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의 가사 한 소절 한 소절이 마음 깊은 곳을 울리며 파고들어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불과 30여 명이 모인 자그마한 한인 교회였지만 찬양인도자나 회중 모두 마스크를 벗은 채로 찬송하는 중이었다. 이렇게 모두가 자유롭게 입을 열고 마음껏 목청을 높여 찬양을 했던 적이 언제였던가?
비행기에서 내린 순간부터 르완다 전역은 노마스크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인천에서 에티오피아까지 13시간의 비행은 좌석의 갑갑함에 더한 마스크의 불편함을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러고 나서도 몇 시간의 기다림과 2시간 반 동안의 비행을 거쳐야만 도착할 수 있는 키갈리이고 보니 온몸이 녹초가 되어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몇 년만의 비행기 탑승으로 들뜬 마음과 피곤을 달래는 맛난 기내식과 우리 일행이 창가와 복도자리를 선택한 탓에 중간이 비워져서 그나마 편하게 날아온 것이었다.
어렵사리 도착한 키갈리는 햇살 따가운 여름나라였고 신기하게도 모두 마스크를 벗고 자유롭게 공기를 마시며 대화하는 분위기였다. 공항에서 짐을 찾아 나올 때, 다른 단원은 큰 짐을 부치고도 백팩에 기내용 케리어 심지어는 추가 요금을 많이 내고서라도 옷과 음식 생활용품을 바리바리 들고 나왔다. 다들 카트에 짐을 실어 공항을 빠져나왔지만 여성 단원들은 기내용 케리어와 큰 짐가방들을 켜켜이 쌓아서 밀고 나가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나만 너무 간소하게 짐을 꾸린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이 엄습했다.
얼마나 달고 맛있던지
우리를 마중 나온 선교사님을 만나서 차량에 짐을 싣고 숙소로 돌아오는데 키갈리 시내는 더한층 멋지게 단장되어 있었다. 겨울 복장으로 여름나라에 왔으니 덥기는 더웠지만 습하지 않아 상쾌했다. 아프리카 특유의 흙내음과 메케한 차량의 매연을 들이마시며 선선한 바람을 맞이한다.
천 개의 언덕으로 이뤄진 르완다의 도로에서 유독 많아진 현대 기아차들을 보며 마음 한편이 뿌듯해지는 느낌이다. 나의 숙소는 아파트 1층이고 다른 단원은 2층 선교사님은 다른 동의 3층이라 3층에서 저녁을 함께 먹었다. 부쩍 늘어난 주택단지의 잘 정돈된 집을 보며 20년 전 처음 르완다에 와서 현재의 모습으로 변모한 놀랍게 빠른 성장에 감탄한다.
저녁을 함께 나누고 나서 숙소로 돌아왔다. 집을 떠나 온전히 홀로 된 내가 낯선 곳에서 밤을 보내고 1년을 살아가야 한다. 문지기가 있고 담장이 높으며 주변의 집들도 괜찮아서 별 어려움이 없겠다 싶었지만 막연한 걱정이 앞섰다.
고가의 노트북과 카메라 장비와 현금......
누군가의 표적이 되면 안 된다는……
가르치는 동안 분실되거나 도난당하면 낭패라는 불안감……
그렇게 잠이 들어서인지 누군가가 내 방을 침입하려 하고, 아리따운 여인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꿈을 꾸다가 가위눌리고 저항하며 소리 지르다 잠에서 깨어났다. 타지에서 가장 쉽게 허물어질 수 있는 취약성이 꿈에서 재현된 셈이었다. 주일새벽에 심란한 마음으로 깨어난 것이다.
동이 떠오르는 여명에 침상이 젖어들 정도로 간절한 기도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
나의 소명과 사명을 돌아보고 대한 가족과 남기고 온 교회에 대한 간절한 염원이 이어졌다.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고 열정을 잃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하며 새 힘을 주시기를 기도했다.
그러고 나서 간 곳이 바로 6년 전에 방문했던 한인교회였다.
잠시 출장 와서 발가락 골절상을 당하고 퉁퉁 부어서 비행기도 못 탈 지경이었을 때 그곳에 계신 한인 의사의 처방전으로 약을 먹고서 부기를 가라앉혔고, 따끈한 미역국 한 사발과 교인과의 교재를 통해 육신이 급속히 회복되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늘 기억하고 있었던 교회였다.
그 감사한 마음 때문이었는지 목사님의 설교는 내 마음속을 울리는 하나님의 선포로 들렸다.
찬양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이 땅에 온 나의 용기를 축복하고 나의 안전을 지킬 것이며 외롭지 않고 풍성한 것을 경험케 하시겠다는 그분의 위로와 약속처럼 전해왔다.
눈물이 마르지 않아서 인사말도 겨우 마무리 지었다.
이 교회는 교인도 얼마 안 되면서 6년 사이에 자기의 건물을 짓고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코로나의 여파로 부득이하게 점심을 함께 나눌 수는 없었다. 나는 일행과 함께 예배드린 00선교사님의 차를 얻어 타고 우리 학교에서 모이는 youth예배를 위해 이동했다.
월드미션고등학교의 모습은 더한층 자리를 잡고 있었고 예배의 공간으로 모이는 홀도 제법 규모가 있고 음향 시설도 좋았다. 키냐르완다와 영어를 섞어서 찬양하고 말씀을 전하는 중에도 깊은 감동이 전해졌다. 자유롭게 소리 높여 찬양하는 아프리칸 특유의 화음이 아름다웠다. 복음을 전하는 자그마한 여선교사님의 모습이 크게 느껴졌고 영어로 설교를 준비하시는 수고와 노고를 읽을 수 있었다.
고등학교youth예배
그런 시간을 보내고 월요일엔 핸드폰을 개설하고 은행 계좌를 만들며 지루하고 느린 아프리카 시간에 적응하고 있는 중이다. 숙소에는 휴지와 비누 빨래건조대와 세제 퐁퐁 등 있는 게 하나도 없어서 눈에 보이는 데로 사들이는 중이다. 전기도 충전해서 사용하고 가스와 물도 소중하게 아끼고 살뜰하게 살아야만 하는 이 땅이 나를 강하게 끌어당긴 것은 무엇이었을까? 짧은 카톡 전화라도 연결만 되면 반가운 가족과도 기꺼이 이별을 선택하도록 만든 힘은 무엇일까? 거듭 생각한다.
깊은 어둠이 내리면 잠자리에 들고 새벽 동이 트기 전 지적이는 새들의 합창에 눈을 깨어 신과의 깊은 대화와 묵상의 달콤함에 빠져들고, 저녁에 사람들과 함께 밥상에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많이 걷는 중이라 뱃살이 실종되는 순간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해야 하나......
없지만 풍요롭고 비어 있지만 충만한 시공간에 서있다.
예비하신 분의 정확한 시간에 답한 약간의 용기에 대한 보상으로 풍성함을 경험하는 시간이다.