란한 이펙트를 요구하게 된다. 제작비를 투여한 정도의 만족은 충족되었지만 이젠 그 이상의 완성도를 기대하는 시점이다.
제작자도 애초의 제작비 2천만 원의 가치와 완성도는 이미 넘어섰다고 판단하지만 서로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서비스의 시간으로 상대방을 맞이하게 된다. 사실 완성도에 대한 욕심은 제작자가 더 강하다.
'제작비가 충분하다면 2D에 3D 매혹적인 조명과 연출이 왜 불가능하겠는가?'
마음을 다잡는다. 수익률이 낮더라도 구현할 수 있는 것을 더 구현해 본다.
종편 감독은 추가된 효과와 이미지를 구현하느라 밤새 랜더링을 돌린다. 그렇게 해야 서로가 맘이 편하게 되고 차라리 이 작품은 애초에 3천만 원에 수주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건강에 이롭다.
월요일에는 인터넷서점에서 주문한 책 두 권이 배달되었다.
당일에 주문해서 저녁에도 받아보는 빠름과, 45일간의 기다림 끝에 받아본 책 모두에는 동일한 반가움과 설렘이 담겨있다. SNS를 통해서 눈여겨본 지인들의 직간접적인 평가가 책 구입의 동기가 되었다.
책을 대하는 동안 잔잔한 휴식과 감동이 전해질 것이라 믿는다.
비 내린 후의 하늘에 뭉개 구름이 피었다.
해가 빼꼼히 모습을 비추는데 어느새 시야도 깨끗해졌다.
가끔씩 비가 내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