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에 주의를 기울였지만
우려하고 걱정하던 일을 현실로 직면하는 것엔 일종의 두려움과 공포가 따랐다.
처음으로 돈이 비기 시작한 것은 2개월 전쯤의 일이고 이후에 더욱 주의하며 경계했음에도 일주일 전 두 번째로 현금이 사라진 것을 확인했을 땐 허탈했다. 이런 소행은 입주민의 집을 의심 없이 드나드는 사람과 CCTV의 기록까지도 조작 가능한 사람일 거라는 예감이 스쳤다. 전자라면 빨래와 집안청소로 생계를 이어가는 싱글맘, 후자에 속하는 사람은 아파트의 출입을 지키는 키퍼 또는 우리 아파트 사정에 훤한 사람들이다.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고 , 의심은 가지만 가여운 이들을 믿어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다른 분들도 도난의 경험이 있었지만 경찰에 의뢰하는 조치까지는 취하지 않기로 했다. 잃어버린 날과 시간을 특정하기도 어려워서 나 혼자 많은 분량의 CCTV앞에 매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한국과 달리 마음만 먹으면 외부에서의 침입이 가능할 것만 같은 창틀의 시건장치는 그리 견고해 보이지 않았고, 3층 건물의 아파트 중에서도 내가 거주하는 1층은 상대적으로 취약하게 느껴졌다.
오늘, 한참 잠들어 있던 새벽 4시경 비명처럼 핸드폰이 울렸다.
웬일일까 놀라며 반사적으로 전화기를 들었다. 나의 목소리는 잠결에 부스스하고 몽롱했지만 상대편의 음성은 날카로운 긴박감이 묻어 나왔다. 3층에 사는 동료단원의 목소리였다. 지금 CCTV로 간밤에 침입했던 좀도둑의 인상착의를 확인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모티터 룸으로 이동했다.
범인은 대담하고 자연스럽게 아파트에 걸어 들어와서 1층에서 3층을 돌면서 빈 집을 확인하고
불이 꺼진 집의 문과 창틀을 확인했다. 시간은 어제저녁 7시 40분경이었는데 내가 집으로 귀가하는 것을 확인하자 침입자는 나의 집 베란다 부분에 숨었다가 2층으로 올라가 창문을 열고 침입하는 것이었다.
그 시간에 집을 비웠다가 늦게 귀가한 동료 단원은 자신의 노트북과 패드 등이 도난당한 것을 확인하고 바로 cctv를 뒤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외부에서 창문에 힘을 가하니 어이없이 열리는 모습과 훌쩍 뛰어넘는 모습이 거짓말처럼 녹화되어있었다. 좀도둑이 집을 나올 때에는 출입문으로 자연스럽게 빠져나와서 훔친 물품과 백팩을 자신이 매고 온 큰 가방에 넣는 모습까지도 기록되었다. 185센티 정도의 건장한 체구는 앞에서 보면 남자 같고 뒤에서 보면 여성의 체형을 닮았는데 우리 입주민과 경찰의 생각도 반반이었다.
여장을 한 남자인지 여성인지, 아무튼 단독범이지만 차분하고 대담했다.
그 시간은 우연이었는지는 몰라도 하우스 키퍼가 저녁을 먹으로 잠시 자리를 비운 시간이기도 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연립에 가깝지만 여기서는 아파트라고 부르는 아홉 가구의 입주민들이
새벽에 깨어서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실은, 고이 잠든 주민도 있어서 한국인 단원 세 가구의 사람들이 놀라서 달려 나온 셈이었다. 우리의 소소한 도난과 불안이 물증으로 확인된 순간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이 일었다. 어렵고 가난한 나라를 돕고 섬기러 왔지만 우리의 의도와 삶의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경찰에 신고하고 기다리는 동안 한 집에 모여 따듯한 차로 마음을 진정시켰다.
돈은 도난당하는 것도 기분이 안 좋지만 모든 기록이 담긴 노트북과 패드는 개인의 역사이며 사역을 위해서도 중요한 재산이다.
경찰이 와서 현장을 둘러봤고 영상 기록도 확인했다. 집주인은 깊은 사과를 전하며 이중의 안전장치를 설치할 것과 전문 보안회사의 인력으로 가드를 세울 것을 약속했다.
국경을 넘기 전에 패드와 노트북을 회수해서 다시 찾을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확실한 사실 하나는 르완다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빈부의 격차가 눈에 띄게 확연해지고 있다는 점과 물가상승으로 인한 서민의 삶이 녹록지 않아 보인다는 사실이다.
길을 걸으며 산책하다 보면 외국인인 나에게 손을 벌리며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을 만난다.
반면에 여기가 비버리힐스인지 평창동인지 분간이 안 가는 너른 마당의 울타리 안에서
행복하고 해맑게 노니는 부유한 사람들도 목격한다.
상대적 박탈감에 좌절하는 사람과 자기만의 성을 더욱 높이 쌓는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함께 살아가야 하는데, 르완다는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지?
마음이 무겁기도 하고 의구심이 풀린 것 같기도 한 애매한 감정이 또 한동안 나를 지배할 것 같다.
어쨌든 우리는 마음을 다잡아야 하고 이런 와중에도 더욱 강하고 담대해져야 한다.
동전의 양면처럼, 어려움을 헤쳐가는 중에는 성숙함이 찾아오리라 믿는다.
표지사진: 키갈리 세레나호텔 중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