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기가 시작된 지 한 주가 다 돼 가는데도 왜 학교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는지 의문이 들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서둘러 나오는 게 어려운 건가?'
잠깐 이런 생각에 잠겼다가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우기인 요즘은 밤 사이 비가 내리치다가 아침이 밝아서야 겨우 소낙비를 멈춘다.
억수로 내리는 비는 대중교통수단인 버스를 멈춰 세우고, 대다수 학생들은 1시간에서 1시간 30분가량을 걸어서 등교를 하다 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일찍 일어났더라도 장대비를 피해서 집을 나서야 하니 이해 못 할 일도 아닌 것이다 나야 걸어서 10분 거리에 집이 있으니 이곳의 사정을 잘 이해 못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렇게 힘들게 등교를 해서 2시 35분까지의 빡빡한 수업을 받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니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우기라고 해서 계속 비가 내리는 건 아니다. 비가 개고 하늘은 금방 맑아져서 강렬한 태양빛을 토해 낸다. 한 낮을 넘기면 강철판으로 된 지붕은 후끈한 열기를 뿜어낸다.
건물 양쪽으로 창이 달린 교실은 그나마 덜 덥지만 한쪽만 창문이 달린 교실은 뜨끈한 열기로 머리가 어질 하다. 목요일엔 나의 수업이 오전 두 시간과 오후 두 시간이 연달아 있어서 좀 피곤한 감이 있었는데
학생들 역시 열기와 허기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학교 수업은 오전 8:30분에 시작해서 50분간의 수업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나라면 당연히 10분의 휴식이 주어지고 다음 시간이 이어지지만 여기는 휴식이 없이 그냥 50분 단위로 연이어있다.
11시 50분에서 12시 05분 사이의 15분이 유일한 공식 휴식이며 이 시간에 고 1,2, 3학년에게 빵과 우유의 간식을 나눠 준다. 그야말로 꿀 같은 15분의 충전이 아닐 수 없다.
그러고 나서 곧장 3시간의 수업에 돌입해서 다 마치면 2시 35분이 되는 것이다. 학교가 파하면 1.2학년은 집으로 가고, 고 3만 점심을 먹고 자율학습을 통한 입시준비에 들어간다.
금요일만큼은 오후의 특별활동을 위해서 전 학년에게 점심을 제공하고 있다.
아침부터 무리하게 시간을 붙여서 시간표를 짜는 이유가 바로 급식과 관련된 것이다.
오후로 갈수록 더위에 지치기고 점심도 제공할 수 없으니 빨리 마치고 하교를 독려하는 것이다.
학부모들이야 한 끼라도 학교에서 잘 먹고 오랜 시간 공부하다 집으로 돌아오기를 바라지만 말이다.
나의 수업엔 약속한 데로 만든 교과서로 강독하는 시간을 갖지만, 낮 1시 즈음이 되니 더위와 피곤함 허기가 겹쳐 학생들이 집중을 못하기 시작했다. 아예 엎드려 버린 아이들도 생기지만 곤히 잠든 모습이 안쓰러워 깨워서 혼낼 엄두가 안 났다. 그냥 마음이 짠했다.
나 역시 12시에서 1시 사이의 점심이 익숙한 사람인데 2시 35분까지 버티는 것엔 무리가 따랐다. 그나마 교사들에게 나오는 현지식이 맛이나 영양면에서 만족스러운 것도 아니고 외국인인 우리에겐 그냥 때우는 수준이다. 수업분위기를 환기시킬 겸해서 야외 그늘로 나와서 둘러앉아 교과서 강독을 이어갔다.
한 문장씩 돌아가며 큰 소리로 읽고 개념을 설명하고 어려운 단어는 사전을 찾아서 그 의미를 새기게 했다. 학생들에게는 낯선 영어가 많았다. 일반인과 대학생들의 교재로 적합한 내용의
단어들이고 영어책을 낭독하며 읽는 연습이 많이 안 되어있기도 한 탓이다.
미디어 강독 수업
책이 귀하니, 수재로 만든 교재는 도서관에 맡기고 시간마다 가져와 사용하고 다시 맡기는 시스템이다.
혹시 집에서 읽고 싶은 학생들이 있다면 사서를 통해 기록하고 다시 가져가야 한다.
잘 먹지 못하고, 책도 풍족하지 않아 모든 게 부족한 르완다의 상황이 가슴 아팠다.
키갈리는 그나마도 상황이 좋은 편인데도 말이다. 더구나 우리 학교는 학부모에게 크게 부담되지 않는 학비를 받으면서도 빵과 우유를 주고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점심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교육당국의
칭찬을 받는 학교란다. 이것이 학생들을 사랑하는 한 단면이라고 했다.
주변의 최상위사립학교와 인터내셔널 스쿨은 일반인은 갈 수 없는 학비 수준이라 급식의 질은 말할 것도 없이 좋고 학생들은 오래도록 학교에 남아서 공부할 수가 있다.
그런데도 우리 학교 아이들이 등치나 키가 한 뼘씩은 더 큰 인터내셔널 학교 학생들과의 축구 경기에서 이기는 것을 보면 조직력과 근성을 무시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왜소하고 가난하지만 대견하고 기특하다.
학교는 그렇다 쳐도 집의 소소한 문제를 두고 집주인과 몇 번의 통화와 문자를 주고받았다.
9 가구 중 3 가구가 우리 한국인인데 우리가 사는 곳은 새롭게 들어서는 주변 건물의 시세와 비슷하면서도 많이 낡고 고장 난 곳이 많았다. 렌트비도 3개월치를 미리 주는 데도 수리가 빨리빨리 이뤄지지 않아서 이번만큼은 이곳을 떠나거나 당당히 임차인의 권리를 주장하려고 벼르는 차였다.
학교가 가까워서 단원들이 바뀌더라도 그냥 이어서 살았던 것인데 이를 악용하거나 배려하지 않는 건물주에게 정당히 항의하고 주장을 명확히 해야겠다는 생각에 몇 주간 날이 선 상태였다.
현지인 중에는 무중구인 우리를 돈 많은 외국인으로 여기며 어이없는 덤터기를 씌우려 할 때가 있다.
이곳에서 존재하며 버티고 사는 것 자체가 너무나 많은 감정적 에너지의 소모로 이어지는 이유다. 그럴 때면 잠시 멍해지고 힘이 빠진다. 오늘은 특히 여러 감정들이 섞여서 더욱 그러했다.
이렇게라도 멈추고 정리하고 써 내려가지 않으면 공허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오늘은 특히 라마단의 마지막 날이란 이유로 어제저녁에서야 갑작스럽게 임시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급히 결정된 학교의 휴가.
나는 지금 아프리카에서 살고 있다.
이젠 잠시 산책이라도 나가려 한다.
머리에 잔뜩 짐을 이고 가는 여인
현지인이 보기엔 자신들보다 돈이 많은 외국인임이 틀림없고
한국인으로서는 봉사단원이기에 한 푼이라도 절약하며 살아야 하는 신분이다.
차를 가질 수도 없고 운전해서도 안되며 값싼 오토바이는 안전상 타면 안 되고
버스론 어딘가를 다니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서 택시 외에는 이동이 허락되지 않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